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화포

 그 마을에 가면 `화’라는 글자의 느낌이 겹쳐서 온다. 불(火)의 이미지였다가 다시 꽃(花)의 형상으로 글자가 전화되는데, 상관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화포에서 불과 꽃은 적당한 거리로 서로를 인정한다. 그러므로 같거나 다르지 않다.

 이미 오래된 일이다. 곽재구 시인이 펴낸 《포구기행》이 관심의 중심에 선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책에서 가져온 글귀들이 인용됐다. 가장 많이 퍼졌고, 그리하여 가장 알려진 해변마을이 있다. 화포(花浦)다.

 화포는 순천에 있는 포구마을이다. 해변 구석진 곳으로 숨어 찾기도 쉽지 않다. 지명 또한 복잡하다. 그 땅의 원래 지명은 `쇠리’다. `쇠’는 지역 사람들의 말로 `소’를 의미한다. 화포와 쇠리는 동시에 입에 올려진다. 마을 이름을 언급할 때 한때는 쇠리가 훨씬 우세했다. 문자의 힘은 강하다. 《포구기행》이 알려지면서 화포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거의 화포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마을 사람들도 쇠리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들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곽재구 《포구기행》 중)

 화포에 가면 시인의 이 감성적 진술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화포에는 많은 불빛들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빛은 화포의 아낙들이다. 벌교만큼 명성이 높진 않지만 화포도 꼬막의 땅이다. `뻘배’를 타고 바다에 가서 거친 삶을 잇는다. 화포 아낙들의 삶은 뻘의 삶이다. 그 생산의 땅에서 꼬막을 잡고, 피조개나 맛을 건져 올리며 질긴 생을 이었다. 땅처럼 갈라진 아낙들의 손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손이 화포의 빛나는 꽃이다.

 화포의 또 다른 꽃은 일몰이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지극히 몽환적인 풍경이 삶의 바다에 있다. 낯선 두 이미지가 만나 화포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선다. 신기한 일이다. 화포에서 만나는 해는 바다로 지지 않는다. 해의 길이 산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화포의 일몰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곳은 갯벌이다. 드문드문 물고랑이 패인 드넓은 갯벌 속으로 해가 진다. 해가 남긴 하루의 마지막 파장은 바닷물을 머금은 갯벌 위에서 붉게 튄다. 화포를 찾는 발길은 거의가 그 풍경을 대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곽재구의 언급은 틀리지 않다. 일몰에 향했던 눈을 뒤로 돌리면 일몰보다 더 아름다운 빛이 있다. 물때를 따라갔다가 땅으로 되돌아와 긴 하루를 마감하는 마을의 저녁 불빛, 고단한 하루를 끝내는 심정들이 그 불빛 속에 생의 이면처럼 잠든다. 고요하고 편안하게 가라앉은 불빛들 속에 해변 마을 화포의 가장 아름다운 빛이 있다. `화’는 불이면서 꽃이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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