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의 무늬, 과연 기하학적 추상일까?

▲ <사진11〉 핀란드 빗살무늬토기(comb ceramic ware), 기원전 4000년 전. 〈사진12〉 이란 바쿤 신석기 채색토기. 〈사진13〉 영국 신석기 펜게이트 그릇(Fengate Ware), 버크셔, 높이 15cm. 대영박물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본보는 수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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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 케라믹과 즐문토기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1930년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는 빗살무늬가 북유럽 핀란드와 서유럽 독일, 시베리아, 한반도, 알래스카와 북미주까지 걸쳐 있다 하면서 ‘북방문화’의 한 파문으로 보았다. 하지만 빗살무늬는 아프리카 수단, 나이지리아, 카메룬에서도 볼 수 있고, 북유럽 아래 남·서유럽 스페인 영국에서도, 남아메리카 페루, 콜롬비아 신석기 그릇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빗살무늬는 세계 신석기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핵심 코드가 된다.

 우리가 한반도 신석기 ‘빗금무늬’ 토기를 ‘빗살무늬토기’라 하게 된 내력이 있다. 1930년 후지다 료사쿠는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연구할 때 핀란드 고고학자 아일리오의 책을 참고했는데, 그가 이 토기를 일러 독일어로 ‘캄 케라믹(kamm keramik)’이라 한 것을 ‘즐목문(櫛目文 빗즐·눈목·무늬문)토기’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櫛目(しめくし目)’은 머리를 빗었을 때 머리카락에 남는 자국을 말한다. 그 뒤 우리 고고학계에서 이 즐목문토기를 ‘즐문토기’ ‘빗살무늬’로 옮겨 지금까지 쓰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빗살무늬토기를 검색하면 한자 명칭으로 ‘즐문토기’를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핀란드 학계에서는 아직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한 듯싶다. 그들은 이 빗금무늬가 뭔지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마다 무늬가 조금 다른 것을 두고 종교와 부족문화의 차이로 해석하고 있다(〈사진11〉 참조). 〈사진12〉는 이란의 신석기 그릇 채색토기다. 채문토기(彩文土器)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그릇을 구운 다음 색 안료로 무늬 그림을 그린 그릇을 말한다. 중국의 신석기 그릇이 바로 이 채색토기다. 중국 고고학과 미술사학계에서는 그들의 신석기 그릇 채색토기 무늬를 ‘중국 예술계의 수수께끼’라 하면서 아직 해석을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럽과 아시아 채색토기 문화권의 고고학계에서도 이 무늬를 그저 ‘기하학적 추상무늬’라고만 할 뿐이다.

〈사진4-1〉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 ①과 ②는 오른쪽 하얀 동그라미 속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반타원형’ 비구름이고, ③ 또한 천문에서 나오는 ‘삼각형’ 비구름이다. 반타원형·삼각형 비구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아주 자세히 논할 것이다.

 〈사진12〉의 동그라미 속 삼각형 무늬와 〈사진13〉의 동그라미 속 반원은 본질적으로 같은 무늬이다. 러시아 역사학자 리바코프(Rybakov, B. 1908-2001), 문양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1921-1994)와 아리엘 골란(Ariel Golan)에 따르면, 세계 신석기인은 비(雨 또는 水)를 머금고 있는 비구름을 삼각형과 반타원(또는 반원)형 구름으로 새겼다고 한다. 〈사진4-1〉을 보면 한반도 암사동 신석기인 또한 ‘비구름’을 반타원형(①, ②)과 삼각형(③)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12, 13〉의 삼각형과 반원 속 빗금은 비를 뜻한다. 특히 〈사진13〉의 반원형 구름은 일본의 조몬토기를 해석할 때 기본이 되는 구름 도상이다. 〈사진11〉을 보면 빗줄기 아래에 구멍무늬를 냈다. 그리고 〈사진13〉 아가리 바로 아래(하얀 동그라미 속)를 보면 구멍을 살짝 내놨는데, 구멍을 아주 뚫은 것이 아니라 빚을 때 일부러 절반 깊이로 뚫어 놓았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에도 이렇게 절반 깊이로 미리 뚫어 놓은 토기가 있다. 단단한 토기에 구멍을 뚫는 일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해 놓은 것이다. 이 구멍과 관련해서는 이 시리즈 가장 마지막 편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 구멍을 금이 간 그릇을 수리해 쓴 흔적으로 보지만 이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구멍 뚫는 도구가 변변치 않았던 신석기 때 금이 간 그릇 표면에 구멍을 뚫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막상 구멍을 뚫는다 하더라도 깨진 그릇은 끈으로 매어 쓰기 힘들다. 사실 이것은 실험을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사진14〉 2001년 아프리카 누비아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 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600-3100년. 〈사진15〉 벨 비커(Bell Beaker), 높이 11cm, 스페인 발렌시아 선사시대박물관. 〈사진16〉 러시아 신석기 얌나야(Yamnaya) 빗살무늬토기. 〈사진17〉 남아메리카 페루 신석기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000년.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구름과 비와 곡식 무늬
 
 〈사진14-16〉 노란 동그라미 속 삼각형 빗금무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신석기인들이 비를 머금고 있는 ‘구름’을 새길 때 쓴 기본 도상이고, 〈사진17〉 하얀 동그라미 속 빗금무늬는 ‘빗줄기’를 표현한 것이다. 〈사진14, 15, 17〉의 빗줄기를 보면 엇갈리거나 지그재그 형식으로 그렸는데, 그 까닭은 비가 ‘비바람’ 속에서 내리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달리 〈사진16〉의 빗줄기(하얀 동그라미 속)는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고 있다. 이 빗줄기 무늬에는 ‘바람’이 없다. 대신 빗줄기 양쪽으로 점을 찍어 그 비를 맞고 싹이 틀 ‘곡식’을 표현했다. 이 곡식 무늬가 있는 그릇을 기준으로 농사의 시작 시점을 잡을 수도 있다.

〈사진18〉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안 빗살무늬토기 설명글. <사진19>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20>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21〉 문방구에서 진흙을 사 와 직접 빚어봤다.

▲빗금은 낱낱이 하나씩 새겼다
 
 ‘빗살무늬토기’ 명칭과 관련해서 이것부터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역사책에서 ‘빗살무늬토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상당수가, ‘이 그릇은 빗(또는 빗살) 같은 무늬새기개로 찍거나 그어서 무늬를 새겼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18〉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설명글도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은 맞는 말일까.

 2018년 9월23일을 기준으로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올라온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는 1669장이다. 지역별로 보면 인천광역시 533장, 서울특별시 480장, 경기도 203장, 부산광역시 184장, 강원도 36장, 전라남도 9장, 충청남도 8장, 울산광역시 8장, 전라북도 5장, 충청북도 5장이다. 사진 한 장에는 그릇 한 점, 토기 조각 한 점만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토기 조각이 100점도 넘게 앉혀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모두 살펴봤는데, 빗 같은 무늬새기개로 그어서 새긴 것은 단 한 점도 없었다. 보기로 든 〈사진19-20〉 그릇 무늬만 봐도 이는 곧 확인할 수 있다.

 그릇 조각을 깨뜨려 그 깨뜨린 면에 생긴 이로 새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30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20〉 동그라미 속 빗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무늬가 나오지 않고 또 빗금 무늬가 깊지 않아 더 이상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것 같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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