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특히 노동자의 자녀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식건강 유해인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생식독성물질을 비롯한 생식건강 유해인자로부터 노동자와 그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기준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업무로 인한 사산, 미숙아, 선천성장애아 출산 등 자녀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임산부 등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에 ‘생식독성물질 취급 업무’를 포함하고, 임산부를 야간근로 인가 대상에서 제외시키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생식건강 유해인자는 주로 생식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이는 불임, 유산, 선천성 장애아 출산 등 사람의 생식기능이나 태아의 발생?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물질로, 고용노동부 기준으로 총 44종이 관리되고 있다.

생식건강 유해인자는 여기에 야간근무, 입식노동 등 작업환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국제노동기구 ILO ‘산업안전보건협약’에 따르면, 국가와 사용자는 모든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내재된 위험요소를 최소화기 위한 필요 조치를 다할 의무가 있다.

2016년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 생식독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노동자는 20% 내외 수준으로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생식건강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생각하거나, 난임, 불임, 유산, 사산, 선천성장애아 출산 등 원인이 업무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인식은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사업장 노동자나 의료기관 간호사의 선천성 장애아 출산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는 생식독성물질을 포함한 생식건강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이 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녀에게도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권위는 이를 “정책적으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법령은 사업주에게 작업장 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안전보건교육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충분한 고지나 교육이 부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 노동자가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기초로 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산재보상 신청과 판단을 위한 안전보건 관련 자료를 사업장에 요구하면 사업주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권위는 “근로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유해 화학물질 고지 방안 마련과 작업장 내 안전보건 관련 자료 열람 및 제공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생식독성물질로부터 임산부와 태아를 보호하고, 임산부의 비자발적 야간근로 등을 방지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4의 임산부 등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에 생식독성물질 취급 업무를 폭넓게 포함하고, 근로기준법 제70조 제2항에 따른 야간근로 인가 대상에서 임신 중인 여성을 제외하거나 인가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고 봤다.

특히 인권위는 “업무로 인한 사산, 미숙아, 선천성장애아 출산 등 자녀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귀책사유가 없는 근로자에게 경제적 책임과 정신적 고통을 떠넘기는 부당한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업무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을 업무상 재해로 적극 해석·적용하고, 논란 해소를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인권위는 판결문을 통해 “이번 결정을 통해 생식건강 유해인자로부터 근로자와 그 자녀의 건강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확산돼 관련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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