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겨울나기

노대동 분적산을 오른다.
깊은 산골짝 찾아가는 기분으로 숲길을 접어드니 지난해 내린 겨울눈으로 소나무 가지들이 꺾어져 이곳저곳 누워 있다.
겨울눈의 부드러움이 소나무의 강함을 이기고 만 자연의 순리에 머리가 숙연해진다.
눈쌓인 길가에 푸릇푸릇한 잎이 키를 낮추며 겸손한 자세로 우리를 반긴다.
개망초·달맞이꽃·엉겅퀴·고사리류 등 혹독한 이 겨울을 순수하게 맞이하고 있는 풀꽃들을 보노라니 가슴이 찡하다.
쌓인 눈 사이로 땅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잎, 이런 식물들은 얼어죽지 않고 작고 작은 어린잎으로 겨울을 이긴다. 잎이 난 모양이 꼭 장미꽃 같아서, 또는 장미와 닮았다는 뜻으로 `로제트식물’이라고 한다.
또 땅바닥에 달라붙어 자라는 모양이 바닥에 까는 방석 같다고 해서 방석식물이라고도 부른다. 질경이·엉겅퀴·달맞이꽃·망초·냉이·민들레 등 여러해살이풀이 이에 속한다.
겨울동안 땅바닥에 깔려 있던 로제트식물은 봄이 되면서 잎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긴 줄기를 내어 새 잎을 달고 꽃을 피운다. 겨울동안 죽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 겨울눈에서 새싹을 내거나 씨에서 싹을 틔워 자라는 것보다 먼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잣대로 들이대보면 짠한 마음이 들지만, 이들은 이런 혹독한 추위와 시련을 견뎌내야만 봄이 오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 키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달맞이꽃이나 망초가 여름이면 거의 1m가 넘게 키를 키우는 것도, 겨울동안 잎을 방석처럼 땅바닥에 붙이고 햇볕을 받으면서 뿌리쪽에 난 잎들을 단련시켜낸 생명력 때문이다.
최대한 키를 낮춰 땅위 높은 곳보다는 땅바닥을 꼭 안은 채 추운 겨울나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읽는다. 낮은 곳을 향하고 끌어 안았을 때 희망은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김영선 <생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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