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암포라(amphora). 그리스 아테네 디필론 묘지. 기원전 755-750년. 높이 160cm.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 디필론(Dipylon)에서 나와 ‘Dipylon Amphora’라 한다.
 서양미술학자들은 이 무늬를 해석하지 못한다!
 
 〈사진1〉은 그리스 아테네 디필론 묘지에서 나온 암포라(amphora)다. 암포라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항아리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고 풀이한다. 〈사진1〉을 보면 몸통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암포라는 높이가 160센티미터나 된다. 이 암포라 설명글을 보면 ‘꽃병(vase)’이라 해 놓은 게 많은데, 사실 이 병은 바닥에 구멍이 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그릇은 시신을 넣었던 ‘유골단지·옹관(ossuaries)’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항아리는 세계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주로 앞쪽에 보인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 J. Gombrich, 1909-2001)는 《서양미술사》(예경, 2001)에서 이 항아리를 내보이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의 도기는 단순한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어떤 풍경을 묘사하더라도 이런 엄격한 디자인 패턴이 보인다.”(75쪽)

 서양미술사학자들은 그리스 철기시대 무렵 그릇을 보통 두 시기로 나눈다. 무늬가 단순한 원(原)기하학 양식(Protogeometric Style, 기원전 1050~925)과 후기의 기하학 양식(Geometric style, 기원전 925~700)으로 나누어 살핀다. 〈사진1〉 암포라는 후기의 기하학 양식(Geometric style)으로 볼 수 있다. 보는 바와 같이 무늬가 아주 복잡하다. 그런데 서양미술학자들은 이 무늬를 아직 해석하지 못한다. 그저 그 모양 생김새에 따라 만(卍)·십자·지그재그·톱니(삼각형 띠)·뇌문(雷紋)·마름모, Ⅹ자형, 바둑판, 메안더(meander) 무늬라 할 뿐이다. 〈사진1〉 암포라에서 메안더 무늬는 사슴 아래 굴곡진 무늬를 말한다. 이 무늬 이름은 지중해로 흘러드는 터키 멘데레스 강(Menderes) 이름에서 왔는데, 보통 에스(S)자 모양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말하고, 서구 문양학자들은 이처럼 생긴 무늬를 보통 ‘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meander’를 옮길 때 흔히 번개무늬(뇌문·雷門)로 번역한다. 존 그리피스 페들리(John Griffiths Pedley)가 쓴 《그리스 미술 Greek Art and Archaeology》을 번역한 조은정 또한 ‘뇌문’으로 옮겼다.
 
높이가 160센티미터나 되는 암포라 옹관
 
 〈사진1〉 암포라 몸통 그림을 먼저 풀이해야 할 것 같다. 이 장면은 의식용 침상에 망자를 누여 사람들에게 보이고 망자 앞과 옆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슬퍼하는, 그러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는 의식이다. 그림을 보면 양옆으로 눈물까지 그렸다. 이 의식이 끝나면 망자는 마차를 타고 묘지로 갈 것이다. 이 장례의식을 프로테시스(Prothesis)라 한다. 우리 장례 풍습에도 이와 같은 게 있다. 망자를 관에 모시기 전에 식구들이 망자를 마지막으로 보는 의식이다. 식구들은 망자의 손과 발을 부여잡고 곡을 한 다음 관에 모신다. 이것을 입관(入棺)이라 한다. 그런 다음 장지에 모시는 것이다.
〈사진3〉 암포라 손잡이 그림.

 〈사진2〉 암포라 몸통 그림을 보면 망자가 침상에 누워 있다. 치마를 입은 걸로 보아 여인이다. 바로 앞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그 오른쪽 두 사람은 걸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슬퍼하고 있다. 이 네 사람은 망자의 식구인 듯싶다. 그리고 양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친척으로 보인다.

 암포라는 와인이나 올리브유, 곡식을 저장하거나 운반할 때 쓰는 항아리다. 그런데 〈사진1〉 암포라는 실제 생활에서 쓴 항아리가 아니라 옹관으로 쓰려고 특별히 주문해 구운 그릇이다. 그래서 높이가 160센티미터나 되는 것이다. 아테네 아고라 화장 무덤 터에서는 망자를 화장하고 남은 재와 유골을 담았던 암포라가 나온 적이 있다. 화장을 하기 전에는 시신을 암포라에 바로 넣기도 하고, 화장을 한 뒤로는 유골을 담는 항아리 용도로 쓴 듯싶다. 한반도 마한의 ‘옹관’으로 보면 될 것이다.

 〈사진2〉에서 프로테시스(Prothesis) 장면 바로 아래에 있는 삼각형 구름 띠무니와 이 띠무늬 사이 양쪽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체크무늬)가 바로 구름(云)과 비(雨)다. 그러니까 삼각형 구름에서 비가 양쪽으로 내리치는 것이다.

 이러한 옹관은 한중일·베트남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베리아 신석기인도 썼다. 옹관은 죽음을 해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베트남·중국의 옹관 몸통에는 삼각형 구름 띠무늬가 있다. 이것은 옹관이 구름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스페인 발렌시아 신석기 이베리아인들도 몸통에 반원 모양 뭉게구름 손잡이를 달아 옹관이 구름이라는 것을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인들 또한 암포라에 삼각형 띠구름과 구불구불 각진 구름무늬(〈사진2〉의 메안더 무늬)를 그려 이 암포라가 구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세상 만물이 구름(云)에서 내린 비(雨), 즉 물(水)에서 태어났듯 사람 또한 물의 기원인 구름(云)에서 태어났고 죽어 다시 구름으로 돌아간다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 옹관에 대해서는 나주 마한 옹관의 비밀을 풀 때 아주 자세히 다룰 것이다.
 
곰브리치나 잰슨 부자 모두 신석기 미술을 해석하지 못한다
 
 다시 곰브리치로 와 보자. 곰브리치는 〈사진1〉에서 암포라 몸통 그림 프로테시스(Prothesis) 의식을 간단히 설명한 다음 이 장면 위아래를 꽉 채운 무늬를 그저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복잡하게, 그도 빈틈이 하나도 없이 온 마음으로 그린 무늬를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이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술을 보는 태도, 이 태도를 우리는 과연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곰브리치뿐만 아니다. 호스트 월드마 잰슨과 그의 아들 앤소니 F. 잰슨이 함께 쓴 《서양미술사》(미진사, 2001)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부자는 씨족미술(그들은 신석기미술을 씨족미술이라 한다)의 특징을 “추상적인 경향”(48쪽)이라 하고, 그릇에 “추상적인 문양으로 표면을 장식”했다고 한다. 사실 곰브리치나 잰슨 부자 모두 신석기 그릇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한다. 그들은 막연히 ‘기하학적 문양’ ‘추상적인 문양’이라 할 뿐이다. 하지만 신석기 그릇 무늬는 ‘기하학’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장구한 신석기시대, 한반도 신석기는 자그마치 1만년에 달한다. 그 오랫동안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했다면, 왜 1만년 동안 그러한 미술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학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모른다(I don’t know)’는 말을 뭔가 있어 보이는 ‘기하학적 추상무늬’ 같은 말로 돌려서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학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싶다.
〈사진3〉 암포라 손잡이 그림.
 
원(原)기하학 양식과 세계 신석기 세계관
 
 아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비, 1996)에서 신석기 미술을 제법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자연주의 양식은 구석기시대 종말까지, 그러니까 수천·수만 년간 지속되었다. 예술사상 최초의 양식 변화를 이루는 전환점은 구석기시대가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면서였다. 이때 비로소 체험과 경험에 대해 개방적인 자연주의적 경향이 물러나고 경험세계의 풍성함을 등진 채 모든 것을 기하학적 무늬로 양식화하려는 경향이 지배하게 된다. 자연에 충실하며 그때그때 모델의 특징을 애정과 인내로 묘사하려는 그림 대신에, 사물을 충실히 그려내기보다는 상형문자처럼 가리키는 데 그치는, 획일적이고 인습화된 기호가 나타난다. 예술은 이제 인생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보다도 사물의 이념이나 개념 내지는 본질을 나타내려 하고 대상의 묘사보다 상징의 창조에 주력한다고 본다.(17쪽) 사실 이런 태도는 동서양 미술사학자들이 아주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논지이기도 하다.

 하우저는 신석기 미술을 ‘기하학적 무늬의 양식화’로 정리한다. 신석기인은 구석기인과 달리 생생한 자연주의 미술을 하지 않고 ‘사물의 이념이나 개념 내지는 본질’을 묘사하고 ‘상징의 창조’에 주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논리상 문제가 있다. 신석기인이 ‘대상’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이념·개념·본질을 그렸다고 하는데, 정작 그 대상이 무엇인지, 즉 그 ‘구상’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의 논리는 ‘어떤’ 대상을 그리기는 했는데, 겉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개념과 본질을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개념’은 알 수 없고 그저 ‘기하학적 무늬’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 대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일까? 한반도 서울 강동구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근대사학은 100년 남짓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기하학적 추상무늬’로 보고 있고, 그리고 그 무늬가 무엇인지 모른 채 신석기시대를 ‘빗살무늬토기문화’라 말하고 있다. 이제는 이 무늬의 비밀을 풀 때도 되었다고 본다.
〈사진4〉 그리스 만티니아(Mantineia) 주전자. 〈사진5〉 그리스 암포라. 두 그릇 모두 원(原)기하학 양식(Protogeometric Style, 기원전 1050~925) 무늬이다. 아놀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비, 1996)에서 고든 차일드가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Man Makes Himself》에서 말한 한 사례를 든다. 고든 차일드는 신석기시대 세계 어느 마을에서 나온 토기 무늬를 봐도 거의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하우저는 이런 사실을 아주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한다(23쪽). 바로 〈사진4-5〉 토기 무늬가 그렇다. 이런 무늬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신석기 미술에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무엇을 ‘구상’으로 하는 무늬인지 밝히는 것이다.

 〈사진4-5〉 주전자와 암포라는 원(原)기하학 양식(Protogeometric Style, 기원전 1050~925)으로 분류할 수 있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무늬가 〈사진1〉 암포라(amphora)와 같이 복잡한 ‘기하학 양식(Geometric style 기원전 925~700)’ 무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4-5〉 그릇에 있는 무늬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세계 신석기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무늬다. 물론 이 무늬는 한반도 서울 암사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진4〉 주전자에서 목 바로 아래 무늬를 보면 삼각형 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고, 이 구름에서 양쪽으로 빗줄기가 내리치고 있다(〈사진9-10〉 참조). 〈사진5〉 암포라에서 구름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고, 이 반원형 둘레에 점점이 점을 찍어 빗방울(雨)을 표현했다. 이렇게 세계 신석기인들은 그릇 아가리 쪽에 구름과 비를 새겼다. 사실 이것만 잘 헤아리면 〈사진1〉 암포라(amphora)의 후기 ‘기하학 양식(Geometric style) 무늬’도 해석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구 세계미술사학자들은 아직 이것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풀 수 없다고 할 뿐이다. 그것은 그저 ‘기하학적 추상무늬’이기 때문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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