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겨우내 밤마다 선잠이요 ‘자다 깨다’를 하고 있다. 둘째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리는지라 잠자리를 바꾼 탓도 크다. 가을까지는 식구들이 창 쪽으로 머리를 뒀다. 이제는 외풍 심한 창가에 아예 자리를 깔고 혼자 길게 눕는다. 그 곁으로 둘째를 재운다. 이 경우 아비 노릇이란 창 틈으로 새드는 바람을 막는 한편 걷어차는 이불을 한사코 덮어주는 일이다. 딴엔 열심인데… 아침에 아이 목이 칼칼하고 코가 빡빡하면 속이 상한다. ‘찬바람은 벽을 타고 밤새 흐르고, 이불을 곱게 덮고 자는 어린애들은 많지 않구나.’
이부자리를 펼 때 야무진 잡도리 한번으로 아이의 ‘안녕’을 기대하기엔 모자라다. 수시로 잠옷도 여며주고 이불을 다독다독 해줘야 한다. 그래도 야음을 틈타고 오는 감기의 길목을 막을동 말동이다.
새해엔 늘 세상을 향한 바람을 품는다. ‘성실히 땀 흘리는 이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그러나 허황한 꿈인지를 금세 깨닫는다. 삶에 물린 어른들은 애당초 그런 소망 따윈 품질 않는다. 어쩌면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접었는지 모르겠다.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살아갈 뿐이다. 하긴 그게 인생이고 심간이 편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차별과 소외가 없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민주사회는 잊어도 되나. 머릿속으론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지만. 돈과 권력, 물질이 최고 가치로 숭상된 지는 오래다. 너나없이 그쪽으로 떼밀려 가고 있다. 기회균등의 원칙은 무너지고 부의 편중과 대물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하여 여기저기서 ‘위기’라며 아우성 치는 게다.
한때는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뒤틀린 사회를 곧추 세워 주리라 믿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민주주의의 작동을 과신하기도 했다. 섣부른 기대였다. 특히 해묵은 기득권이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단의 비극으로 덫을 놓았고 정권의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제 그들이 10년 세월을 되돌릴 기세다. 수구의 ‘화려한’ 반전이 눈앞에 온 셈이다. 민주 통일 인권 같은 가치들이 밑도 끝도 없이 ‘잘 살자’는 구호에 치여 천덕꾸러기가 되다니.
건강한 공동체란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꼬이고 얽힌 한국사회에 쾌도난마(快刀亂麻)란 불가능하다. 면죄부를 주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란 믿고 맡길 누군가를 찾는 일로 끝이 아니었다. 사회 구성원 모두 일상적으로 짊어질 저마다의 몫이 있었다.
어린 아이의 감기조차 불침번을 서는데. 하물며 미완의 민주주의가 눈 부릅뜬 감시와 진득한 참여 없이 순탄했을까. 부정부패 지천이고 약자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데. 마음 한 자락도 내주지 않고 지켜만 봐서야 될일인가.
새해 벽두부터 이런 자성을 곱씹는 억울한(?) 백성이 어디 나 혼자 뿐이리.
어젯밤도 선잠에서 깨며 생각했다. ‘아! 민주시민이란 피곤한 일이로다. 항상 깨어나 지켜야만 하는 불침번이 필요해.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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