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민중들의 아프고 어처구니 없는 삶과 죽음

▲ 연극 ‘부용산’ 중에서.
 지난 6월21일에 ‘푸른연극마을’의 공연 ‘부용산’을 보기 위해 빛고을시민문화회관을 찾았다.

 연극 ‘부용산’의 주요 인물은 박기동(엄준필 분)과 안성현(손동수 분) 그리고 박기동의 동생 연이(오새희 분)다. 안성현이 박기동의 제망매가인 ‘부용산’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든 것은 제자였던 김정희의 죽음 때문이었지만 극에서는 ‘연이’라는 인물에 실제 인물 김정희가 흡수되었다. 김정희는 문학 쪽에 천재적인 기질을 나타냈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극에서 연이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소녀가 병으로 죽고 시인인 오빠가 애도시를 쓴다. 연이가 다니는 학교의 음악교사였던 안성현이 이 시에 노래를 붙이고 이 노래를 빨치산들이 자주 부른다. 박기동과 안성현은 노래 하나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고문에 시달린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하나 때문에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순박한 민중들의 아프고 어처구니없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덧대진다.

 그러니 연극 무대의 이야기는 두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누이, 그리고 제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탄생한 노래에 대한 이야기와 외연이 좀 더 확장된 민중들의 이야기.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가 좋아서 부르는 것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시대는 그런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누가 지었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부르는가가 중요했고 그 주체가 자기편이 아니었을 땐 탄압과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제주 4·3’이 짧게 언급되고, ‘여수순천민중항쟁’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동생의 죽음을 애도한 곡이 갈등으로
 
 연극 ‘부용산’의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알다시피 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갈등이다. 그런데 연극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연이 이야기에서 그 죽음에 특별한 갈등이 없다. 폐결핵으로 죽는 것, 병사에 무슨 갈등이 극명하게 표현될 수 있겠는가.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가난했다거나, 연이라는 인물이 병사해서는 안 되는 무슨 특별한 경우에 놓여 있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단 뜻이다. 그리고 연이의 병사로 인하여 어떤 거대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연이는 그 때 그 시대에 죽은 흔한 병사자였을 뿐이다.

 갈등은 연이의 죽음에 있지 않았고 그 이후에 있었다.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와, 그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갈등을 일으켰다. 그 노래로 인하여 시인과 작곡가의 인생이 예상치 않게 바뀌었다. 그렇다면 연극 ‘부용산’은 오히려 그 지점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하나로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던 두 사람, 박기동과 안성현. 표현이 안 된 것은 아니다. 분량의 균형 문제였을 뿐.

 극중에서 안막의 조카로 나오는 안성현은 한국전쟁 중에 월북한다. ‘부용산’이 빨치산들의 애용곡이 되어 탄압을 받은 후이다. 그런데 안성현은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조카가 아니다. 안기옥(1894~1974)이라는 걸출한 음악인의 아들인데 안기옥 역시 월북했다. 왜 극에서는 안성현을 안막의 조카로 설정했을까? 연극 ‘부용산’은 픽션과 논픽션이 섞인 극이다. 연이라는 인물 안에 김정희를 흡수시킨 것처럼 안성현을 안막의 조카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왜,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검색창에 안성현을 치면 안막의 조카라는 잘못된 정보가 뜬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대본을 썼을 때는 안성현이 안막의 조카라는 것이 정설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고 밝혀졌는데 왜 대본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순흥 안씨인 안성현이 죽산 안씨인 안막의 조카로 설정될 필연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연이의 죽음과 그 죽음에서 빚어진 노래, 그리고 그 노래로 인해 기구한 인생을 살다간 두 예술가를 위한 극이 되려면 연이의 부분을 좀 더 잘라내고 두 사람에게 집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로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만든 과정을 담고 싶었다면 연이의 죽음에 좀 더 픽션을 섞어서 갈등 구조를 부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야든이라는 인물과 덕칠(언뜻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염상구를 연상시키는 인물)이가 나와서 일종의 브릿지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노래 ‘부용산’에 얽힌 인물 세 사람과 나머지 민중들의 고난 사이에 상당한 갭이 느껴졌다. 물론 상징적인 면에서는 아니다. 무고한데 고통받는다는 면에 있어서는 두 예술가와 민중들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노래 ‘부용산’이 ‘제주 4·3’과 ‘여수순천민중항쟁’을 발발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떨어진 두 가지의 이야기 구조로 보이기도 한 것이다.
 
▲아직도 훌륭하지 못한 관객들
 
 더구나 극에서 연이의 죽음은 ‘부용산’이라는 노래가 빨치산들의 애창곡이라는 이유만으로 두 예술가가 고초를 겪은 다음에 이루어진다. 플래쉬백(연극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기법) 기법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장면 구성을 그렇게 한 이유도 궁금했다.

 이야기 구조에 문제를 느끼기는 했으나 무대는 훌륭했다. 훌륭하지 못한 것은 관객들이었다. 엄마에게 계속 질문을 해대는 어린 아이와 친절하게 설명하는 아이 엄마.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아이에게 공연 중에도 핸드폰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치는 부부. 그 부부 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날아다녔다. 나이 지긋한 신사는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댔다. 코를 골면서 자는 고등학교 남학생들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올라온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연극 ‘부용산’에 ‘제주 4·3’이 나온다고 해서 체험 학습차 왔다가 연극을 관람하러 왔다고 했다. 그 학생들은 양민들이 학살되는 장면에서 총소리에 잠을 깼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로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인데 말이다. 노신사는 무슨 심정으로 연극을 보러 왔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사진을 찍을 정도로 사연 있는 관객이었을까?

 학생들을 인솔한 제주 ○○고등학교 선생님은 연극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관객들은 연극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나도 좋았다. ‘푸른연극마을’의 ‘부용산’. 다만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랫동안 쉬쉬하며 불러왔던 노래 ‘부용산’에 대한 이야기, 즉 76세에 호주로 이민을 가야만 했던 시인과 월북한 뒤 그 이름과 인생이 엉뚱하게 편집된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와 어지러운 세상에서 핍박받았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개연성 있고 핍진하게 연결하면 어떨까 싶은 것뿐이다.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