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는 시인 문익환

 ‘마지막 시’
 
 나는 죽는다
 나는 이 겨레의 허기진 역사에 묻혀야 한다
 두 동강 난 이 땅에 묻히기 전에
 나의 스승은 죽어서 산다고 그러셨지
 아,
 그 말만 생각하자
 그 말만 믿자 그리고
 동주와 같이 별을 노래하면서
 이 밤에도 죽음을 살자
 - 문익환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2018, 사계절)’ 중에서
 
 1918년 6월1일생 늦봄 문익환. 100해 째가 되는 올 해, 생전에 사셨던 수유리 집을 새 단장해 박물관 ‘통일의 집’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53세 늦깍이로 시작한 시인의 길을 갈무리한 시집 ‘두 손은 따뜻하다-문익환 시집 (2018년: 사계절)’이 나왔다. 작년 한 영화의 마지막 영상으로 보게 된, 이한열 열사의 장례에서 목 놓아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던 문익환 목사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짓게 했었다. 그런 분의 시집이 나왔다니 무척 궁금했다.

 대학에 막 입학한 89년의 봄, 대학가는 왠지 술렁이는 분위기였는데, 당시 집회 때 많이 불렀던 노래 중 하나는 ‘조선은 하나다’였다. 그러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에, 한 여대생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북한 혹은 통일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그 이전에 역시 방북했던 문익환 목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떤 민족적 사명감이 있어서 막혀있던 그곳을 갔을까. 다녀오면 곧바로 구속될 것을 알면서도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을까. 나이 지긋한 목사님인데 교회에서 보다 거리에서 감옥에서 있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잠꼬대 아닌 잠꼬대’ 중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던 한반도. 휴전한 지 70년이 되어가도록 변화는 커녕 늘 불안과 갈등, 두려움의 근거가 되었던 분단이라는 상황. 그것이 순식간에 뒤바뀌고 모두들 기차 타고 평양을 지나 중국으로 러시아로 유럽 저 끝으로 가자고 꿈을 갖게 된 것이 잠꼬대고 농담 같지만, 시인 문익환의 글처럼 ‘이건 진담이라구’라며 설레는 이들이 많아진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집은 더욱 반갑다.

장준하 박사의 죽음 이후 보여준 문익환 목사의 민주투사로서의 행보와 더불어 동무 윤동주와 함께 같은 동네에서 노닐던 때의 감성으로 부터 말년의 깊은 신앙고백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그렇다. 박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인 문익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땀이었다가 눈물이었다가 피었다가 그것들 다독이며 잘 마르게 하는 볕이었다가, 서러움과 흐느낌 모두 함께 데리고 넘어서는 슬픔이었다가, 우리의 하늘과 가장 닮은 얼굴이었다가, 나직하게 운을 떼는 목소리였다가, 세상을 흔드는 일갈이었다가, 너무 많은 죽음들과 함께 했던 생이었다가, 이 “모든 걸 버리고” 다시 “모든 걸 믿으며 모든 걸 사랑”했던, 오랜 기다림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시인 문익환.>

 이런 시인의 깊은 믿음이 평화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지 않을까 - 그의 시 ‘손바닥 믿음’을 보고 든 생각이다.
 
 ‘손바닥 믿음’
 
 이게 누구 손이지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손이 손을 잡는다
 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
 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인정이 오가며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
 내일이 밝아 온다
 -문익환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2018, 사계절)’ 중에서
 문의 062-954-9420

이진숙<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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