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에 배달 나간다고 밥 한 상 머리에 이고/ 소주병도 한 병 눕혀 이고 그늘진 빙판길 나섭니다./ 어기적 오리걸음 손 안 잡고 하는 서커스/ 하늘은 된 눈이라도 퍼 부을 듯 내려앉고 머리 쟁반에 금방 닳게 생겼네.
 또 눈이 올란갑다고 쟁반머리 들이미는데/ 화실 사람 계단에서부터 알아보고 달려 나와/ 재빨리 받아 내는데 머리 또아리가 툭 떨어집니다./ 물감 통인지 찬 그릇인지 분간 안되는 화실 바닥에서/ 소주 한 잔 쭉하고 논둑 밥 부리듯 했으니/ 청국장 냄새인지 테라핀 냄새인지 징하게 배어/ 살이 되고 그림도 될까요?
 
 <선술집풍경>에 종종 동행한 K작가는 밥 내가는 아주머니를 보더니 청춘일 때 화실에서 밥 시켜 먹던 기억이 떠오른가 봅니다. 왜 그리 그를 술집 밥집들이 따라 다녔는지를 모르겠다며 대학 다닐 때부터 이녁까지, 더구나 장돌뱅이마냥 시장 근처로만 화실 이사 다녔으니 양동시장 근처에서 몇 년, 대인시장 입구에서 또 몇 년, 말바우장 근처에서 몇 년…. 그러니 근동 밥집, 술집 쭉 꿴 게 아니겠냐며 좋은 세월 다 가버렸다 합니다.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골 난 화실 생활, 한번씩 시켜 먹는 그 밥을 못내 잊지 못 하는가 봅니다.
 당시만 해도 지하층도 인기라서 꼭대기 가건물로 쫓겨 올라가기 일쑤였는데 밥 한 상 시키자니 미안키도 하거니와 그래도 마다 않고 3~4층 되는 계단을 수북한 밥 쟁반 손 지탱도 안 하고 올라채는 걸 보면 놀랍다며 푸짐한 반찬에 화실 식구는 행복해 질 수밖에 없다고. 그럴 땐 밥뿐이겠습니까? 술까지 따라 올라왔다니 요즘같이 눈발이라도 퍼 부을 것 같은 날 더 말해 뭘 하겠습니까?
 대인시장에서 전여고 후문 쪽 거리 가다 보면 술집이 네다섯 군데는 됩니다. 그중 금정식당 (주인 고안순·62)이 있습니다. 순 우리콩으로 만든 청국장이 일품인 집인데요. 찬이 정갈하고 지성스레 담가둔 술병들이 줄지어 인상적인데 좀 생소한 뿌지뽕(꾸지뽕, 뽕과) 술에서부터 지리산 헛개술, 가시오가피, 복분자…. 몸에 좋다는 술 유리병에 진열되어 있는데 생면부지들이 맛 보자 드는데도 마다 않고 한 잔씩 돌리는데 볼그작작한 술에 볼딱지 꽃피게 생겼습니다. 달콤하기만 할까요? 구리구리 맛도 깊습니다. 뿌지뽕은 주로 약재로 쓴다는데 산감 열리듯 하는 나무 빨간 열매가 호두알만합니다. 이외에도 찹쌀술, 죽순 담근 술, 매화주에 이르기까지 덤으로 입가심하고 오리탕, 청국장 절절 끓는 방구들에 둘러 앉아 소주잔 돌릴 만 합니다. 집주인은 함자만큼이나 온유해서 큰 소리 한 번 날 것 같지 않은 집. 그러니까 작년 이맘쯤인가? 이 지면에 올리자 했더니 주인양반 굳이 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은 집이라 치켜 봐도 일행의 지원사격에도 소용없더니 이렇게 돌고 돌 줄이야. 술 구색 심한 손님 어지간히 성가실 텐데도 퇴치법(?)이 적절한 걸 보면 보통 급수는 넘는 요즘. 세상 술꾼 뜻 다 받아 주는 집 어디 없습디다.
 연말 술 다 마시고도 새해라고 단배(旦杯)주니 귀밝이술이니 술핑계는 생기게 돼 있는가 봅니다. 새 술 새 부대에 담자 해도 맞는 말일까요?
 동구 장동 전여고 뒷길(복개천) 226-0806
 박문종 <화가>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