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순한, 상투적 ‘5·18 연극’

▲ 연극 ‘어머니의 노래’.<광주문화재단 제공>
 지난 8월23일 목요일, 폭우를 뚫고 연극을 보러 갔다. ‘어머니의 노래’. 원제는 ‘애꾸눈 광대’였다고 한다. 보통 내용을 모르고 공연을 즐기는 것이 내 원칙이지만 이 연극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극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갔다. 아마 그래서 더 기대가 컸을지도 모른다.

 무대 오른쪽에 나와 있는 휠체어는 이 극이 80년 5월의 유가족이나 부상자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휠체어의 주인은 한 어머니다. 가난한 살림에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운명의 그날, 도청에서 눈을 하나 잃고 돌아오는 기구한 삶의 주인공.

 80년 5월에 관한 극들, 그 중에서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 관한 극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토박이’의 ‘금희의 오월’이 있고, 같은 극단의 ‘오! 금남식당’이 있고, 극단 ‘사람사이’의 ‘바퀴자국’이 있다. 비슷한 줄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 극들 속에서 ‘어머니의 노래’는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집중해서 극에 몰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 현실 세계 모든 어머니는 아프다. 차별화 안보여
 
 극을 보면서 왜 처음에는 제목이 ‘애꾸눈 광대’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느라 잠시 신경이 분산됐다. ‘애꾸눈 광대’라는 제목이었을 때는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눈 하나를 잃고 연극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아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오월극이었을까? 나중에 극을 계속 올리다보니 아들보다는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아서 극을 좀 각색하고 제목을 바꾼 것일까? 연극은 살아있는 생물 같은 존재이니까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을 다르게 하고 그에 따라 제목도 바꾸고.

 그런데 이 연극은 ‘애꾸눈 광대’였을 때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어머니의 노래’라는 자못 울림이 깊은 제목에 비해 연극 내용이나 공연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제목만 듣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너무 겹칠까 봐 지레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고리키의 ‘어머니’가 아주 훌륭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의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어머니의 노래’에 나오는 어머니는 참 평범한 어머니로서 그냥 삶을 마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감정이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 있는 많은 어머니들의 가슴 아픈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서 보여줄 때는 뭔가 변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어머니가 자식이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어느 어머니가 자식이 다치거나 죽기를 바라겠는가. 이 모든 어머니들의 바람과 소망을, 그리고 그 소망의 좌절을 그리면서 연극(예술)이라는 장치를 사용할 거라면 좀 더 예술적으로(연극적으로) 사용하기를 어느 관객이 바라지 않겠는가. 이 연극에 사용된 대사들은 별로 연극적이지 않았고, 장면들도 연극적이지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사도 장면들도 상투적이었다. ‘리얼리즘’이라는 변명에 기댈 생각이라 하더라도 솔직한 평으로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이 극의 기획자나 각색자나 연출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이제는 축제의 형식으로 되어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런 의미에서 첫 부분에 마을 어르신의 구순잔치 장면을 넣은 거라면 뭐, 억지로라도 이해해 보겠다. 또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발리우드에나 나올 법한 춤과 노래를 넣은 거라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겠다. 하지만 이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극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극 내용은 정말로 단순한 ‘5·18 연극’이었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은 투사가 되고 마지막 날 도청에서 살아서는 돌아오지만 애꾸눈이 되어 오는, 그 상처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정말 1980년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 이제는 1980년에 광주에 없었던 사람들도 다 아는 이야기로 단순하게 꾸며졌다.

연극 ‘어머니의 노래’.<광주문화재단 제공>|||||
 
▲ 원제 ‘애꾸눈 광대’ 140회 이상 무료 공연
 
 광주에 ‘오월어머니회’가 있다면 남미 아르헨티나에는 ‘오월광장어머니회’가 있다. 나는 ‘어머니의 노래’를 보면서 바로 그 ‘오월광장어머니회’를 떠올렸다. 만약 같은 제목으로 아르헨티나의 그 시절을 그린 연극이 있는데, 정말로 그 세상에 살았던 어떤 한 평범한 가정, 그리고 평범한 한 어머니의 한 많은 삶을 보여준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 ‘어머니의 노래’라는 연극을 아르헨티나 사람이 본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연극에, 예술에 정답 같은 것은 없을 텐데 난 편견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한 관객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 관객은 연극이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80년 5월의 아픔을 절절하게 느꼈노라고, 지금 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든 대사들이나 행동들도 다 이해가 되었고 가슴이 아팠노라고 했다. 세상엔 무수한 연극 작업이 있고, 무대가 있고, 그리고 무수한 관객이 있다. 원제 ‘애꾸눈 광대’였던 ‘어머니의 노래’는 지금까지 140여회 이상을 무료로 공연해 왔고 다음 달인 9월에도 19일부터 20일까지 빛고을아트스페이스 무대에 올라간다. 좋았던 것은 없냐고?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의 노래가, 어머니의 노래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 노래를 들으러 한 번씩 발걸음을 하면 어떨까.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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