전라도닷컴, 책 ‘스무 살 도망자’펴내
27일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출판기념회도

“세상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안고 사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

80년 5월, 스무 살 젊은이였던 저자가 50대 후반이 돼서야 ‘세상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 혹은 그 무거운 짐을 고백의 형태로 내려놓았다.

김담연(필명) 씨가 묻어두었던 오월의 기억을 책 ‘스무 살 도망자’(전라도닷컴)로 풀어냈다.

광주로부터 탈주 혹은 도피했다는 부채의식을 안고 살아온 그해 오월 스무 살 젊은이의 이야기이자 이제는 50대 후반이 된 중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해 오월 광주 엑소더스 첫 고백’이란 부제와 ‘스무 살 도망자’라는 책 제목은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저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대학 신입생 때 오월을 맞닥뜨렸다. 생의 아름다운 봄날, 군홧발 소리가 우레를 치듯 새벽의 도시에 밀려들었고, 도처에 죽음이 넘쳐났다. 저격당한 시위대의 참혹한 주검을 목도한 뒤 자진해서 총을 든 시민군이 되었던 그는 끝까지 도시를 지키지 못했다.

하숙집으로 아들을 찾으러 온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광주 대탈출’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택시 안에서 나는 찜찜하고 아쉬웠으며 침통해졌다. 누군가를 뒤에 남겨놓고 나는 도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바로 그날 밤, 스무 살 청년은 자살을 기도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하지만 오월 이전과 이후, 자살기도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는 없었다. 도망자라는 것도, 자살하려 했다는 것도, 그에겐 세상 어디에도 발설할 수 없는 상처와 부끄러움이 되었다.

오랫동안 혼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 기회는 예기치 않게 주어졌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실마리였다. 영화 속 송강호(김사복)가 서울로 되돌아가기 위해 전남번호판으로 달리던 비포장길은 피흘리는 광주를 뒤로하고 그가 고향 순천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송강호의 택시 뒷좌석에 그해 오월의 내가 타고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영화 속 택시의 ‘순천행’은 그 자신의 그해 오월 탈주의 기억을 불시에 강력한 힘으로 소환한 것이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고, 자신이 겪은 사건을 마주볼 수 있었다.

그가 불러낸 오월의 기억들 중엔 주목할 만한 장면들이 많다.

5월18일 계엄군과 학생들이 맞닥뜨린 전남대 정문 상황도 그렇다. 정문 맞은편 하숙집 창에서 하숙생들이 공포에 질린 채 교정을 지켜보던 순간, 하숙생들과 눈이 마주친 계엄군이 돌진해 오는 상황의 급박함도 생생하다.

“공수부대 계엄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팔을 피스톤처럼 움직이며 곧장 달려왔다. 대학 정문으로 돌아오지 않고 담을 넘어 용봉천을 첨벙거리며 직선으로 들이닥쳤다.”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21일 금남로 상황이나 그날 양동시장에서 목도한 주검의 처참함도 기록돼 있다.

“태극기를 걷어내자 시신이 드러났다.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명이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총탄이 턱 관절 부근을 통과했다. 저격당한 것이다! 저격수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를 조준했다. 두어 개의 치아만 간신히 붙어 있었다. 하악골은 완전히 없어졌다…”그 주검을 목도한 후 스무 살 청년은 총을 든 시민군이 되었다.

총을 들고 지원동 경계초소를 지키던 날 밤의 공포와 두려움, 그 다음날 이윽고 해가 떠서 거리로 나섰을 때 맞닥뜨린 주먹밥 아주머니들과 시민들의 격려….

그날 그가 마주한 오월 대동세상의 장면은 “아이고, 우리 새끼들”이라는 환대와 얼싸안음의 말 속에 다 함축돼 있다. 너와 나,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따로 있지 않았던 것이다.

책 곳곳에서 그해 오월의 인간 군상을 만난다.

엄혹한 상황에서 계엄군들로부터 하숙생들을 지키려 두 팔 벌려 막아서던 ‘하숙집 슈퍼맘’, 동네 동생의 죽음 앞에 피끓는 심정으로 총을 들게 된 나주의 젊은이들, 시내에서 좀 떨어진 좀 한적한 거리에서 혹시 구호의 대열에서 소외되었거나 시간을 놓친 누군가를 위해 주먹밥 보따리를 펴놓고 앉아 기다리던 아주머니 등등.

그가 겪은 그해 오월의 이야기는 자식을 구하려 순천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그의 부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순사건을 겪은 아버지 어머니 세대와 광주 오월을 겪은 자식세대의 이야기가 한데 이어지고, 죽음의 전장에서 아들을 구하려는 부모의 필사적인 노력이 전해진다.

계엄군이 투입된 위급한 상황 속에서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 대학생들이 광주를 빠져 나갔고, 광주에 아들을 유학보낸 수많은 전라도 곳곳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고통스런 시간을 겪었다.

저자는 광주 오월을 바라보는 시선을 당시 광주 안의 사람들뿐 아니라 광주 바깥의 부모들에까지 돌려 오월에 관한 발화의 주체를 확대한다.

스무 살 청년에게 오월은 ‘전쟁’처럼 급작스럽게 달겨들었고, 이후 그는 전쟁사를 탐독하면서 그해 오월 자신과 같은 신병들을 찾아내려 애쓰기도 했다. 도망자로서의 자괴감 때문에 제대로 발설되지 못했거나, 주목받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돌던 오월의 또 다른 이야기다.

이 책을 실마리 삼아 ‘광주 엑소더스’의 더 많은 진실과 상처들이 세상에 밝혀지고 위무받기를 바라며 출판기념회는 도망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자리로 꾸려진다.

5월27일 오후 2시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그해 오월, 광주 엑소더스를 말한다’(사회: 황풍년 전라도닷컴 발행인)라는 주제로 송선태(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준비자문위원) 씨의 ‘오월 역사의 마지막 퍼즐, 광주 엑소더스’, 이형석(오월 당시 조선대 1학년) 씨의 ‘광주대탈출의 기억과 오랜 부채감’, 신충균(오월 당시 서강고 2학년) 씨의 ‘원피스를 입으라며 눈물로 애원하던 어머니’, 김창승(오월 당시 전남대 3학년) 씨의 ‘죽음만큼 두려웠던 터미널 화장실’ 등을 함께 나누고 객석 참가자들한테도 ‘오월의 기억’을 듣는다.
문의 062-654-9085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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