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내 어느 곳이나 모텔, 호텔, 여관 등 숙박시설이 많다. 해 떨어지기 무섭게 교회 십자가와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이 숙박시설 불빛이다.
도시의 불야성을 이루는 주역으로 등장한 게 이미 오래인 숙박업소 군집된 거리. 지나다보면 한 마디씩 하는 건 “외지손님이 그리 많아서도 아닐텐데 그래도 운영이 되는 갑다”고, “집 놔두고 할 일들도 많은 갑다”고, 한 마디 하기 마련. 그것도 하나같이 서구 건축양식을 거창하게 본뜨고 있어서 창 들고 돈키호테라도 나서게 생겼다.
대인동 구역자리 가다보면 이런 거창한 집들의 원조격인 집들이 아기자기한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데. 거창한 건물들 사이 집은 말할 것 없이 작아 컨테이너 두어 개 이어놓은 집. 작다 보니 오히려 눈에 띄는 집이다. 비싸다는 안주가 만원이고 싸게는 3000원. 미리 낸 매운 고추 ‘아부래기’가 입 안을 후끈 달군다.
냉장고 막걸리로 매운 입 식히고 나붙은 안주를 미처 다 세지 못한다. 삼칟고등어·조기 탄불 위에서 지글거리고, 제육볶음으로 시작되는 육지 것들, 왕새우·물오징어 펄뜩이고, 똥집·닭발에 덤으로 메추리구이까지. 이쯤 되면 뭘 시킬까 연구가 골똘하다. 바닷 것 시키자니 육지가 울고, 육지 맛 보자니 비릿한 게 땡길 때고….
눈매 서글한 주인 한혜실(50)씨는 성함을 물었더니 ‘벌교 삼순이’하면 다 안다고 끝까지 버티더니 남편이 건설회사 한다고 다 들어묵어 집 세 넘어간 줄도 모르고 살았다며 말꼬리를 돌린다. 어릴 적에는 집에 손님만 와도 수줍어서 못 들어갔다는 수줍음, 세월이 아줌마 장사 만드는가 보다. 사람 좋아가지고서는 건설일 못한다면서 숭(흉)을 보는 것인지 들으라고 하는 것인지 바깥양반은 손님과 딴전이고.
죄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좁은 공간이지만 뭔가 솔찬히 신경써서 설치해 놓았는데 남편이 취미 삼아 꾸민다며 숫제 웃는 낯이다.
주전자가 걸리고 하트형 철망에, 계란판에 뭔가를 군데군데 액자 삼아 걸고 부치고. 한 부대 손님들이 든다. 술집은 북적거려야 제맛이다. 그것도 부족한지 핸드폰 들고 사람 부르는데 “여보세요, 술 잡수요?” 이럴 땐 술도 음식인 게 확실하다. 벽에 달랑거리는 쪼그라진 주전자, 초년병 딱지 뗄까 싶어 걸었다고. 그냥 걸기보다는 퇴역 주전자, 생각나는 대로 난이나 뭐라도 심어야 하지 않겠냐며 재미 붙인 모양이다. 주전자 말이 나왔으니 예전 코미디 보면 고급 요정으로 팔려간 주전자와 선술집 주전자가 재회를 하는데 주막집 주전자의 넋두리가 눈물겹다. 취한 손님들 술집주인 부부싸움에 앰헌 자기만 당한다면서 상습적인 폭행(?)에 주전자가 무슨 잘못이겠냐며 하소연을 하는데 말 그대로 찌그러진 주전자 신세 처량하다. 요정 주전자에게 “너는 어쩌냐?” 하니 “손님들도 점잖고 ‘이쁜것’들이 안아주고 빨아주니 내 팔자 상팔자”라면서 백남봉 특유의 재담과 익살에 배꼽 잡는다. 술 안 잡수면 양반인데 술만 먹으면 그런다고. 그래도 손님상에 찌그러진 채 올릴 수는 없어 아침 되면 어루만져주고 펴주고 한다나 어쩐다나.
시절이 좋아져서 알루미늄 주전자 수난시대는 끝났지만 이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으니. 차라리 그 넋두리가 정겹다.
이제 여름내 지친 맥주 걷어내고 찬바람 나기 시작했으니 연탄화덕에 참새 대신 아까 메추리 바삭하게 ‘구이구이’ 낼 때가 아닌가?
대인동 구역 롯데백화점 복개천 사이. 전화 227-0094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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