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보루’ 저자 야마카와 슈헤이가 준 울림
“근로정신대 투쟁, 인간의 양심” 일본에 메시지

▲ 근로정신대 피해자 유족 고 김중곤 할아버지를 만난 것을 계기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하면서 진실을 향한 투쟁을 책으로 남겨 일본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 야마카와 슈헤이 씨. 과거 도쿄 금요행동에 참여했을 때 모습.<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는 이외에는 길이 없다. 가해자가 배상하지 않으면 누가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인가? 이것은 회피주의와 인도주의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보루(양심)인 것이다.”

 근로정신대 유족을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에 참여한 한 평범한 일본인이 미쓰비시중공업, 일본 사회에 던진 메시지.

 이 메시지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을 소개하며 ‘일본의 양심’을 성찰한 ‘인간의 보루’를 써낸 야마카와 슈헤이 씨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출간한 ‘인간의 보루’를 계기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회복에 대한 야마카와 씨의 울림있는 목소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야마카와 씨는 다양한 소설·에세이 등을 써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주택 산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가 일제강제동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근로정신대 피해 유족인 고 김중곤 할아버지(고 김순례, 고 김복례 씨 유족)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김중곤 할아버지와 인연, 금요행동

 1992년 당시 주택산업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는 동료들과 제주도로 골프 여행을 왔다가 한 다방에서 만난 김중곤 할아버지를 통해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알게 됐다.

 “당시 근로정신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 여동생은)나고야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었습니다.” 김중곤 할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야마카와 씨는 이후 홀로 제주도를 방문, 김중곤 할아버지의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다 김중곤 할아버지의 소개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이하 나고야 소송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를 만났고, 나고야 소송지원회에 일원으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김중곤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등이 1999년 3월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2007년 5월31일 항소심에서 패한 이후 도쿄 금요행동을 시작했다.

 야마카와 씨는 이때부터 2010년 8월 미쓰비시중공업과의 협상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지속된 금요행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츠쿠다 가즈오 사장은 하루라도 빨리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해결해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가득 찬 모습을 접할 때 우리는 여기에 서서 이렇게 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다섯 번째 도쿄 금요행동에서 처음 핸드스피커를 잡은 야마카와 슈헤이 씨가 미쓰비시중공업을 향해 외친 호소다.
고 김중곤 할아버지를 만난 것을 계기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이 일원이 돼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도쿄 금요행동에 나선 야마카와 슈헤이 씨가 일본 시민들에게 근로정신대 역사적 사실, 관련 소식 등을 담은 ‘지라시’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사실 그는 평소 심장 질환을 갖고 있었다. 10대 후반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요양생활을 했고, 2005년엔 심장 수술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자발적 해결을 촉구하는 일에 함께 했다.

 그는 2009년 8월12일 ‘시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금요행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첫째 이유는 전쟁을 미워하고 반대해서다.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은 전쟁과 싸우는 것이다”고 밝혔다.
 
▲“원고가 납득하고, 피고가 명확하게 인정해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활동을 하면서 품 속에 유서를 가지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 강구해 낸 본인만의 수단이다.

 가지고 다닌 유서는 2장. 하나는 가족 연락처가 적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쓰비시중공업 츠쿠다 가즈오 사장 앞으로 보내는 유서였다.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에 보내는 유서는 요청서 형식으로 밀봉해 가지고 다녔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된 적 없지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원고가 충분히 납득하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가 범죄에 대해 명확하게 잘못했다고 인정했을 때 (진정한 의미의)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이것(미쓰비시 사장에 보내는 유서)을 품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 쓰러져도 후회는 없다.” 그가 해당 유서와 관련해 ‘인간의 보루’에 담은 내용이다.

 야마카와 씨는 미쓰비시와의 2년간 협상 이후 2012년 8월10일 재개된 금요행동개부턴 거의 참여를 못하고 있다. 현재는 투병 중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이 “나 자신의 삶”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야마카와 슈헤이 씨는 품 속에 유서 2개를 가지고 다녔다. 하나는 가족들의 연락처(왼쪽)가 적힌 것이고, 다른 하나(오른쪽)는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기억하는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2011년 6월 휴생연금 99엔에 대한 항의, 재심사 청구를 위해 도쿄를 찾아갔을 때 열린 교류회 때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가 2008년에 써낸 ‘인간의 보루’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의해 번역돼 국내에 출간됐다.

 김중곤 할아버지, 양금덕 할머니, 나고야 소송지원회 등이 억울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되찾는 활동을 통해 ‘인간의 양심’을 성찰하는 이 책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인권문제에 눈을 뜬 한 평범한 일본인의 진심어린 호소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 인권에 눈뜬 평범한 일본인의 호소

 야마카와 씨는 책이 국내 출간된 뒤 김정훈 교수를 통해 “김중곤 씨를 통해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한 사실을 들은 점, 일본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 문필가로서의 사명감으로 ‘인간의 보루’를 집필하게 됐다”고 밝혀 왔다.
지난 2011년 도쿄에서 열린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교류회 당시 단체사진. 야마카와 슈헤이 씨와 김중곤 할아버지가 맨 앞 좌석에서 함께 투쟁 승리를 외치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평범한 시민이 역사의 피해자를 만나 일본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 피해자 아픔에 공감하는 것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낸 글은 일본의 양심을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며 “역사학자가 쓴 전문서적이 아닌 평범한 일본인이 일본 사회에 던지는 이 마지막 호소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야마카와 씨는 ‘인간의 보루’ 서문을 통해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일본인이 읽어주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리고 재판관을 비롯한 사법관계자 분들도, 미쓰비시중공업 사원 분들도 읽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국언 대표는 “시민모임과 나고야 소송지원회 모두 평범한 시민들이 어떤 것을 목격하고 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해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됐다는 점에서 ‘인간의 보루’에 담긴 내용이 동병상련, 이심전심으로 와닿는다”면서 “정말 지극히 순수한 인간의 고뇌, 자기 성찰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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