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만 해도 `각설이’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왜 하필 각설이냐” “니 성격에 사람들 앞에서 잘 할 수 있겠어” 등등 주위에서는 야유와 걱정, 염려가 뒤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 초창기엔 마음속 긴장과 동요를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지금은 축제마당에서 잔뼈가 굵은 `각설이’로 통하는 고철통(예명·41·광산구 송정동)씨는 “혼자라면 못했을 거다”고 아내에게 공을 돌린다.
`고철통과 어우동’. 지역 축제나 마을 행사, 개업식, 경로 잔치 등 여러 행사장에서 그들 부부는 이렇게 통한다. `부부 각설이’로 활동한 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사연 많은 세월이었다. 보증을 잘못 선 탓에 남은 재산이라고는 달랑 전세금 뿐이었다. 4억이 넘는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남편은 순식간에 `신용불량 정보 보유자’가 돼버렸다. `생활고’가 이들 부부를 각설이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마냥 넋놓고 있을 수만 없잖아요. 아이들도 있는데…. 거리에 나가서 커피 장사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각설이’를 하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선 애아빠한테 말했죠.”
구청 단속반이 부인을 트럭에 싣고 간 적도 있고, “생판 모르는 곳에서” 판을 깔다보니 경계에 찬 시선을 받기도 했다. 텃세를 부리는 주변 가게들 때문에 울분이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오기가 생겼다. 약장수 테이프 등을 사모아 열심히 들으며 `자기것’으로 만들었다. “온갖 이야기를 다 쏟아내야 하는 각설이”라 TV나 책을 보다가도 수첩을 꺼내 메모하곤 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며 부단히 고쳐 나갔다. 집사람의 꾸준한 `뒷바라지’도 든든한 힘이었다. 현장에서 같이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아내는 남편을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축제 현장에서 다른 출연자들의 `끼’를 배우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어느덧 관객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설이 행색만 보고도 웃는 사람들, 타령 소리에 흥겨워 몸을 들썩이는 어르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표정이던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뿌듯해졌다.
지금은 `가나문화기획(www.gana-event.com)’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경기불황 탓에 일감이 갈수록 줄어들고, 여전히 신용불량 정보 보유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들 부부는 시간을 쪼개서 경로원이나 장애인 시설을 찾아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봉사’라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막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장에 가보면 오늘은 이렇게 놀아야겠다고 각이 나오제”라고 웃는다. 아내 어우동(예명·35)씨는 “요새는 민요를 배우고 있는디 도무지 목소리가 안 따라줘서 고민”이라며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처하는 상황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힘든 일이라고 피하지 말자”는 이들 부부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다. 이들 부부는 “내 몸뚱이만 성성하다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오늘도 웃는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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