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서른여덟 살 되던 해 남편과 사별하고 4남매를 홀로 키웠다. 공장일이며 각종 날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다쳐 오른손 검지, 중지, 약지 마디가 잘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들을 위해 일을 쉴 수 없었다.

“안 해 본 일이 없소. 그라다봉께 인자 나이 묵고 삭신이 쑤시요. 허리고 다리고 온 몸이 아퍼 걸어댕기기도 힘들어라우.”

서구 양3동에 사는 윤순심(67) 할머니.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 천식에 당뇨, 당뇨합병증, 뇌졸중, 혈압 등 집안에는 약봉지가 가득하다. 자식들은 다 컸고 자신 몸이 아픈 것은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하지만 7년 전부터 손녀딸 둘을 키우게 되면서 할머니의 근심은 더 커졌다. 큰아들이 술과 노름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다 이혼하면서 아이들을 맡게 된 것. 며느리는 재혼했고 아들은 행방불명 상태다.

손녀딸을 키우는 윤 할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막내 손녀가 병을 앓고 있기 때문. 처음엔 가벼운 감기쯤으로 여겼다. 밤이면 38℃ 이상 고온으로 잠을 못 자고 신음했다. 올 1월에야 병원에서 알았다.

‘가와사키병’으로 불리는 급성 전신성 혈관염이었다. 보통 영아 때 발생하고 금세 치료가 되는 병이다. 하지만 제때 치료가 되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발전한다.

9살인 현지는 합병증으로 동맥이 늘어났다고 했다. “애기가 열이 워치케 나는가 40도까지 올라간당께요. 약을 묵으믄 째깐 좋아졌다가 약 기운 떨어지믄 열이 나서 잠을 못 자고.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줘야 겨우 잠을 자요.”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약을 먹인다. 하지만 증세는 심해지고 있다. 지금은 감기와 겹쳐 학교에서 조퇴하는 날도 많아졌다.

병원비와 약값도 만만치 않다. 한 달에 약값만 2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정부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다. 윤 할머니의 막내딸 사위가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 약값은 고스란히 할머니의 몫이다.

현재, 이 가족의 한 달 수입은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정부지원금 40여 만원과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받는 20만 원 등 60만원이다.

그나마 이달 말이면 노인일자리 사업이 끝나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40만 원으로 줄어든다.

“몸이나 안 아프믄 넘의 밭일이라도 하고 살겄소. 애기까지 아픈디 몸 할라 이래싼께 암껏도 못하고 죽것소. 안 아픈 게 질로 소원이고 손녀딸 약값이라도 댈 수 있으믄 바랄 것이 없것소.”

ARS 후원 060-700-1213 모금계좌 광주은행 037-107-303142 공동모금회 광주지회.

박준배 기자 nofate@gjdrae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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