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온라인서 미리…노인들 “우린 어쩌고”
“대기시간 단축” vs “IT소외층 배제 결과”
식당 주문·서비스까지… 온라인 박탈감 커

▲ 스마트 도서관, 온라인 번호표, 무인도서 대출기, 무인 음식 주문기 (왼쪽부터) 등 온라인으로 세상은 더 편리하게 변하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등의 소외감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럴 수가 있단가? 먼저 온 사람이 먼저제. 암것도 모르믄, 그래야 쓴단가.”

 광주의 한 은행에서 만난 80대 어르신 A씨의 호통이다. 어르신은 대기번호표를 뽑지 않고 인터넷으로 미리 접수가 가능한 ‘모바일 번호표’ 서비스에 대해 듣자, 바로 역정을 내셨다.

 은행 등 금융계가 온라인(모바일)뱅킹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확대해 온 가운데,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의 ‘금융 소외’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감소 추세인 은행 창구에서도 대기번호를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되면서 어르신들의 ‘디지털 소외감’이 더욱 커진 것이다.

 광주은행이 지난달 28일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광주·전남 영업점에 모바일 번호표 서비스를 도입했다.

 기자가 직접 서비스를 이용해보니 공인인증서 등과 같은 별도의 복잡한 절차 없이도 어렵지 않게 서비스 이용이 가능했다.
 
▲은행들 “업무 처리시간 단축”

 스마트폰에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지 않고 광주은행 모바일 사이트에 접속하자 ‘모바일 번호표’ 배너가 보였다.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하니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부터 3km 거리 내에 위치한 지점 8곳이 차례로 떴고, 그 중 한 곳을 누르자 대기인원이 송출됐다.

 신청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번호표를 발급받으면, 순번에 맞춰 연락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광주은행뿐 아니라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타행들도 앞 다퉈 온라인 번호표 발급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은행들은 “미리 번호표를 발급받을 수 있어 업무 처리시간을 줄일 수 있다”며 서비스의 장점을 적극 홍보한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어디까지나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한해서다. 은행 창구에서 대기번호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린 고객에겐 “늦게 온 고객이 먼저가 되는 부당한 상황”일 뿐이었다.

 80대 초반인 어르신 A씨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업무를 보는 건 부당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인터넷 자체를 할 줄도, 배우기도 불가능한데 그걸 모른다는 이유로 일찍 은행에 가도 뒤로 밀려나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한 달에 2번 정도 금융업무를 보는 그는 항상 은행 업무시간에 맞춰 ATM(현금자동인출기) 대신 창구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이 나이가 되니 눈도 침침하고 빠뜨리는 것도 많아 돈을 뽑아 놓고도 가져오지 않아 잃어버린 일이 두 번이나 된다”며, “은행원과 면대면으로 거래를 하는 게 더 편하고 제대로 일 처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역차별 안돼, 지자체 등 보완책 필요”

 창구 업무를 원하는 고객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프라인 은행지점은 꾸준히 감소 추세다. 2012년 8000여 곳에 달했던 은행 지점은 지난해 6800여 곳으로 1200여 곳 감소했다.

 은행들이 주요 고객층인 젊은 세대에 맞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는 추세도 한 몫 한다.

 금융서비스가 ‘소비자 편의’를 확대할수록, 어르신들의 금융환경이 악화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다.

 보험업계의 경우 같은 상품도 온라인에서 가입할 시 보험료를 저렴하게 책정한다. 치매 등 고령자를 위한 보험 상품인데 온라인 전용 보험이 더 저렴하게 출시되기도 했다.

 ‘디지털 취약층’의 소외감은 일상까지 침투한지 오래다.

 70대 어르신 B씨는 터미널을 찾을 때마다 죽 늘어선 무인발권기 앞에서 멍해지고 만다.

 그는 “아예 (무인발권기를) 손댈 줄 모르는데 터미널에 갈 때마다 그 수가 늘어나 있다”면서 “젊은이들은 금방금방 표를 사서 가는데 몇 개 안 되는 창구에서 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인데 어쩌겠나”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터미널·식당 등 무인 시스템 확대

 유스퀘어 광천터미널은 매년 매표창구를 대신할 무인발권기 도입을 늘려왔고, 현재 고속·시외 매표창구 수를 훨씬 넘어선 20여 대 무인발권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식당, 카페 역시 무인 주문·결재시스템을 확대하고 있어 중년층에게도 디지틸기기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광주의 한 프렌차이즈 일본라면 전문점에선 무인시스템을 도입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호응을 얻고 있다.

 가격대는 저렴하지만, 처음 식당을 찾는 일부 고령층 고객들은 직원이 주문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식탁에 앉아 기다리며 나중에 무인기기의 존재를 알고 무안해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한 복지분야 관계자는 “IT 환경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는 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서도 “노인과 같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차별적 요소를 최소화 하고 보다 친절한 보완책들을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마련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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