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촌 `초원식당’

추석 쇠러 고향에 가서 친지들도 만나고 이집 저집 돌다보면 술 한 잔 안 할 수 없습니다.
‘술 한 잔 안 먹어준다’ 이럴 경우 술이 술이라기보다는 음식일 수밖에 없는데, 한 잔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한 잔 두 잔 과음하기 마련. 뒤탈로 이어지는데 늘 그렇듯 마실 때는 황홀하지만 그 숙취의 괴로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할까요?
그럴 줄 알면서도 매번 비켜가지 못하는 것이 술꾼들의 심정입니다. 명절 뒤끝 버린 속 달래는 데는 차례상에 올리는 탕국도 좋고 북어국·콩나물국도 시원하지만 저기 대촌에 우렁탕만한 게 없습디다. 논가 마을 거기서 잡은 우렁이가 굵기만 하고.
대촌 가던 길. 마침 추석 전이라 소재지 초등학교 앞에 추석맞이 축구대회 현수막 크게 걸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멤버 채우기 쉽지 않았겠지만 명절 때라면 축구대회 한번 해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말이 남구 대촌동이지 시골 소재지나 다름없는 들판 너른 동네. 벼 익은 지 이미 오래고 상모놀이 꽹과리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이 넉넉하기만 합니다. 어린 날 이맘 때면 고개 숙인 나락 제쳐가며 물도랑을 내면 붕어·미꾸라지 떼지어 들어 ‘도랑치고 붕어잡고’ ‘도랑치고 우렁 줍고’. 붕어·피라미는 짤박하게 지져 놓고 우렁이는 큰 솥에 삶아 까야 하는데 양이 많을 때는 식구들이 다 동원되어 밤늦도록 깔 때도 있습니다.
우렁이 까는 데는 탱자 ‘까시’가 제격이어서 꾸벅 졸기라도 할라치면 손가락 찔러 눈물 찔끔 납니다. 그래도 붕어 지짐에 우렁이 된장기해서 조물조물 해 내면 반찬도 되지만 어른들 술 한 잔이 먼저입니다.
초원식당(주인 기미덕). 거진 20년은 된다는 이 집 들러보니 큼지막한 뚝배기 얼큰한 우렁탕 국물에 하마터면 큰 재채기 나올 뻔 했습니다. 논, 저수지 가상(가장자리) 뒤져 통알째 끓여 낸 국물이 냉동실에서 내온 퍽퍽한 알맹이 우렁탕과 같을 수가 있을까요? 어쩌다 섞여 들어간 은근한 꼬랑내마저 징한(?) 맛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살갑다 여기는 것은 해묵은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밑반찬도 좋아서 갈치창젓 매운 풋고추 몇 개 썰어 들어간 게 매콤하고, 거기에 호박잎 싸는 것도 집 반찬 같고, 우렁탕집답게 우렁 초무침이 입 다시라고 먼저 나오는데 속이 어지간하면 그것만으로도 한 잔 청할 만 합니다.
국물 마시랴, 우렁 까먹으랴 정신없지만 느긋하게 까먹는 재미가 솔찬합디다. 우렁이는 논에서 나는 토삼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 집 말고도 두어 집 더 있는데 예전에 광주드림 맛집 소개란에 걸판지게 소개했던 ‘할머니 우렁탕’. 기사대로 밥 숟가락 뜨자 할머니는 투박한 손으로 묵은 깻잎을 덥석 올려 줍디다. 그 명성 자자한데 어찌된 일인지 줄짓던 손님 예전같지 않아 보입니다. 일손 같이 거들 사람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힘에 부치실 연세. 거기 우렁탕 반할만하고 보리밥 우렁탕에 적셔 걸쭉한 집장에 비벼 우렁알 올려 넙쭉넙쭉 받아 먹듯 하다보면 이마에 땀방울 송글송글 어찌 명절 음식도 아닌데 묵은 색으로만 상차림이 가능할까요?
맛도 사람이 가져왔다가 가져가기 마련이지만 누군가는 그 맛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칼칼하다 못해 입천장까지 까지도록 정신 팔리다보면 어느새 숙취는 저리 물렀거라~. 이만한 집들 다른 고장에 있을 리 없고 넓은 들 대촌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촌농협 도로 맞은편 374-4509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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