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소태동 갈미봉

▲ 갈미봉과 선교저수지. 푸르름을 주고 받아 운치있는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산행 초보자는 정상만 바라보고 걷는다고 한다. 43번째 <앞산뒷산>행이지만 여전히 이 경지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 불만일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정상은 오르고 또 올라야 이를 수 있는 곳이기에 발걸음은 항상 종종걸음이었다.
산에서 만난 풀꽃 하나 요모조모 살펴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생태전문가’ 일행과는 늘 엇박자일 수밖에 없었다.
쇼핑 따라나섰다가 잦은 기웃거림을 참지 못해 “다시는 함께 가지 않겠노라” 언쟁하던 남-녀의 불화와 같은 부딪침도 몇 차례 있었다.
숲을 보는 이들은 그 속에 깃든 생명들을 본다. 때문에 정상이든, 초입이든 다른 의미를 부여할 까닭이 없다. 산기슭에서 만난 야생화의 자태에 탄복하다 그 기쁨으로 돌아서 내려설 수 있음이다. 그 경지에 도달해보고자 애쓰건만, 한계를 절감하는 산행이 지속되고 있다.
갈미봉(331m)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도 그런 여유로움은 마음속 주문사항이었다. 광주에서 화순가는 길, 너릿재 넘기 전 바로 오른편에 자리 잡은 산이 갈미봉이다.
선교제로 불리는 저수지를 앞세워 제법 운치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니 갖가지 쓰레기들이 물 위에 둥둥. 산을 담고, 하늘을 담아 푸르고 잔잔한 수면은 멀리 보였던 환상일 뿐이었다.
제방을 넘어 산으로 접어드니 산책로가 깔끔하다. 어느 부지런한 후손이 조상의 산소 가는 길 이른 벌초를 했나보다.
며느리밥풀꽃·오이꽃·칡꽃·옥잠화 꽃들이 울긋불긋. 여름 산, 짙은 초록에 반기를 들었다.
동행한 생태해설사 풀빛순수·나무님은 예의 그 붙박이 탐색 모드다.
잎 한 장, 그 속에 자리 잡은 씨앗 하나, 꽃말에 얽힌 유래까지 술술술. 그 곁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갈미봉엔 철조망이 흔하다. 철문까지 갖춘 규모 큰 철조망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묘지다. 철문 들어서면 올려다보자니 고개가 아플 정도로 `높고, 긴’ 콘크리트 계단이 버티고 있다. 그 계단의 끝에 조상을 모신 후손들의 정성이 갸륵할 지경이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이 오래지 못했음인가. 장대한 계단을 세우고 철문을 단 위세와는 어울리지 않게 현재의 봉분은 훼손되고, 잡초가 우거져 처량했다.
길도 묘지까지만 윤곽이 남아 있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잡초를 헤치며 서둘러 묘지에서 벗어난다. 숲이 우거졌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생태계가 좋다는 것인데, 굵직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지표면은 오랜 세월 햇빛이 귀했다. 잡초가 자랄 수 없는 환경, 산책로가 말끔했다.
몸통 붉은 토종 소나무가 주인장 행세하는 산에 최상의 숲에서만 산다는 개서어나무가 울퉁불통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매끈한 층층나무에, 단단한 참나무들까지 한 가족을 이룬 갈미봉은 중턱이 듬직했다.
하지만 오래전 인적이 끊긴 숲은 모처럼 찾아든 사람들을 호락호락 놔두지 않았다. 중턱을 넘어서니 원시림이 그악스럽게 펼쳐져 몸을 막는다.
우거진 발밑은 금방 무엇이라도 튀어나올 듯 섬뜩하고, 수리딸기·노간주·꾸지뽕나무 가시들은 수시로 팔뚝을 할퀴었다. 게다가 머리쪽으론 거미줄이 숱하게 엄습해 왔다.
내려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능선에 오르면 정비된 등산로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갑작스런 비명이 터져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몸속까지 파고든 지네에게 물린 것이다.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 경험부족인 일행은 방법을 몰랐고, 우거진 숲은 진퇴마저 쉽지 않아 조바심만 커 갔다.
핸드폰을 통해 상황을 전해들은 피습격자의 어머니는 고전식 응급처치법을 날렸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는 위로(?)와 함께…. 민망한 부위(엉덩이)에 원시적 처치(침바르기)로 일단 수습 국면.
서둘러 병원행을 권유하며 하산을 재촉하지만, 우거진 숲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할퀴고 찢긴 상처들을 부여잡고 어렵사리 갈미봉에서 내려왔다.
무성한 여름 산의 위험을 체감한 산행이었지만, 간단한 의약품 하나 준비하지 않은 무지를 뒤돌아본 기회이기도 했다.
녹음이 짙을수록 숲은 더 많은 생명들을 품고, 침입자인 인간에겐 그만큼 위험이 더 많아지는 시기가 이 계절이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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