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준비하며, 기본으로 돌아가다
예비혁신 1년4개월…
‘학생중심교육과정’ 방점

▲ 학생 자치 게시판.
 학교 혁신의 출발은 ‘구성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을까? 어떻게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학부모’와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의 열쇠 말은 당사자들이 쥐고 있을 터.

 빛고을혁신학교 3년차인 건국초는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보통 혁신학교로 지정되기 전 1년 이내의 예비혁신학교를 거치는데, 건국초의 경우 1년4개월 동안 혁신을 준비했다. 더욱 치열하게 묻고, 소통한 결과는 ‘자치’라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건국초는 2014년 10월 세워진 신설학교다. 깨끗한 외관을 들어서니 이제 막 피어난 학생자치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급식소로 통하는 복도 한켠에는 커다란 ‘학생자치 활동 게시판’이 걸려있고, ‘한복의 날 참가자 모집’, ‘프라모델 만들기 대회’ 등이 안내돼 있다.

 이날은 추석 명절을 맞이해 ‘한복의 날’이 열리는 날. 중간놀이시간(20~30분)과 점심시간에 강당 복도에 모여 형형색색 멋스런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는 행사였다. 한복을 입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한복이 정말 예뻐요.” “추석 때 한복 입어본 게 오랜만인 것 같아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한복 입은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행사를 준비한 학생자치회 학생들은 같이 한복을 골라주고, 사진을 찍어주느라 분주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치러내는 행사여서 모두가 즐겁게 임하는 모습이었다.
 
 ▲학생자치 예산 2~3%, 동아리·자치활동 활발
 
 건국초 박기철 혁신기획 담당교사는 “한복의 날 행사는 ‘추석에 뭐 해볼까’라는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응답”이라고 운을 뗐다.

 “좋아서 하는 일은 말릴 수 없다고 하잖아요?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한복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럼 교사들은 무조건 ‘좋다’,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 때문에 안 된다’는 이유를 찾으면, 학생들은 의욕을 잃으니까요. 학교는 한복을 대여해주고,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주죠.”

 건국초의 학생자치 예산은 총 예산의 2~3%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자치예산이 0.5%인데 비해 4~6배 이상 많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가 예산을 조정한 것이다. 학교 공간 혁신(재구성)을 시작하며 가장 1순위로 챙긴 것도 ‘학생자치회실’ 확보였다.

 학생동아리의 경우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티볼, 슬라임, 프라모델 등 다양하게 구성했다. 일부 과학탐구, 독서, 태권도 등 학습 요소가 있는 동아리도 있지만, 학생들의 요구를 우선했다는 점에서 진일보 한 셈이다.

 “동아리를 한다고 하면 학습부·도서부처럼 의무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우선되는 게 보통입니다. 학생들에게 ‘동아리를 함께하기 원하는 선생님과 팀을 이루자’고 하니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됐어요. 서너 번의 설득과 거절이 오가면서 스스로 방향을 찾아간 거죠. 예산도 동아리당 30만 원씩 지원되니까 훨씬 동력도 받는 것 같고요.”

 “혁신학교 테마를 정하면서 가장 중심에 놓은 게 ‘학생중심 교육과정’이었어요. 학습과 생활지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취지입니다. 학교 입장에선 무리다 싶은 요구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회의하고 협의하면서 서로 절충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학생 자치 활동 한복의 날 행사.|||||

 건국초는 학급 당 학생 수가 24명으로 평균(20명)보다 많다. 때문에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건 학교 운영의 큰 원동력이 된다. 건국초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이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토대가 되기도 한다.
 
 ▲“학생 수 증가, 자치를 살리면 학교가 살아난다”
 
 “학교 운영비에 절반 이상이 학생 자치와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투입되고 있어요. 이 둘의 성패가 학교 운영 절반의 성패를 좌우하는 거죠. 사실 작년에는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게 예산이 운용되기도 했고, 교육과정과 동 떨어진 쓰임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협의과정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지적되면서 올해는 90%이상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건국초의 업무지원팀은 7명이다. 학생 수가 만큼 교사들의 업무 양도 많기 때문. 담임교사들의 업무를 제로화로 만들어 교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지원팀은 교담들로 꾸려졌다. 혁신의 철학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업무를 도맡겠다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었다.

 건국초 윤만형 교장은 “혁신학교를 추진하고 운영하는데 구성원들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상황에서 구성원들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기초를 닦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비혁신학교 기간 동안 구성원들 간에 혁신의 틀을 갖추는데 진통도 따랐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의 진통은 혁신학교 운영의 기초를 탄탄히 할 수 있는 기반이다.

 건국초 기용주·오인순 교감은 “일반학교로 확산되고 있는 담임업무 제로화, 학생자치 활성화를 위해서 혁신을 망설일 수는 없었다”면서 “학생 수가 얼마만큼 더 증가할지 전망하기 어려운 난제도 있었지만, 관리자들도 함께 일을 분담하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업의 질을 높이고 학생참여를 늘리는 것”이라면서 “교육과정 재구성이 움트고 있는 지금, 차근차근 신뢰를 쌓는 것만이 앞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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