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골목골목마다 최소한 하나씩 쌀상회가 자리잡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쌀이 귀했던 시절 쌀가게에는 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쌀보다 보리가 더 잘 팔리던 때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시절이 그리 멀지 않다.
커다란 함석 광주리에 쌀이며 보리, 조, 수수, 동부, 결명자 등 땅에서 나는 모든 곡식은 모두 담겨져 있는 북구 풍향동 만춘쌀상회는 그 시절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30여 년 전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노점으로 쌀을 팔다가 현재의 가게로 옮겨온 것이 20년 전 일이다. 지금은 아들인 신만춘(68)씨가 가업을 이어 받았다.
“옛날에야 쌀도 귀하고 다른 묵을 것이 없응께 손님들이 많았제. 글고 쌀가게 아니면 다른 디 쌀 파는 곳도 없어. 쌀이 원래 마진이 박해. 쌀값이야 전부 알고 있는디 많이 남겨묵으문 금방 소문이 나불제. 쌀 한 가마니 팔아봐야 기껏 몇 천원 남고 그래.”
박한 마진이지만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출 자체가 높아 괜찮은 이익을 남겼다. 더구나 만춘쌀상회는 도매까지 겸해 소규모 쌀가게에서 대량으로 곡물을 납품받아 갔다. 그러나 소포장 쌀이 등장하고 마트나 농협에서 쌀을 직접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더구나 먹을거리 자체가 풍성해지면서 쌀 소비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가격도 싸불고 포장도 이삐고항께 경쟁 자체가 안되제. 글고 요새는 가마니로 사가는 사람도 없어. 모도 마트에서 작은 포장으로 사다 묵제.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손님들이 몰려왔는디 지금은 하루에 서너 명이나 오까. 인자 쌀가게는 사양길은 진즉에 넘어부렀고, 얼매 안가서 다 사라질 것이여.”
지금은 쌀보다 콩이 더 많이 팔린다. 여러 방송매체에서 콩의 효능이 집중보도된 다음부터 콩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조나 수수, 현미 등의 잡곡류들도 덩달아 나가는 편이다. 문제는 국산보다 수입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
“검정콩이 국산은 킬로에 2만5000원인디 중국산은 만원밖에 안 해. 가격 차이가 워낙에 많이 나서 국산 찾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께 안타까워.”
가게에 직접 들러서 물건을 사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부분 신씨가 오토바이로 집 앞까지 배달해 준다. 그나마 새로운 고객은 없고 거의 단골이다. 식당을 운영하거나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신씨 가게를 이용한다.
“배달이라고 해봤자 많지도 않아. 옛날에는 팔십킬로 한 가마니로 팔았는디 지금은 십 킬로도 배달하고 오 킬로도 배달하고 그래. 그놈이라도 없으문 목구멍에 거미줄치게 생겼응께 주문 오문 부리나케 달리제.”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