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발포명령 거부 등 신군부로부터 탄압·고초
80년 이후 ‘사회정화’ 명목 해임 경찰 1252명
안병하·이준규 등 시발탄…나머지는 엄두도 못내

▲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왼쪽, 셋째 아들 안호재 씨 제공)과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총기를 인근 섬으로 옮긴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준규 서장 사위 윤성식 씨 제공).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지난해 치안감으로 추서된 데 이어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최근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당시 경찰들의 희생과 명예회복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안병하 치안감, 이준규 서장 외에도 시민들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경찰들이 적지 않다. 제대로된 조사와 기록,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진정성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고 이준규 서장은 유족의 신청으로 지난 6일 국가보훈처로부터 5·18민주유공자로 인정을 받았다.

 5·18 때 목포경찰서장이었던 그는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에도 시민들을 상대로 한 무장을 지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민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경찰 병력을 목포경찰서에서 철수시키거나 총기류를 인근의 섬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됐고, 보안사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군사재판에도 념겨져 ‘선고유예’로 풀려났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5년간 투병하다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안호재 씨 “정부 불신, 유족들 선뜻 못나서”
 
 그의 사위 윤성식 씨는 “신군부는 이준규 서장님에게 ‘불명예 경찰’이란 낙인을 찍었고, 이로 인해 서장님은 물론 유족들도 오랜 시간을 힘들게 살아왔다”며 “이제라도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드리기 위해 5·18민주유공자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정한 의미의 명예회복을 위해선 군사재판 재심, 순직 인정 등 회복해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나의갑 관장은 “이준규 서장 외에도 5·18 때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던 경찰이 더 있다”고 강조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이 5·18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팀 운영을 통해 지난해 10월 내놓은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보고서엔 관련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두환 신군부는 5·18의 책임을 추궁할 목적으로 ‘광주사태 진상 규명계획’을 수립하고, 조사에 나섰는데 이때 안병하 국장 및 참모·경찰서장 등 지휘부 13명에 대해 지휘책임을 물어 직위해제 및 의원면직 처분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안병하 치안감은 직위해제(사직)됐고, 안수택 작전과장 등 11명은 의원면직됐다. 지휘부 외에 일반 직원 64명도 감봉, 견책, 계고, 전배(타 부서로 이동) 등 징계를 받았다.

 이준규 서장은 당시 경찰 중 유일하게 파면을 당했다.

 전국적으로 5·18 종료후 신군부가 ‘사회정화업무’ 명목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를 통해 해직한 경찰관은 1252명에 달했다.

 여전히 이들의 명예회복은 사실상 본인 또는 유족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5·18 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려 했던 경찰들의 업적에 대해선 정부나 광주시, 우리 사회 모두가 무관심했던 탓이다.

 전남지방경찰청에서 낸 보고서 외에는 5·18 당시 경찰의 역할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없다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안 치안감이 5·18민주유공자, 2005년 순직을 인정 받고 지난해 치안감으로 특진하기까지도 유족들의 눈물 겨운 ‘투쟁’이 있었다.

 안 치안감과 이준규 서장처럼 경찰 유족들이 방법을 찾지 못해 5·18민주유공자를 신청한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경찰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가 억울하게 직위해제, 파면 등을 당한 것인데 이게 5·18민주유공자로 인정 받는 게 “진정한 명예회복의 시작일 수 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유족들도 있다.
 
▲“사과 함께 당시 경찰들 헌신 알리는 노력 필요”
 
 워낙 힘겹고, 외로운 싸움이다보니 상당수 유족들은 선뜻 나설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안 치안감의 셋째 아들 안호재 씨는 지난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5·18로 고초를 겪은 다른 경찰들의 유족분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큰 나머지 ‘어차피 안 될 것’이란 생각으로 명예회복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유족끼리의 네트워크를 가져보려고도 했으나 이 역시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병하 치안감의 명예회복을 계기로, 경찰 차원에서 5·18 때 시민들을 위해 애쓴 경찰들에 대한 조사에 나서긴 했다.

 하지만 안 씨는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닫혀 있는 유족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고 꼬집었다. 조사에 투입되는 인원도 많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조사를 진행하는 경찰의 태도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그분들이 자진해서 사표를 썼다’고 할 정도로 당시 상황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다”는 것.

 안 씨는 “기본적으로 80년 광주에서 경찰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의 노력과 업적은 알려야 하지 않나”면서 “과거 일이지만 부당한 처분에 대한 경찰청 차원의 공식사과와 더불어 진정성 있게 유족이나 본인, 당시 동료들로부터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남경찰청은 보고서를 낸 이후로도 5·18 때 경찰의 역할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 이준규 서장과 관련한 당시 역할, 활동 등에 대한 자료, 증언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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