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풍년떡방앗간’

마땅히 입을 달랠 먹을거리가 없었던 시절 떡은 가장 친숙하면서도 귀한 음식이었다. 잔치나 제사, 이사에는 빠질 수 없는 품목이었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었다.
그러나 먹을거리가 넘쳐나면서 떡의 위상도 하락했고 자연스럽게 떡방앗간들의 명성도 떨어졌다. 쉴틈없이 돌아가던 떡가루 기계들은 멈춰 섰고, 광주의 웬만한 동네에 몇 곳씩 자리 잡고 있던 떡방앗간의 숫자도 대폭 줄어들었다.
학동 `풍년떡방앗간’은 같은 자리에서 20년 넘게 떡을 만들고, 참기름을 짜 왔다. 오랜 시절 견뎌와 손님이 많기도 하지만 건물 자체가 자기 소유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쩌그 학동 8거리부터 여그까지 떡방앗간이 열 개가 있는디 내가 젤로 고참이여. 학동은 발전도 덜 되고 나이 많은 양반이 많이 산께 떡방앗간이 아직도 쪼끔은 되는 편이제. 그래도 가게세 주고 할라문 어림없어. 근께 모도 몇 년하고 문 닫아 불제”라는 것이 주인 박영남(60)씨의 말이다.
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풍년떡방앗간은 이름처럼 `떡 풍년’이었다. 지금은 박씨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명절이면 다섯 명, 평상시에도 한두 명의 직원을 항상 두고 있었다. 특히 가을철이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참기름 짜는 손님도 줄을 이었고, 결혼이나 시제가 많아 새벽 5시부터 늦은 밤까지 떡을 만들어도 기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진짜로 말도 못했제. 내가 명절 때문에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해보들 않았응께. 돈이 막 들어온께 긁는다는 생각이 들드만. 설에는 쌀 대여섯 가마니를 가래떡 뽑아서 팔아도 부족했을 정도였응께.”
급격한 침체에 허덕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다. 잔치에 떡을 하는 풍습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대량으로 떡만 만들어 파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떡을 사다 먹었다. 가래떡만 해도 예전에는 설 명절뿐만 아니라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주문이 넘쳤지만 현재는 마트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어 번거롭게 직접 해먹는 집이 없다.
풍년떡방앗간은 요즘 떡보다도 깨죽가루나 참기름을 짜려는 손님이 훨씬 많다. 들깨와 쌀을 섞어 가루를 만드는 깨죽은 서울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만큼 주문이 많다. 인근에 살았던 단골들이 서울로 이사 간 후에도 깨죽가루를 신청해온다. 참기름도 한 달이면 참깨 다섯 가마를 짜낼 만큼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손님이 많으나 적으나 평생 요걸로 밥 벌어 먹었는디 쭉 해야제. 앞으로도 십 년은 더 할 폭 잡고 있는디 어쩔랑가 모르제. 몸만 안 아프면 죽을 때까정 떡가루 뽀수가야제.”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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