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잘 있지라?” “자네가 나라면 잘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잘 있을 수 없는 처지겠다. 세밑이라 종종 안부전화를 주고받는데. 대체로 오고가는 대화 수준이 이 정도다. 그저 `살아 있음’만 확인하는 수준이다. 사업하는 이도, 월급쟁이도 오십보 백보다. 으레 `한번 보자’는 말이 튀어나올 법도 한데. 서로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만다. 외환위기 이후 어느 해라고 흔전만전 했을까마는. 올 연말은 아주 심란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괜찮다’는 곳이 아예 없다. 하긴 대통령도 못해먹겠다고 난리가 아닌가. 기대고 비빌 언덕이 죄다 무너져 버린 백성이야 오죽하리. 아무튼 행사를 빼고 사적으론 술 약속 없는 조용한 연말이다.
 세밑 분위기가 착잡한 것은 한 해 결산이 마뜩찮은 탓이다. 들인 공력이나 정성만큼 얻은 게 없는 게다. 워낙 오래된 불경기인지라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올해도 역시나’로 덤덤할 수 있다. 정작 국가를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하는 이유는 딴 데 있다. 〈고사성어로 세상보기〉를 하는 민판기 선생은 `환불빈환불균(患不貧患不均)’을 빌려 왔다. `백성의 원망은 가난이 아닌, 고르지 못함에 있다’는 풀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딱 맞는 말이다. 이 땅에선 `땀흘려 부자’되는 원칙이 더 이상 믿어지지 않는다. 부동산을 얼마나 잘 굴리느냐에 잘살고 못사는 게 달려 있는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사정이 비슷하다. 노동이나 사업의 대가가 한해살이 결산을 좌우하지 않는다. 꿈쩍도 않고 가만히 있는 땅이나 건물 따위가 성패를 가르는 게다. 아파트 매매가와 지가 변동에 너도 나도 목을 매는 경제활동이라니. 가계부든 회계장부든 부동산이 손익을 결정짓는다면 그 살림은 건강할 수 없겠다.
 10년동안 제조업을 해온 지역 중소업체의 사장이 있다. 한해 평균 1억∼2억의 경상이익을 기록해 왔다고 한다. 그는 몇 해 전 충청도에 2000여 평의 땅을 구입했다. 공장을 짓고 수도권에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최근 그 땅값이 10배 넘게 올랐다고 한다. 인근 지역이 국가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덩달아 값이 튄 것이다. 그가 공장 대신 당장 부지를 판매한다면? 20억 정도의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10년 동안 종업원들과 힘들게 벌어들인 수익과 맞먹는 액수다. 아무리 건실한 기업가인 그이지만 저절로 딴 마음이 들 법하지 않는가.
 땅값을 키워 불로소득을 꾀하는 사례는 서울쪽 이야기만이 아니다. 광주에서도 고만고만한 부지들에 고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대규모 택지개발 방식에서 허가가 용이한 소규모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건설업체들이야 어차피 그런 사업이 주종이라고 치자.
 광주 곳곳에 하나둘 비집고 들어선 대형 유통업체들의 경우는 더욱 부정적이다. 학교나 공원부지, 산업용을 변경시킨 과정부터 석연치가 않다. 대자본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결국 용도가 바뀐 부지는 매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 땅의 가격이 부풀려지는 만큼 영업과는 상관없는 소득이 키워지는 셈이다. 재래시장이나 지역업체들의 어려움은 별개 문제다. 땀흘리지 않고도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을 불리는 데 지역사회가 휘둘리고 있는 꼴이다.
 서민들과 기업들이 힘겹게 한해 문턱을 넘고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더니. 아무래도 정부나 자치단체는 이 찌든 형편을 펴줄 재주는 없는가 보다. 그걸 기대하는 국민들도 없지만. 대신 이런저런 불로소득만 막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뭔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그러면 한해 살림이 적자든 흑자든 오롯이 저마다의 몫으로 짊어질 수 있을 텐데.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풀이 죽기도 하는 세밑이다.
hwpoong@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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