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수칙 차고넘쳐도 무용지물
지켜지지 않으니 되레 2차 피해”

▲ 최근 성 비위 사건이 불거진 광주의 사립 D여고.<광주드림 자료사진>
 최근 광주지역 교육계가 잇단 성비위 폭로로 안팎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2차 피해가 발생한 사례까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고 예방 노력과는 별도로, 광주시교육청의 사건 대처 능력은 어느정도일까? 본보가 매뉴얼을 점검하고, 허실을 따져봤다.

 16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관내 학교는 ‘학교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표준매뉴얼(여성가족부, 2017.6)’ 등을 기본 매뉴얼로 준수토록 하고 있다.

 시교육청 체육복지건강과 담당자는 “성비위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는 교육청과 수사기관에 즉각 신고해야 하며, 피해자와 행위자를 즉각 분리조치 해야 한다”며 매뉴얼을 요약 설명했다.

 하지만 전교조 광주지부 김동혁 정책실장은 “교육계에서 통용되는 매뉴얼은 너무도 차고 넘친다”며 “매뉴얼이 지켜지기 어려운 사립학교의 폐쇄적 운영 등 구조적 문제가 사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사학 폐쇄성·솜방망이 처벌 등 “병폐 악순환”

 매뉴얼은 ‘사건을 신속하게 다루고 더 이상의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작동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

 그러나 “폐쇄적인 사립학교 분위기 속에서 의사결정권을 쥔 관리자(교사·교장)의 자의적 매뉴얼 운용, 솜방망이 처벌로 귀결되는 병폐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사립학교인 D여고에서 16명의 교사가 장기적,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가해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교육청 조사결과 무려 180여 명의 학생들이 피해 사실을 언급했다. 그동안 피해 학생들이 가해 교사에게 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묵살된 정황도 드러났다. 교사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불이익을 예고하며 문제제기 한 학생을 협박하기도 했다. 2차, 3차 피해가 현실화된 것이다.

 결국 학생회 간부들이 직접 교장을 찾아가 “우리를 살려주세요”라는 호소문을 제출했고, 교장이 교육청에 이 사실을 신고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이 학교의 경우, 매뉴얼에 따른 안전장치를 작동해야 할 교사들이 가해 당사자인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피해사실을 직접 교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가 공론화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이 명백하다.

 또한 피해 학생 대부분이 3학년으로, 1~2학년 때부터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어왔음이 확인돼 충격이 컸다.

 이에 대해 전교조 김동혁 정책실장은 “가해 교사들 행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순환배치되는 공립학교와 달리 정년까지 임기가 보장되고 재단의 힘에 따라 학교 운영이 좌우되는 사립학교의 폐쇄성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 학교는 2015년 교사 두 명이 성비위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사건을 은폐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100쪽 넘는 정부 매뉴얼 ‘보급·인식’ 한계도

 지난 4월 발생한 교육청 위탁 대안학교에서의 교사 성추행 사건도 ‘매뉴얼’이 유명무실했던 사례다.

 성추행 사실을 확인한 학교는 해바라기센터 등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고 교사협의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여기까진 매뉴얼에 따라 비교적 빠른 조치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동료 교사들이 사건 처리를 담당하고 교사 임면권을 가진 위탁기관이 징계를 결정하는 대목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해당 교사가 경위서를 작성하면서 사건이 마무리 됐고 피해 학생과는 한 학기 동안 같은 학교에서 마주쳤다. 매뉴얼의 기본원칙인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유명무실한 매뉴얼을 탈피하려면, 사건처리위원회에 반드시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학 교원의 징계권을 교육청에 두는 등 ‘공정성’ 강화도 필요하다.

 매뉴얼 자체에 대한 문제점도 수정해야 한다. 광주시교육청은 정부가 내놓은 매뉴얼을 거의 그대로 보급하고 있는데, 상세한 내용의 100쪽 이상의 매뉴얼을 충분히 인지하고 적용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차제에 시교육청은 광주교육 실정에 맞는 매뉴얼을 보급하고, 안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음달 초 성비위 전담 대응팀이 꾸려질 예정”이라면서 “대응팀이 꾸려지면 매뉴얼과 신고센터 안내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