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2월 26일자 ‘180명 체포’ 등 3차례
동경주재기자 일정부 통한 간접취재 ‘한계’

전남대 김재기 교수 “세계적 사건 반증” 평가
90주년 앞두고 3년 추적 끝에 발굴내용 공개

▲ 뉴욕타임즈 1929년 12월 28일자 보도. <전남대 제공>
뉴욕타임스가 광주학생독립운동 발발 당시의 관련 기사를 3차례나 보도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전남대학교 김재기 교수(정치외교학과)는 3년간의 추적 끝에 지난 7월 미국 뉴욕 맨하탄에 있는 뉴욕공공도서관에서 1929년 12월 26일자 ‘동경경찰 한국학생 180명 체포’라는 제목의 기사 등 모두 3건을 발굴해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앞두고 공개했다.

김 교수가 공개한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첫 기사는, “한국에서 발생한 학생시위는 공산주의 경향의 비밀결사가 주도한 정치적 사건으로, 1929년 12월 9일 900여명의 학생들이 체포됐다.”고 전하며 “한국의 6개 지방 40여개 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조선총독부에 의해 모든 사건이 종료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틀 후인 12월 28일자에서는 ‘한국학생들이 시위 준비로 체포됐다’라는 제목으로 “일본 동경경찰은 한국유학생과 노동자 100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한국인들로 구성된, 동경에 있는 대학의 비밀단체이다. 12월 9일 서울에서 900명이 체포됐다”라고 보도했다.

세 번째 기사는 1930년 2월 4일자에 “일본 외무부는 한국인의 총격 사건이나 심각한 교란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밝히고, 몇 주 동안 한국에서 광범위한 학생 시위가 보고됐지만, 시위는 격렬하지 않았으며 일본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조선총독부가 판단한 한국의 정치적 불안은 공산주의자가 중심이 돼 일으켰다. 많은 학생들이 체포됐지만 공산주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소수였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이같은 보도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축소·왜곡해 일부 소수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사소한 일로 취급하려는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동경 주재기자가 일본정부에 의존한 간접취재를 하면서 드러낸 한계로, 광주나 서울에서의 대규모 시위를 현장감 있게 담아내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비해 독일 베를린에서 발행된 포쉬쉐 자이퉁(Vossische Zeitung)의 1930년 2월 23일자 기사는 리차드 카츠 기자가 서울에서 직접 취재해 A4 4매 분량으로 자세하게 보도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도 1930년 1월과 3월 2회에 걸쳐 ‘북미한인유학생회 소식지’를 인용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실상을 적극 보도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부터 1930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민족주의계와 공산주의계가 연대해 전국 8도 320여개 학교에서 진행됐으며, 미국, 중국, 일본, 멕시코, 쿠바 등 해외에서까지 지지대회와 특별후원금 모금운동이 진행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김재기 교수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워싱턴포스트에 이어 뉴욕타임스에까지 보도됐다는 것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세계적인 운동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를 교과서에 수록하고, 화보집으로 제작해 전국 학교와 도서관에 배포하는 등 교육용으로 활용해야 하며,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천안 독립기념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등에 전시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홍기’와 중국 국민당 기관지 ‘중앙일보’, 독일신문 ‘포쉬세 자이퉁’,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기사를 발굴한 바 있다.

또 쿠바, 멕시코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한 내용의 기사와 상해임시정부 김구선생이 미주한인들에게 보낸 감사편지를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에서 찾아냈으며, 지난 2017년에는 ‘워싱턴 포스트’ 보도기사도 찾아낸 바 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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