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버스

▲ 광주일고 앞 골목길에 위치한 상가들은 묵묵히 세월을 버티고 있다.
“5번, 6번, 1번 버스가 아마도 젤 오래됐겄는디, 벌써 40년도 훨씬 전 일인디 그걸 일일이 알겠능가. 내가 젊었을 적에도 1번 버스를 탔응게 솔찬히 됐는갑네.”
왜 `1번’을 붙이게 됐냐는 질문에 도통 시원스러운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도무지 알 길 없는 질문에 버스 기사는 난감한 눈치다.`광주에서 오래된 버스’라는 심증만 굳힌 채 1번 버스를 타게 됐다.
동서방면은 1번, 남북 방면은 6번 버스
<광주시에서 조사한 최초의 교통량(1963년 기준)은 한국은행 사거리의 1일 교통량은 보행자가 8만3552명, 자동차는 2826대, 자전차·우마차·손수레를 포함하여 9975대로 나타났다…(중략)…1965년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실시한 교통량 조사 결과를 보면 보행자와 자전거 교통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다음은 버스 및 승용차, 화물차, 저속차류에 속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보행 교통량은 계림동 건널목, 현대극장 앞이 많았으며 자전거는 현대극장 앞, 도청, 남광주역 순이다. 버스 및 승용차, 화물차는 도청 앞과 현대극장 앞에서 가장 많았다.>(<광주시사〉중)
40년 전만 해도 광주에서 버스는 요즘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근대화를 맞았던 해방기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다녔다. 50년대말 버스가 다녔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전체 차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하다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때부터 도심 내 이동이나 시외간 통행은 버스가 큰 축을 차지하게 됐다.
광주시청 대중교통과 정찬주씨는 “50년대쯤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당시 노선으로 볼 때 5번, 6번, 1번 버스가 가장 오래된 편에 속한다. 광주의 동서방면은 1번 버스가 다니고, 남북 방면은 6번 버스가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1번 버스는 구시외버스터미널, 광주역, 일신방직 등 광주 시내 주요 거점을 통과했지만 다른 노선이 늘어나면서 세분화된 노선은 점차 단순해져갔다. 1번은 여전히 동서 방향에서 시내 중심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에는 1번이 종횡무진했지. 소태동에서 전남대병원 들렀다 도청으로 구시외버스터미널로, 광주역이다 일신방직이다 다 지나갔제. 그때는 첨단까지 들어가지도 않았제. 사람이 없응게. 요즘에야 환승도 되니까 `ㄷ’자형으로 구불구불 안가고 `―’자형으로 다닝게 주행시간도 빨라졌제.”
1번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 기사 오헌선(55)씨의 말이다.
“20년 전만 해도 전남방직 정류장 붐볐어”
“20년 전만 해도 아가씨들이 전남방직(현 일신방직)에 많이 다녀서 퇴근 무렵에는 정류장이 붐볐어.”
청춘남녀들이 아세아극장과 현대극장으로 데이트를 하러 다니던 당시를 그는 기억한다.
한때 `오라이∼’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열일곱 살 꽃다운 청춘이 버스 안 북적대는 승객들을 밀면서 차창 밖을 치며 출발 신호를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자동문이 아니었던 시절, 버스 승·하차문은 사람이 직접 열어야 했다. 정류장에 설 때마다 내려 문을 열고 닫으며 요금을 받던 그녀들의 나이는 적게는 열여섯부터 많게는 스물 서넛이었다.
6·29선언이 발표된 그 해 87년을 기점으로 `버스 안내원’은 점차 사라져 갔다. 버스 안을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승객과 요금 실랑이를 벌였던 안내원은 점차 버스에 자동문이 보급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땅의 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딸들은 운좋게 부잣집 식모살이를 하던가 아니면 공장 `시다’로, 버스 안내원으로 돈벌이를 찾아 헤맸다. 철조망이 둘러싼 방직공장의 빛바랜 외벽이 거친 세월의 흔적 같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도 미싱은 돌아갔던” 여공들의 한숨과 눈물이 그 외벽에 새겨진 듯 하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효자였던 섬유산업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지칠대로 지친 여공들이 일궈낸 작품이다. 70년대 국내 공장 노동자들의 대다수였던 `어린’ 여공들이 세상에 토해냈던 울분은 30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물로 되풀이된다. 과거는 잊혀지지만 삶을 통과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숱한 세월을 거쳐간 버스는 세월 앞에 군데 군데 벗겨진 페인트칠처럼 쓰라린 옛 기억을 거쳐가고 있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버스 노선(월남동∼첨단 방면)/ 배차간격: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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