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은 제58주년 맞는 `과학수사의 날’이었다. 자칫 미궁에 빠질뻔한 강력사건도 현장에 남긴 작은 흔적 하나에서 엉킨 실타래 풀리듯 해결되곤 한다. 남겨진 흔적을 찾고 분석하는 것이 과학수사의 출발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영아 2명이 냉동살해된 서래마을 사건을 해결한 것도 과학수사의 쾌거였다. 그러나 과학수사는`기다림의 미학’. 지문 감식 하나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고, 유전자나 유골 복원은 몇 달이 넘어가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광주 남부경찰서 과학수사팀의 박병선(54) 경위.
그도 “범인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흔적을 남기지만 못찾을 뿐이다. 그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고 강조하는 과학수사의 첨병이다.
그는 가장 먼저 사건현장에 도착해 `이 잡듯’ 범인이 남겨뒀을 단서 찾기에 열중한다. “반드시 (남긴 흔적이)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때로는 여러 날이 지나 구더기가 기어나오는 시신도, 온통 칼에 찔려 피투성이로 숨진 주검도, 불에 탄 차 안에서 살이 모두 녹아내린 시체도 마다 않고 상태를 살펴 범죄 행위로 죽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범죄 사건일 경우 가해자가 남긴 단서를 찾는다.
현장 감식을 마치고 나면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현장에서 수집한 단서를 분석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고, `눈에 핏기가 설’때까지 범행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의 주인을 찾는 것도 이젠 예삿일이다.
벌써 10년의 세월이다. 박 경위는 지난 78년 경찰에 몸담은 후 줄곧 파출소와 경찰서 관리계에서 20여년 동안 생활해 오다 지난 1997년 과학수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에는 정말 열악했다.
“그냥 평범한 손전등으로 지문을 찾았죠. 신발자국을 석고로 뜨는 것 만도 한 시간은 넘게 걸렸는걸요. 지금요. 고가의 장비가 도입 돼 빛을 비추기만 해도 지문이 보이죠. 카메라도 매우 발전했잖아요. 참 많이 변했어요.”
근무조건도 열악했다. 박 경위는 10여 년을 혼자서 남부관내 사건 현장 감식을 전담해 왔다. 과학수사에 대한 인식 부족 탓도 있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단다.
“퇴근하다 사건이 발생해 되돌아 왔죠.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이것 저것 단서를 찾고 나서 다시 퇴근하는데 또 연락이 와요. 그렇게 하룻밤 새 3번을 왔다 갔다 한 날도 있어요(웃음). 휴대전화 벨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죠. 그나마 최근에 과학수사팀 인력이 보강돼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정말 편하죠.”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인이 남겼을지도 모를 발자국과 지문, 혹은 실랑이 과정에서 흘렸을지 모를 머리카락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어렵고도 고된 일. 그러나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과 보람은 남다르다.
그가 찾은 단서로 해결된 강력사건도 부지기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2003년 `주월동 살인사건’이다.
“주월동의 한 아파트 앞에 주차된 차량의 트렁크에 사람이 죽어 있다는 연락이었어요. 현장에 달려갔죠. 그런데 전날 비가 와서 자동차 밖은 온통 흙탕물로 뒤덮여 이렇다할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죠. 그런데 차량 룸미러에서 작은 지문조각을 발견해 바로 분석에 들어갔죠.”
지문분석을 통해 죽은 이가 도박판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죽은 이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 조회 등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 시체 발견 이틀 만에 범인을 검거하는 `쾌거’를 올렸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이제 사건 현장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찾은 단서로 말미암아 사건은 더 빨리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사체의 신원을 알아내 유가족의 품에 안겨주는 것 역시 그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듯 지난 10여 년을 사건현장과 함께 해 온 박 경위.
그는 오늘도 `완전 범죄’를 꿈꾸는 범인들을 잡기 위해 단서를 찾아 사건현장으로 달려 간다.
글=홍성장 기자 hong@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