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동 `영흥식당’

 몇 해 전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던 때, 그곳에 근무하던 P선생은 비엔날레 정문을 나서며 “광주는 빛이 참 좋다” 한다.
 초가을 무등산 아래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다. 그 맛에 광주에 사는지도 모른다며 다른 지역에 비해 강렬한 햇빛을 느낀다며 나름의 논리적 근거들을 열거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광주에는 다른 곳보다 선글라스 판매점이 많은갑다고, 길목마다 안경점이 없는 곳이 없다며 맹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광주는 빛과 관련된 기관이 들어오고 관련 산업을 유치한다. 빛 광(光)자만 들어가면 무엇이든 통할 것 같은 도시.
 붓 몇 자루 사러 들렀던 궁동 예술의 거리. 갑자기 등장한 발광체(루미나리에), 혼을 쏙 빼놓는다. 번쩍번쩍 와~ 보기 좋다! 했다가 아니 보기 싫다!
 여기도 저기도 빛 광자인가?
 억압된 시대 어둠의 긴 터널을 뚫고 나왔으니 이제 좀 환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인지 한번 망막에 걸린 그 불빛은 도깨비불 되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오랜 기억으로도 이런 엉터리 설치물들은 되풀이된다. 이 거리 중앙초교 담벼락에 얼마 전까지 설치되었던 구조물. 애초 야외 상설전시를 해보겠다고 구청에서 설치했다는데 취지와는 달리 나중에는 사설 미술학원 홍보 게시판쯤으로 전락하는 것이어서 언제 걷어버렸나 했더니 이번에는 누구도 상상 못할 가공할 구조물이 들어설 줄이야.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 집은 한 블록은 비켜나 있다. 그 빛에 눈멀어 이제부터는 더듬더듬. 그래도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집. 영흥식당(주인 임병숙·62). 술청은 오늘 따라 젊은이들로 들어차 있다. 대화 내용으로 봐서 예술하는 사람들인 듯 남녀 짝지어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조소를 전공했다는 한 젊은이는 한겨울인데도 가을 점퍼차림이라면서 열혈청년임을 과시하고. 술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불콰한 얼굴만큼이나 각기 작품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예술의 거리 드나드는 사람들 치고 이 집 모르는 이는 없다. 그 거리 흥망성쇠를 꿰고 있는 마지막 선술집이라 해도 좋을, 병어찜·배가 노란 조기·제육볶음·삼치·고등어·꼬막…. 연탄불이 쉴 새 없고 갑오징어 초장에 찍는 맛이 그만이지만 이 집 전어 구워 낼 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낮시간에는 나이 지긋한 양반들 차지이고, 퇴근 시간쯤에는 넥타이 부대들, 좀 늦게까지는 예술 쪽 사람들이기 십상이지만 종일 죽치는 이도 있다. 좀 된다는 집들은 차분한 술자리가 쉽지 않은데 주인 양반 너그럽기가 한결같다.
 눈발 하나 둘 날리는 날, 연중 가장 춥다고 방송에서는 호들갑이고 술청도 안쪽 바깥쪽 가리게 되는데 이 집만의 상석이 따로 있었으니 구들 달궈 놓듯 높지막한 반침이 그것이다. 따뜻한 데다 자리까지 절묘해서 선술집을 통털어 명당이 따로 없다. 그 자리 차지하고 앉은 날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 아랫도리가 노골노골 취기가 너무 빨리 오르면 어찌할까?
 금남로 구 동구청 뒷길 232-9351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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