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이는 삼거리서 등산객 발목잡는 집      

수채화로 유명한 노화가 배동신 선생은 무등산을 즐겨 그리셨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무등산은 덩어리가 참 큽디다”이다.
더 이상 함축된 표현일 수가 없는데 요즘처럼 비 갠 후 산은 그의 그림처럼 벅찬 덩어리로 다가온다.
전라도 산 100곳은 올라야 전라도 사람 아니겠냐고 뭉친 산행모임에서 멀리 갈 것 없이 이번에는 무등산에나 가자 하는 것이었다. 한나절 산행 모임이니 북대기 큰 산 정상까지는 무리고 아무 산자락이나 하나 잡아타면 그만이라며 가볍게 시작된 산행. 초보자 뒷꽁무니 따라 붙기 벅차다. 집 뒷산 같다는 이유만으로 멋모르고 따라 나섰다가 입에 거품 물기 십상인 산이 아니던가?
한 고비 넘길 때마다 그 덩어리 크다는 생각에 질리면서도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는 것이 산행하는 맛 아니던가!
산행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소나무 숲 좋고 시원한 너럭바위를 만나자 일행 중 스스럼없이 바지를 내리더니 오랜 물건 바람 치는데 내다 말리는 것이라며 “거풍(擧風)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정 너럭바위에 쫑쫑히 올라 골을 타고 오르는 바람 실컷 쐬고 햇볕 봤으니 고실고실도 하겠다. 경건하기 짝이 없는 의식(?)에 구름 아래 나는 새도 민망한지 쏜살같이 지난다.
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다양한 표정들을 담고 있었다. 규봉암을 눈앞에 두고 내려오는 길에서 난데없는 산신령을 만나는데 동조(동자)골 곳곳이 기도처라서 암벽 아래 지성껏 쌓아올린 돌탑이 인상적인데 산신령이 호랭이 대동하고 모형으로나마 현신을 하신 것이다.
좀 전 불경죄가 있는지라 황급히 예를 올리고 그래도 눈에 얼른 드는 것은 신령님 앞에 놓인 플라스틱 막걸리병.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지만, 신령님께 한 잔 올리고 음복한다면 음복주가 황홀주일까? 세속과 선경은 한 끗발 차이라 그 소원 하산 길에 바로 이뤼진다.
아침 거르고 일찍 나선 산행, 다리 무겁고 출출할 때 반가운 집 완도집.
`배고픈’ 다리 지나 예전에는 배부른 다리. 그곳에는 삼거리 길목 지키는 집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 숲 빼곡한 동네가 됐지만 앞뒤로 산자락이 휘감고 산수 간에 솔바람 일만한 곳인데 완도집이라니 물어불 것도 없이 주인이 틀림없이 완도 출신일 것.
꿀찍할 때 술잔이 한 순배 돌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이었다. 무쳐낸 솔지 상큼하고 취향과 상관없이 돼지족발 하나씩 들고 다른 손에는 막걸리 잔이다. 다이어트 한다고 힘들게 땀 뺐는데 허사가 아닐는지.
안주는 많아 두부에 아구찜까지 안되는 게 없다며 주문만 하라는 완도 금일 금당도가 고향이라는 권승임(59)씨는 좀체 말 비칠 새 없다 하면서도 시답잖은 소리 손님 말 대접까지 똑떨어지는데 서글서글한 스타일이다. 이 집에서만 20년이라고 하니 도합하면 운림동 터줏대감, 꽉 잡고 있다고. “섬 양반이 어찌 골짝에 들어와 사요?”했더니 고향 이야기 솔깃했던지 고향 이야기 장황해진다. 말이 완도지 금당도는 고흥이나 다름없다며 녹동에서 배를 타고 한 오십분만 가면 금당도라며 고향 자랑만으로도 금방 배 타고 고향 한번 다녀온다.
인연이다 싶은 것은 오래 전에 이 부근에서 거푸집 짓고 해장국 끓여 대는 집이 있었는데 알은 체하자 그러냐며 아침 산 좋아하는 이들 해장국 후루룩 뚝딱 하고 바로 직장으로 직행하는 집이었다며 큰솥단지 시래기국이 속을 편하게 했고 가을 무 좋을 때는 설겅설겅 엇썰어 넣은 무 해장국이 그만이었다며 요즘 그런 집 어디 있겠냐며 표정들이 아득해진다.
아파트 들어서고 지금은 가히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그런 집이 산행 길 지키는 집의 덕목이 아닐까?
운림동 라인아파트 대로변 222-8621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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