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대지동 등용산

등용산은 이름에 이끌리고, 이름값을 찾아 헤맸다. `용이 승천할 만한’ 비상한 흔적을 발견코자 무던히도 두리번거렸다. 실상 부질없는 짓이었음은 산행을 마친 뒤에야 깨달았다.
남구 대지마을(법정동 대지동)의 뒷산이 등용산이다. 넓디넓은 대촌들녘을 앞마당으로 거느린 이들이 풍요의 터전을 한 뼘이라도 더 갖고자 산 쪽으로 무르고 물러서 눌러앉은 곳이 대지마을이다.
한때 300여 가구를 구가하며 북적거렸던 마을은 이젠 200여 호로 줄고, 노인들만 남아 쇠락함이 여실하다. 하지만 `고시 합격자가 5명이나 나온’ 마을의 기운은 쇠하지 않았다는 촌로들은 `등용’은 계속되리라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둘러보면 등용의 밑천은 산보다는 논일 듯싶다. 사방으로 탁 트인 평야지대. 그 옥토가 부를 일궜을 것이며, 이를 밑천삼아 배움의 길 매진했을 터였다.
등용산 뒤편은 또 다른 평야, 서창들녘이 펼쳐져 있다.다른 산에 비하면 야트막하지만, 근방에 견줄 만한 덩치가 없으니 한마디로 `용’ 됐다.
상촌, 중촌, 하촌으로 나눠질 만큼 규모가 큰 대지마을은 산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 하촌에서 올라 내려서면 상촌이다. 이는 또 용의 머리와 꼬리로 이어지는데 하촌이 용머리, 상촌이 꼬리에 해당된다.
산은 이미 싹의 움틈이 분주하다. 계절이 달리 갈 리 없건만, 도심에선 전혀 느끼지 못했던 봄내음이다. 실상 이는 기온만으로 계절을 가늠해야 하는 도심의 측정기가 빈약한 탓. 나무와 숲과 풀꽃, 산에는 봄의 전령사들이 가득했다.
쇠별꽃과 산자고가 꽃대를 곧추세우고 봄 마중에 먼저 나섰다. 이에 뒤질세라 산수유 노란 꽃망울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활짝 터질 날 멀지 않았다.
등용산은 높지 않다. 하지만 주변이 평야이고 보니 솟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대단한 위세다.
그에 따르는 고행도 있었다. 피할 수 없었던 바람막이의 운명. 능선의 소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용틀임하듯 뒤틀렸다.
등산로는 이렇듯 키 작은 소나무들의 도열을 받고 있다. 위압적이지 않아 정겹다.
어쩌다 큰 나무들 한 두 그루 자랐지만 온전하게 서 있지 못하고 거의 드러누웠다. 바람을 견딜 수 없었음이다.
큰 나무들에게 더 가혹했던 고난은 이유가 있었다. 흙과 나무에 가려져 있었지만 등용산은 거대한 바위덩어리였던 것.
산책로 끝지점에 다다르자 묻혀 있던 바윗돌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구 솟구쳐 본성을 드러냈다. 나무들 뿌리내리기엔 척박한 땅. 덩치가 클수록 밑둥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성을 감추지 않는 산은 험하고 가파르다. 미끄러지듯 달리듯 산에서 내려왔다.
마을에서 산을 보니, 일곱 구비 들고 난 능선이 야트막하니 늘어섰다. 몸을 쫙 늘어뜨린 모습, 영락없는 용이다.
용머리와 꼬리 사이 길다란 등허리는 제법 규모있는 덩치를 짐작케 해 신비감을 보탰다.
날고자 하는 맘은 없는 듯 얌전하게 엎드렸다. 그 품에 안은 마을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자 함일까?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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