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영산강 좌우안 아파트서 조류충돌 빈번
‘가이드 라인’만 지켜도 사고 감소 효과
강제성 없어 유명무실…“공공기관부터”

▲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이 아파트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의 사체
 “으앗! 끔찍해요. 애들이라도 보면 어떡해요.”

 영산강변 바로 옆에 자리잡아 자연 풍광이 좋은 광주 광산구 A 대단지 아파트.

 단지 내 정원엔 멋진 소나무가 고고함을 뽐낸다. 그 주위로 새들이 노닐며 지저귀는 모습이 고즈넉하다.

 하지만 단지 내 한켠 방음벽 주위엔 죽어 널부러진 조류 사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평화로운 풍경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5일 “조류가 상시적으로 아파트 방음벽에 충돌해 죽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A 아파트를 찾았다. 실제 방음벽 주위로 수십 마리의 조류 사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30~40cm 큰 새부터 작은 새까지. 죽은지 오래돼 이미 분해돼버린 사체부터 방금 사고를 당한 듯 생생한 모습의 사체도 눈에 띄었다. 주변으론 깃털들이 흩날린다.

 방음벽 앞뒤로 죽어있는 것으로 볼 때, 방음벽에 부딪혀 떨어져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로 만들어진 방음벽은 티 한 점 없이 투명했다.
 

▲티없이 맑은 유리창…새들 비명횡사

 지나가던 한 시민은 “끔찍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보면 가슴아파할 것 같다. 정서적으로 정말 안좋을 것 같아 이쪽으로 잘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제보자인 고등학생 김모 씨는 “관리자들이 죽은 새들을 풀숲으로 던져버리는 모습이 충격스러웠다”면서 “이렇게 새들이 많이 죽는데 아무런 조치도 안하고 그냥 휙 던져버리고 끝내는 건 아닌듯 싶다”고 말했다.

 관리소를 찾았다. 그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입주 후 꾸준히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새들이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방음벽 건축이 새들의 이동 경로를 막아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관리소장 B 씨의 말이다.

 그는 “건설사와 보완 협의를 하고 있는데, 이 문제도 요구사항으로 들어가 있으니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러가지 시급한 문제들이 있어, 방음벽 문제가 우선 해결될 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곳 뿐만이 아니었다. 광산구에는 영산강을 따라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해 있어 이같은 피해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온라인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https://www.naturing.net)’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이처링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이트다.

 이 중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도 있는데, 이를 통해 조류의 방음벽 충돌 현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광주지역에선 총 256건의 조류 충돌 사고가 기록됐다.

 특히 A 아파트 인근 영산강변 아파트 단지에서 수십 건의 조류 충돌 사고가 기록됐다. 대부분의 사고 현장이 아파트단지와 큰길가 사이로 기록된 것으로 미뤄볼 때, 방음벽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유추된다.
 

▲광산구 다른지역도 유사사고 많아

 이같이 투명 방음벽에 의한 조류 충돌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년 동안 조류 800만여 마리가 투명창이나 방음벽에 충돌해 폐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루 2만여 마리가 죽는다는 통계치다. 참매,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희생도 많다.

 환경부는 올해 5월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강제성이 없고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A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가이드라인을 설명하자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어려워 보이지 않으니 곧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이드라인은 어렵지 않다. 조류 충돌을 방지하려면 불투명한 소재를 쓰면 된다.

 투명 소재를 썼더라도 방법은 있다. 세로 5cm 가로 10cm 간격으로 점을 찍어주기만 해도 된다. 패턴의 높이가 5㎝, 폭이 10㎝ 미만일 경우 그 사이를 통과해서 날아가려고 하지 않는 조류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5X10 법칙’이다.
 
▲“유리창에 점만 찍어도 되는데…”

 이밖에도 수직무늬, 격자형 무늬, 실크스크린, 태양광패널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기존 활용되던 매 모양 ‘버드세이버’는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공공분야’에서의 선제적 실천을 강조한다. 공공영역에서 관리할 수 있는 도로나 철도, 공공건축물, 산업단지, 정류장, 지하철 출입구 등에서 시범사업을 적극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복지부장은 “네이처링을 통해 광주에서도 멸종위기 1급 매가 죽은 사례도 기록됐다”며 “법제도 정비를 논의하고 있는데, 지역사회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국토관리청과 지자체, 공공기관 만큼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류충돌 저감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경기도 수원시가 조류친화적 도시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데,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본부가 개관할 예정인 광주도 이를 계기로 선도적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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