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등

▲ 수박등에 서면 텃밭 모자이크, 광주를 품고 있는 산들의 이어짐과 마주한다.

궁금한 곳이었다. 봄이면 매화 꽃잎 흩날리는 것에 취하는 곳이라 했다. 봄은 지났고 어떤 풍경들을 마주칠 수 있을까. 도시 안에 숨어 있는 곳이다. 무등산, 금당산마냥 높지 않다. 쉼 없이 건물들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도로로 이동한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남구 월산동 노인복지회관으로 간다. 광주에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했던 1970년대 말, 들어선 신우아파트를 마주친다. 그 뒤편, 속살이 보인다. ‘수박등’(105m)이다.

이름 참 친근하다. 수박등. 신우아파트 뒤편으로 난 길을 오른다. 한 노부부가 텃밭에서 재배한 콩을 거둬들이고 있다. 평화롭다. 얼핏 보기에도 그다지 나무가 많은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소일거리 삼아 가꾸는 텃밭이 오밀조밀하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니 참나무, 벚나무, 탱자나무들이 반긴다. 벌도 날고 새도 난다. ‘오르는’ 재미로 치면 심심할 수 있는 곳일 듯 싶지만 찔레꽃, 장다리꽃, 질경이꽃, 엉겅퀴와 눈을 마주치니 어느새 정상이다.

도시에서 살다 가끔 고향에 들어설 때면 느끼는 기분이 있다. 이어지고 이어진 산들이 마을을 오롯이 품고 있다. 수박등에 서니 마찬가지다. 무등산·금당산·짚봉산·풍암산·백일산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수박등 저 편에 서면 군왕봉·삼각산·한새봉·매곡산이 보일 터다. 산 아래 광주가 보인다. 사람 사는 동네들이 보인다. 빌딩도 보이도, 학교도 보이고, 갖가지 모습을 한 우리네 삶들을 마주한다. 광주를 사방팔방으로 이렇게 조망할 수 있는 곳 없을 듯 싶다.

본디 수피아여고가 있는 양림산에서 까치고개를 넘어 수박등으로 이어졌고 이 능선은 북쪽으로 향해 지금은 문화방송이 있는 덕림산을 지나 돌고개로 이어지고 양동초등학교가 있는 제봉산으로 연결됐다. 이곳에서 50여 년 살았다는 한 할아버지(81) 말에 의하면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까치고개 쪽도 산이었고 집을 짓기 위해 흙을 파는 곳이 있어 ‘흙구덩이’라 불렀고 서편의 짚봉산 아래에 논, 월산마을·신촌마을이 있었다 한다. 수박등에 수박을 많이 재배해 수박등이라 불렀다는 이도 있고 짚봉산 쪽에서 수박을 재배한 사람들이 이곳을 넘어 광주천 주변에 선 장으로 팔러 다녀서 수박등이라는 이도 있다.

수박등 정상에서 내려오면 텃밭 모자이크가 펼쳐진다. 한쪽에는 노랗게 익은 보리밭이 일렁이고, 마늘이 자란다. 붉은 흙과 푸른 생명체들의 뒤섞임,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풍경에 마음을 뺏긴다.

수박등의 다른 이름은 월산공원이다. 1967년 공원 지정이 됐는데 대부분 사유지여서 14만8800여 평 중 7900여 평만 월산체육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소박한 수박등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재 데크, 농구장이나 배드민턴장을 만들기 위해 능선이 시멘트로 평평하게 닦여졌다. 수박등의 텃밭 모자이크 또한 이렇게 바뀌어 버리는 것일까. 우연인지, 다행인지 현대의 인위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 곳, 자연의 자연스런 변화가 흐르는 수박등이 광주의 미래였으면 싶다. 조선 기자 s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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