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담아 들판에 쌓아놓은 듯

▲ 곡성군 입면 송정리 내동마을의 이팝나무와 내동정.

80년 5월 고3학생의 눈에도 이팝나무는 지금처럼 하얀 쌀밥을 가득 담고 있었다. 5월 항쟁기간 우리는 주먹밥을 먹었었다. 그래 국립5·18민주묘지 가는 길의 가로수가 이팝나무인가 보다.

도심공원이나 숲속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새소리와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좋기 만한 5월 곡성군 입면 송정리 내동마을의 이팝나무 숲을 찾아가본다. 아름드리 6그루의 이팝나무를 멀리서 보면 초여름에 흰 눈을 덮고 있는 풍경이다.

이팝나무는 입하쯤에 꽃을 피우는 나무이기에 모내기철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내동마을에서는 이팝나무 꽃이 위쪽부터 피면 모를 일찍 낸 논들이 풍년이 들고, 아래쪽부터 피면 모를 늦게 낸 논들이 풍년이 들고, 꽃들이 전체적으로 만개를 하면 모든 논들이 풍년이 든다는 말이 구전되고 있다.

오뉴월이 되면 이팝나무에 하얀꽃이 만발하여 마치 밥을 담아 들판에 쌓아놓은 형상이다. 때문에 이팝나무에 꽃이 만발해 별나게 희면 그해의 벼농사는 대풍이 드는 조짐이라고 여겼다.

‘이팝나무’라는 말은 ‘이밥나무’가 변한 말인데, ‘이밥’은 쌀밥을 말한다.

지금이야 쌀밥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주식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족인 이씨(李氏)들이나 양반네들이 먹는 밥이지 일반 서민은 감히 먹을 수 없는 귀한 밥이라 ‘이씨의 밥’, 즉 ‘이(李)밥’이라고 하였단다. 가난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에는 그 귀한 이밥 한 그릇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기도 했다.

이팝나무가 자리한 내동정 앞에는 임진왜란 때 고경명 의병장의 선봉장으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월파 유팽로 장군의 머리를 입에 물고 마을 옆 합강에 있는 장군의 집에까지 달려와 부인에게 전해준 후 스스로 굶어 죽은 의마인 오리마의 무덤, 의마총이 있다.

내동마을엔 조선시대 유명한 문인 백호 임제(1549∼1587)의 외갓집이 있다. 외갓집이 자리한 집에는 학자수인 회화나무(수령 480년, 군보호수)가 자라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의 상류인 순자강의 넓은 모래벌판은 백포명사(白浦明沙)라 했다고 한다. 현재 순자강가에는 전남방직의 모태인 종연방적의 뽕나무농장이 있다.

이번 주말은 보름이다. 어머니가 그릇가득 담아놓은 하얀 쌀밥의 포근함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길 바란다.

조용하고 아담하게 숨어있는 이 곳을 가만가만 찾아가면 이팝나무 꽃속으로 휘엉청 밝은 보름달빛을 청해놓고, 여인의 하얀 속치마 인양 착각하는 이팝나무 꽃의 황홀경 속으로 풍덩 빠져보는 즐거움이 있다.

김세진 <영산강유역환경청 환경홍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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