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번 타고 담양 송강정 가기

▲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던 `송강정’.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緣)분(分)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선생님의 설명을 놓칠세라 쉴새없이 밑줄을 그었다. ㉠은 `임금’을 , ㉡은 `사랑하니’, 이 시의 전체 주제는 `임금을 향한 충정’. 가사문학의 일인자라 할 송강 정철이 쓴 〈사미인곡〉은 학창시절 단골출제되는 시험문제였다. 정철의 작품 〈속미인곡〉 〈관동별곡〉을 외우는 동안 그것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늘 `시험문제’로 다가왔다. 대학 입시를 치르고 난 뒤 모든 게 거짓말같이 잊혀져 갔다. 무심히 버스 노선 안내책을 들춰보다 26번 종점 `송강정’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익숙했지만 `점수’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실체를 보지 못했던 송강정. 그래서 찾게 되었다.
사람들은 버스시간대 맞춰 하루일정 정하고
송강정의 주소지는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지만 26번을 타면 시내버스 요금으로 갈 수 있다. 하루에 3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배차간격이 50분 내외다. 승객은 8명. 그래도 금세 버스는 꽉 찬다. 굳이 좌석에 `경로석’을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나이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논밭을 일구는 `외곽’을 경유하는 26번 버스는 효령에 들어서자 어느새 마을버스가 된다. “아까 한 대를 놓쳐갔고 벌벌 떨었네” “시간이 바뀐 거 몰랐는갑네” 다들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건넨다.
 외곽에서 시내로 나가는 데 몇 안되는 버스라 마을 주민들은 버스 운행시간에 맞춰 하루 일정을 결정한다. 버스 시간대에 맞춰 약속을 정하고, 할 일의 순서를 정한다. 26번 버스처럼 시 외곽을 운행하는 버스는 `경로버스’다.
 기사는 “나처럼 정년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외곽버스 몰제. 승객들이 많은 버스는 노조에서 정규직 사원들이 몰고, 시외곽 다니는 버스는 계약직 사원이 하제. 버스 드는 기름값도 절반, 버스 운전하는 기사 임금도 절반 (껄껄) 그러요” 그러면서 “26번 버스 종점이 송강정인께 삼림욕도 하고 좋제”라고 말한다.
 “이 노선이 승객들도 별로 없어. 긍께 시내 다니는 것보다 체구가 작제. 45인승, 30인승 넘는 것도 많은디 이렇게 외곽으로 빠지는 것은 17인승으로 돌리제.”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산실 `송강정’
 정류장 표시 대신 `송강정’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대신한다. 종점에 도착한 버스는 길게 쉰다. 발걸음을 떼니 바로 옆에 송강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송강정으로 오르는 길은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계단길’과 구불구불 소나무숲을 지나가는 `사잇길’로 나뉘어진다.
 사잇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류장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이건만 신발에 닿는 흙의 촉감이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전통 조원(造園)에서 조경설계자들이 가장 고려한 것은 나무의 위치였다고 한다. 집은 자리를 이곳저곳에 잡을 수 있지만 나무의 위치는 함부로 옮길 수 없기에. 송강정 뒤편에 자리한 소나무들은 울창하게 뻗어 있다. 그리 긴 걸음은 아니지만 소나무 숲 사이로 걸어가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한다. 백년이 훌쩍 넘었다는 소나무들을 바라보니 분·초로 쪼개진 `바쁜 일상’이 문득 무색해진다.
 송강정은 송강 정철(1536~1593)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곳이다. 48세 되던 해 동인들의 압박에 못이겨 대사헌의 자리를 그만두고 창평으로 내려 온 송강은 죽록정(竹綠亭)을 고쳐지어 자신의 호를 따서 송강정(松江亭)이라 일컫는다. 그는 이 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많은 시가와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
 사촌 김윤제가 지은 환벽당과 정철과 동문수학한 서하 김성원이 지은 식영정 그리고 송강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송강정 옆에 `사미인곡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깨알같이 새겨진 시비에 적힌 `사미인곡’을 들여다보고 송강정을 둘러본다. 앞에는 무등산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은 고가도로가 시야를 가린다. 아쉽다. 시선을 돌려 소나무숲만을 바라본다.
 송강정은 당대 호남 사림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장소였다. 정철은 고향으로 내려와 식영정과 이 곳을 오가며 시흥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송강 정철은 명종과 소꿉친구로 지낼 정도로 권세가의 자제였으나 을사사화로 집안에 화를 입게 되었다. 아버지가 긴 유배생활을 끝내고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담양 창평으로 내려왔지만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송강은 사촌 김윤제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식영정과 서하당을 자주 찾으며 한적한 `처사’의 삶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시를 높이 평가하는 대목 중 하나는 당대 중국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말의 운율과 맛을 살려 시를 썼다는 점이다.
 이제 정자 문화는 사라지고 `정자’만 그 시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을 뿐. 그 정자를 채운 알맹이인 `문화’가 사라진 공간에서 당시 문화를 느끼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후대의 자손들에게 어떠한 `문화’를 물려줄 수 있을까?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배차간격 45∼49분
▲버스 운행시간(양유교 방면-쌍교(송강정) 방면)
6:20/7:10/7:56/8:43/9:30/10:16/11:03/11:50/12:40/13:30/14:20/15:10/16:00/16:50/17:40/18:30/19:20/20:10/21:00/22:00
▲운행노선
양유교(양동시장)-발산교-전남방직-현대자동차-광천파출소-문화예술회관-체육고-박물관 입구-마당고개-광주외국인학교-해태제과-롯데칠성-연초제조창-연초제조창 후문-신흥택시-거진-신용두-가축위생사업부-건국동사무소-한국광기술원-지산초교-지산입구-용전-전통공예학교-우곡-효령-광북교회-수곡-단지-태령-신평-와우리-양지-월전-송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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