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소리 등 비언어적 도구 실험극
느슨한 논리의 사슬,
이야기 전달력은 아쉬움

▲ 연극 ‘아름답고 스산한 그의 집필 일기’ 중.<성화숙 씨 제공>
 실험극이라는 용어가 주는 미묘한 느낌에 끌려서 극단 ‘우아’의 ‘아름답고 스산한 그의 집필 일기’를 보러 갔다. 궁동예술극장에서 6일부터 8일까지 진행됐는데 두 번을 보러 갔다. 딱히 난해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실험극이라 그런지 한 번을 더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연극과 달리 배우들의 대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시각(빛), 청각(소리)적 효과를 높이고 몸짓과 비언어적 도구들을 이용해 만든 극이었다.

 무대는 한 단을 높여서 두 개로 분리돼 있었다. 높은 무대 왼쪽에 리라 폴(폴과 후프가 합체된 모양의 폴 댄스 기구)이 있고 정육면체가 세 개, 관객석과 접한 낮은 무대에는 정육면체가 네 개, 그리고 오른쪽에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작은 스탠드와 머그컵, 그리고 펜이 있다. 잠시 후 극이 시작되자, 안경을 끼고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책상에 앉아 펜을 쥔 오른손을 아래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독백을 한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녀가 죽었는데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남자의 손동작은 위협적이었다. 보통 글을 쓴다 하면 옆에서 옆으로 손동작을 해야 되지 않나? 그런데 아래서 위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팔과 펜. 자기나 혹은 타인을 위해(危害)하는 몸짓이었고, 글 자체에는 순수한 열정이 없는 동작이었다.

 책상 옆 정육면체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자 셋이 앉아 있다. 어둠 속에서 그녀들은 손에 쥔 LED 손전등을 켰다 껐다 하면서 남자에게 반응한다. 실험극이라더니 스릴러인가? 설마 공포극인가? 미스터리? 저들 중에 유령은 누구인가? 갑자기 잔뜩 긴장이 된다. 미스터리까지는 괜찮은데 잔혹하고 무서운 거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귀신 나오는 연극인 줄 알았으면 안 보러 왔을 건데, 살짝 후회도 되었다.
 
▲대사 최대한 배제…시각·청각적 효과 높여

 ‘아름답고 스산한 그의 집필 일기’를 보면서 영화 세 편을 떠올렸다. 첫 번째 영화는 니콜 키드먼 주연의 ‘디 아더스(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2001)’. 이 집에 떠도는 저 존재 넷 중에, 정확히는 저 세 여자들과 이 남자 작가 중 누가 유령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영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두 번째 영화는 ‘반 헬싱(스티븐 소머즈 감독, 2004)’. 휴 잭맨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반 헬싱역으로 나왔던 영화다. 대왕 뱀파이어 곁에 세 여자 뱀파이어가 있는데 연극에 나오는 세 여자들이 몸짓과 소리만 이용해 극을 진행할 때 그 세 괴물(여자 뱀파이어)이 연상되면서 그 영화를 떠올렸다. 배우들의 연기가 내게 통한 증거라 여기고 싶다.

연극 ‘아름답고 스산한 그의 집필 일기’ 중.<성화숙 씨 제공>|||||

 세 번째 영화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감독, 2010)’이었다. 세 여자(사실은 작가의 세 딸들)가 아버지가 좋아하는 커피에 하얀 분말가루(독)를 뿌리면서 일정한 대사를 반복하는 것은 무대적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살인이라는 것이, 그것도 가족 살해가 그렇게 쉬운 것인가? 뭐, 세 딸들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도 싶었을 것이다. 죽은 아내에 대한 집착이 살아 있는 세 딸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살았던 남자였다. 그래서 세 딸들은 각기 결핍을 안고 자라나야 했다. 그렇다고 그 고통과 절망과 결핍이 근친상간과 가족 살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김복남이 남편을 죽일 때 그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일정 관객을 이해시킨 것과는 반대 지점에 이 연극이 서 있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빛과 소리와 몸짓을 이용해 기존 연극과는 다른 이미지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이 극의 작가이자 연출인 성화숙은 말한다. 스토리 중심이 아닌 이미지 중심의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극은 스토리가 이미지를 망쳤다고도 볼 수 있겠다.
 
▲너무 불유쾌한 스토리…관객들은 납득할까?

 사람들은 먼먼 그리스의 어느 시점에서 아들이 엄마랑 근친상간을 하거나 가족을 살해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극은 바로 눈앞에서 부녀간의 근친상간이 이뤄지고(비록 리라 폴 위에서 예술적으로 이미지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가족 살해가 두 번이나 일어나고 자매간에 애정 문제도 얽혀 있다(이 부분에선 한국의 막장 아침드라마가…). 너무 독하고 불유쾌한 스토리가 이미지극으로 승화되려는 극의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니다. 스토리를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논리의 사슬이 느슨한 것이 문제였다.

 연극영화학과 학생들과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이 논리성의 부족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실험극이면 실험극답게 이미지극이면 이미지극답게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고, 성화숙의 극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좀 달랐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처럼 잘 짜여진 스토리 전개과정을 갖고 있는 영화도 일반관객들에게는 버거운 경우가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이 극을 보면서 아름다움 보다는 스산함과 불쾌감만 느낀 관객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성화숙 연출가는 진작 예견했고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기대이고 바람이다.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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