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의 탄생설화에도 등장
제삿상에 빠지지 않는 과일
묘한 밤꽃향기…옛날엔 과부들 근신

온통 밤꽃향기가 그윽한 용산의 숲을 보니 알밤 없는 가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생김새도 특이하게 수꽃은 수꽃대로 아주 길게 흩날리고, 그위에 살포시 얼굴 내민 암꽃인 밤톨이가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밤나무는 전국 어디에나 자라는 잎떨어지는 넓은잎 큰키나무로서, 산기슭이나 밭둑에서 잘 자라고,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진다. 밤나무의 잎은 상수리나무 및 굴참나무와 모양이 비슷하여 헷갈리기도 한다.
밤나무잎은 약간 더 길고 거치끝에 짧은 바늘을 보면 엽록소가 끝까지 들어 있어서 파랗게 보인다. 그러나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는 거치끝이 엽록소가 없어 연한 갈색을 띠고 있어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밤나무와 비슷한 이름으로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등 이름이 참 재미있게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밤나무와 너도밤나무는 참나무과에 드는 한 식구지만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무과라고 남이다. 너도밤나무는 낙엽지는 큰키나무로 우리나라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고 보니, 너도밤나무라는 이름을 외국의 문학작품인 코난 도일이 쓴 《너도밤나무 집의 수수께끼(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에서 만나기도 한다.
밤나무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중에 원효대사의 탄생설화가 있다. 원효의 어머니는 유성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후 만삭이 되어 친정으로 가던 중, 지금의 경북 경산군 압량면 남쪽 불지촌 밤나무 숲을 지나다 갑작스런 산기를 느끼고 남편의 옷을 밤나무에 걸어 이슬을 가린 채 해산했다. 그래서 옷을 걸었던 밤나무라 하여 율곡 또는`사라수(裟羅樹)’라 부르게 되었고, 그 열매 또한 스님들의 바리때를 하나 가득 채울 만큼 유난히 커서 `사라율’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옛 조상들은 제삿상에 3대 과일로 밤, 감, 대추를 올렸다고 하는데, 그 중 밤은 그 가시 돋은 껍질 안에 든 세 개의 알밤이 출세의 대명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함께 있는 것에 비유되었다. 모두 집안에 그 세 벼슬을 두루 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이보다는 밤이 싹틀 때 새순이 나서도 밤껍질이 오래도록 썩지 않고 땅속에 남는다. 그래서 자신의 조상을 잊지 않는 나무라고 여겨 제삿상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밤꽃향기를 맡으면서 숲길을 걸으니 살짝 쉬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시큼한 듯한 묘한 냄새가 난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에 피기 시작하는 밤꽃의 향기는 특이하게 구설수에 종종 오르는데 옛 부녀자들은 양향(陽香)이라는 이 냄새를 부끄러워 하여 밤꽃이 필 때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과부들은 근신했다고 한다.
사람을 근신시키게 하는 마력을 지닌 밤나무,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철통같은 침과 떫은 맛까지 겸비한 밤톨이의 야무진 꿈이 꼭 앞산뒷산에서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김영선 <생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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