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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이의 문학생각]KAPF 발기인 참여 민촌 이기영
식민지 농촌 사실적 포착
문수현
기사 게재일 : 2019-10-16 06:05:01
▲ 이기영.<그림=강현화>

 지난 글들에서 KAPF계열 작가 최서해와 조명희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 시대 경향문학을 말할 때 빠뜨려선 안 될 작가들이 많아서다. 그래서 경향 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 적어도 소설가로서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가 한 사람, 이기영을 더 다룸으로써 KAPF시리즈를 마치려 한다.

 민촌(民村) 이기영은 1895년에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2살에 사립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1910년 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914년부터 4년여 동안 가출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각지를 떠돌면서 금광, 탄광, 공사판을 전전하며 험한 인생을 많이 공부했다. 그 후 1919년에는 천안군 고원(雇員)으로 3년간, 다음에는 호서은행 천안지점행원으로 1년, 그리고 이듬해 1922년에는 친구와 함께 도쿄 유학을 떠나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적을 둔 채 대서소의 필생으로 학비를 벌며 어렵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친구가 직업적인 사회운동가가 되자, 그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서적을 접하게 된다. 또한 조선유학생 모임에서 조명희 등의 문인들과 교우했다. 그러다가 1923년 자연재해인 관동대지진을 만나 유학 생활을 1년 반 만에 포기하고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이듬해 1924년에 처녀작 ‘오빠의 비밀편지’를 ‘개벽’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섰다. 그리고, 1925년 KAPF가 결성될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계급적 의식을 뚜렷이 보이는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가난한 사람들’(1925) ‘민촌’(1925) ‘농부 정도룡’(1926) ‘쥐이야기’(1926) 등은 1920년대 식민지 농촌현실을 포착한 수작들이다. 이후 이기영은 ‘원보’(1928), ‘서화’(1933) 등을 통해 농촌 현실에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들면서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여나간다. 특히 그의 대표작 ‘고향’(1933)은 일제 강점기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장편소설로 꼽힌다.

 여기서는 ‘고향’과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면서 ‘농부 정도룡’과 ‘서화’ 두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농부 정도룡’: 새로운 인물 유형 창조
 
 ‘농부 정도룡’의 무대는 그의 첫 농민소설 ‘민촌’과 마찬가지로 농촌이다. 소설의 기본 구도는 악랄한 친일지주인 김주사와 김주사의 착취와 횡포에 시달리는 소작농민들의 대립이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호구지책을 위해 딸 셋을 팔아치우는 용쇠와 같이,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노예근성에 젖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정도룡만큼은 다르다.
 
 그는 청지기(양반집 시중 들던 사람)였던 아버지가 백정의 딸인지 무당인지와 상관해서 낳은 이로 날품팔이·머슴살이를 거쳐, 머슴 살던 집 교전비(신부의 몸종)였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이 마을로 흘러들어온 농부다. 이런 비천한 배경과는 달리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녀 견문을 넓게 쌓았을 뿐 아니라, 인물됨이나 행동거지도 범인의 수준을 넘는다. 그는 비상한 용기, 강인한 의지, 굳은 정의감의 소유자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근사한 것을 기화로 그를 ‘계룡산 정도령’이라고 부르며, 건너마을 양반촌에서도 그를 만만히 보지 못할 정도다. “동리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를 참으로 정도령같이 믿으며 그의 말이라면 모두 복종하게 되었다. 물론 이 동리의 크고 작은 일은 그의 계획과 지휘로 해결되었다.”
 
 어느 날, 이웃의 한 노파가 몰인정한 지주에게서 하루아침에 소작을 떼이고 그 충격으로 죽자, 정도룡은 마을사람들을 동원해 장례를 치러주고, 자기가 붙이던 논을 서슴없이 노파의 식구들에게 주어버린다. 그리고는 지주를 찾아가 새로 소작을 달라고 한다. 지주가 거절하자 그는 지주를 죽일 결심으로 집에 돌아와 식칼을 품고 나가려 한다. 그러자 정도룡의 아들 금석이는 아버지에게 “그까짓 식칼보다는 낫을 들고 가시유”라고 말하며, 누이동생 금순이에게는 만일 아버지가 지주를 죽이지 못하면 자기가 죽일 것이라는 말을 한다. 다행히 살인은 없이 일은 잘 풀렸다. 김주사가 마름 순득이 아버지를 보내 땅을 내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도룡이 집에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딸 금순이마저 이미 품속에 칼을 감추어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종래의 신경향소설에서와 같이 가난과 절망으로부터 스스로 파멸하거나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아니다. 아울러 그는 그 자신이 농민으로서 다른 농민을 각성시킨다. 이는 종래의 경향 소설들이 흔히 지식인 해결사를 등장시켜 갈등을 푸는 방식과 다른 점이다. 다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기영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영웅주의’라는 한계가 발견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농부 정도룡’에는 정도룡의 18살 아들 금석과 16살 딸 금순도 등장하는데, 작가가 이 인물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1930년 9월 함께 자리한 카프 맹원들.

▲괴악한놈들을 모다이러케 짤너죽엿스면
 
 금석이는 동생 금순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아버지가 죽이지 안으면 내가죽일터이다. 저낫(윗목벽밋헤 세워노은낫을가리치며)으로 목아지를 후리면 그놈이 뎅겅내려안질것이다. 그리고정녕 펄떡펄떡뛸것이다. 거짓말인가드리바요! 그언제인가 진풀을휙-휙-휙-후린때이다. 대가리를꼰주들고잇는독사한놈을 낫으로휙-길엿고나. 그랫더니 이놈이팔딱!팔딱뛰더구나나는그때도생각하엿다. 이세상에괴악한놈들을 모다이러케짤너죽엿스면-하고. ……그래그놈들의 피투성이대가리들이 개고리뛰덧하는꼴을보앗스면-하고 그런데 그러케 죽일놈이 하나생기지안엇늬?”

 “나도정녕 몃놈은 죽여볼게야! 그런데 너도고기갑슨할것갓다. 아모려나잘됐군!” 하고 금석이는 여전히빙그레웃는눈으로 금순이를흘닌드시 처다보는데 그런데 눈싸힌겨울날 개인한울에 빗나는아츰해빗갓흔 눈우슴치는금순이는 아모말어시별안간 괴침이를 훔치적하더니 날세파라케슨 단도를끄내서 금석이압태다내던젓다. (중략)모친은얼업시금순이를한참처다보다가 “아니!무서운 씨알머리들!” 하고마치 넉일흔사람의혼자말하는것처럼 중얼거렷다. 그는 금순이가저칼을 꼰주잡고김주사의목을향하고팩!달녀드는광경이 언뜻눈압헤그려지자 그는전신에 소름이쪽-끼치엿다………모친은와락달녀드러금순이를을싸안엇다. 그리고 아지못할눈물이샘솟듯하며 “금순아!금순아!” 하고 목메여 부르지젓다...... 그러나 금석이는 여전히빙그레웃고잇는데거긔에 뎡도룡이도라왓다 그는눈을크게뜨고식구들을번갈너처다보앗다. 그의눈은다시 단도를보고 금순이를처다보앗다…………
 
 작가의 이런 묘사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계급 착취가 소박한 농민가정 남매에게 섬뜩한 감정을 주입한 주범이라는 풍자였을까? 어쨌든,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듯하다.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인물 유형[전형]을 창조했으며, 풍부한 서사성[이야기성]을 획득했다고 보는 한편(김재용, 카프문학운동연구, 1989), 이기영의 좋은 작품은 프로문학의 노골적인 투쟁의식이 감춰진 1933년작 ‘서화’나 ‘고향’ 같은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김우종, 1992).
이기영 단편소설 ‘서화’(1933)
 
▲‘서화’: 장편으로 가는 길목
 
 이기영의 또 다른 문제작 ‘서화’는 한국 경향 소설사에서 남다른 의의가 있다. 첫째로는 주인공 돌쇠의 성격이 이전 작품들의 경우와 다르다. 주인공 돌쇠는 소작농으로, 대개의 경향 소설에서 이러한 인물은 적극적이며 혁명적이어서 ‘쉽게’ 소작쟁의의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돌쇠는 노름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당시 소홀히 다뤄지던 농민들의 이중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당시의 비평가 임화는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포착해야만 농민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그리는 것이 바로 ‘리얼리즘’일 것이다. 농민층의 ‘긴’ 변화과정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장편소설이라는 양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궁지에 빠져 있는 돌쇠를 구원하는 사람은 일본 유학생으로서 농민들과는 다른 지식을 갖고 있는 정광조라는 인물이다. 정광조는 이 소설 말미의 마을회의에 갑자기 등장해서 뛰어난 언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소설을 대단원에 접어들게 한다. 말하자면 장편소설을 예상케 했으나 단편소설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작가는 후에 이 조급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식인 김희준을 등장시켜 스스로 자기비판을 감행하는 장편소설 ‘고향’을 쓰게 된다.

 이 대목에서, 최서해와 조명희를 비롯해 이기영 이전의 경향소설 작가들이 장편을 거의 쓰지 않았고, 썼더라도 경향소설 내지 리얼리즘소설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그의 대표작 ‘고향’(1933)은 일제 강점기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장편소설로 꼽힌다. 이 소설은 “세상은 점점 개명해 가도 인심은 점점 각박해 가니 이것이 도무지 무슨 까닭인가?”라는 문제를 던지면서, 식민지 근대화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이 작품은 당시의 검열기제로 인해 일제 강점기의 폭압상이 직접적으로 기술되고 있지는 않지만, 안승학과 김희준의 대립을 통해 당시 농촌 삶의 구체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포함한 식민지 극복의지를 1930년대 조선의 현실에 비춰 재현해낸다.

 참고로, (그에게 특수한 경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많은 작가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6·25전쟁과 같은 격동 속에서 정치 분쟁의 희생물이 된 것과 달리, 그는 해방을 맞은 지 1년 만에 월북한 이후 1984년 사망하기까지 북한의 정계와 문단에서 지도적 위치에 서 있었다.

 북한에서 창작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두만강’(1부 1954, 2부 1957, 3부 1961)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대하장편소설로, 충청도의 두메산골에서 시작해 만주까지 이어지는 식민지 시기 농민과 민중의 고난과 투쟁을 그려냈다. 이기영은 이 소설로 ‘1960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상’을 받았다. 또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평가 김윤식은 ‘두만강’이 ‘고향’의 작품성에 미달한다고 본다. 그는 ‘두만강’은 삶의 본질적인 것이 에피소드적 처리 방식에 휘말려버린 작품이어서 서사성 확보에 실패했으며, 예술성의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워 형상성의 유지에 급급했다고 보았다.
글=문수현/그림=강현화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아울러 이 코너는 전북교육신문에도 함께 실립니다.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카프문학운동연구(역사문제연구소 문학사연구모임), 역사비평사, 1989
 한국현대소설사(최신증보판, 김우종), 성문각, 1992
 이기영(정호웅 편), 새미, 1995
 김윤식 교수의 소설 특강2, 한국문학사, 1997
 한국소설사(김윤식·정호웅), 문학동네, 2000
 한국현대문학사(김윤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8
 이기영(오창은),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1, 소명출판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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