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번 버스타고 화순 가기

▲ 동면 장동2리 찰동마을 광신상회 주인 김종임 할머니(왼쪽)와 단골 김화순 할머니.
좌석버스를 탔다. 순전히 버스 정류장에 있던 여중생들 때문이다. 서로 동전을 모으더니 `이번엔 좌석버스를 타보자’고 다짐하는 게 일종의 결의같아 피식 웃다가 덩달아 버스를 탔다. 그래서 오늘은 `700원 여행’이 아니라 `1200원 여행’이 되어 버렸다.
일반버스와 좌석버스의 값 차이는 500원. 그 차이가 아이들에게는 작은 게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보니 십여 년 전만 해도 에어컨이 나오는 좌석버스는 `고급’이었다. 어머니가 사준 승차권에 몇백원만 더 내면 될텐데도 좌석버스를 타는 것이 못내 망설여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몇 해가 지나 버스 앞 유리창에 `냉방중’이란 문구를 붙일 필요가 없어질 정도로 에어컨 나오는 버스가 흔해졌지만….
시대 따라 버스도 달라진다. `리무진형 버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 환경을 생각해 압축 천연가스를 사용한 버스가 나오고 있다. 그저 `이동’ 중심이 아니라 이제는 `서비스’를 고려한 교통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이동’이 아니라 `서비스’ 중요한 시대
“에어컨이다∼너무 시원해.”
여중생 너댓 명이 우당탕탕 버스 뒷좌석으로 맹렬히 뛰어간다. 새빨개진 얼굴에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뒷좌석에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내 자리가 훨씬 바람이 세다” “너땜에 좌석버스 탔는데 나랑 자리 바꿔.”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주위에 아랑곳없이 재잘대는 걸 보고 앞자리에 앉은 손님이 면박을 준다. 금세 분위기가 서먹해진다.
머리 위로 에어컨 바람이 내려 꽂힌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시원하지만 머리가 지끈거린다. 창문을 열고 싶어 손을 댔다 대뜸 눈치를 받는다. “에어콘 나온디 창문 열면 쓴당가.” 무안해진 손이 괜스레 창문 틀에 낀 먼지만 훔친다. 따가운 햇살에 승객들은 슬며시 일어나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대병원 앞에 이르자 나이드신 분들이 버스에 힘겹게 오른다.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뗀다. 자리에 털썩 앉으시더니 혼잣말 하듯 말을 멈추지 않는다. “요새는 다리가 무장 퍽퍽해지네. 논에서 일하다본께 물팍(무릎)이 쑥쑥 애려(아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농사일을 접을 수 없는 어르신은 행여 낯선 이가 자식을 타박할세라 서울에 있다던 자식 자랑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고놈이 일하지 마라고, 나보고 이제 그만해라고 하는디, 사람이 놀면 쓴당가. 쉬엄쉬엄 하는디도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러네.”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에 학살됐던 역사 만나고
버스는 그렇게 도심을 빠져나가 화순으로 향한다. 화순읍에 이르자 버스를 기다리는 이가 없다. 한 두명씩 내리자 남아있는 승객은 대여섯명 정도. 운전사는 라디오를 켠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랩.”
송대관의 노래에 뒤쪽에서 한 박자씩 놓쳐가며 흥얼거린다.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철길에 풀이 무성하다. 장작에서 연탄으로, 연탄이 기름으로, 천연가스로 우리가 쓰는 연료가 바뀌는 동안 지난날 전성기를 누렸던 석탄업도 전같지 않다.
화순과 복암을 연결하는 화순선은 1942년 개통된 이후로 화순광업소에서 생산된 무연탄을 수송하느라 분주했던 화물열차였지만 이제는 하루에 한번 운행할 정도가 됐다. 화순탄광은 1905년에 발견돼 광업권을 등록한 후 일제시대에 남선탄광(주)과 종연광업(주)에서 개발했다. 1945년 미군정청에서 상공부 직할로 운영되다 1950년 대한석탄공사가 인수해 화순광업소가 되었다.
1946년 8월15일은 화순 동면 탄광촌 사람들이 미군정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되었던 날이다. 광주에서 열린 8·15 기념식을 두고 미군정은 좌익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주최한 것이라며 불법집회라고 막았다. `우리에게 쌀을 달라’ `완전한 독립을 달라’고 외치던 화순탄광 노동자들을 미군은 화순 너릿재까지 `토끼몰이식’으로 몰아놓고, 총칼을 겨누었다. 시간은 말이 없다. 50년이 지났지만 역사는 되풀이된다.
찰동마을 입구 정자나무엔 마을사람들 옹기종기
차창 너머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작정 버튼을 눌렀다. 예상치 못한 정차 신호에 버스는 급정거를 한다. 화순군 동면 장동2리 찰동마을. 버스정류장 옆 가게로 들어갔다. “음료수 하나”라는 말에 주인 할머니가 가정용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병을 꺼낸다. “사이다도 먹고, 인자 여기 수박도 한 입 잡숴봐, 맛나네야.” 불쑥 들어온 손님에게 자리 하나 내주며 수저를 건넨다. 말동무가 필요했을까.
마을 입구 정자가 좋다는 말에 “암∼정자가 다시 좋게 지어진 게 십년은 넘었제. 그 옆에 나무 있제? 그게 450년인가 500년인가 묵었어. 오래된 나무라 군에서도 보호하고 그런라며 손까지 꼽아가며 햇수를 따진다.
할머니는 소복히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듯 이런저런 기억들을 풀어간다. 찰동마을 입구에 선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 옆 정자에 앉아 동네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나무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삶의 소중한 일부일 터.
보는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경험에 따라 같은 장소를 지나가도 기억은 별개다. 다음에 찾았을 때는 나에게도 이 곳이 더이상 `낯선’ 마을이 아니기를.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117번 버스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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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 오전 5시30분, 막차 밤 10시10분. 배차 간격 11∼12분, 주행시간 7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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