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임남진

▲ `섬-몽환’(2008)

 사람 사람 사람 사람들 물결…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거리에 흐르는 사람들 물결에 흘러가고 있네…. (동물원의 ‘유리로 만든 배’ 중).

 문득 노래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화가 임남진. 그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구겨질 듯 연약한 종이배를 타고 떠도는 중이었다. 스스로 주류 질서의 ‘안정’을 버리고 홀로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건내준 명함 한 구석에는 종이배를 타고 있는 작가가 인사를 한다. 여행하는 자,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 더 씩씩해야 한다. 그러다가도 돌아서서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서면 또한 치열한 자기응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침잠과 부유의 반복적인 시간들이다. 화가 임남진의 시간들이 붓끝을 타고 전해져 온다.










 

 

 ▶종이배 1-화가의 작업실

 산수동 작업실로 들어서니 정말 ‘작업실’이다. 넓다면 넓은 작업실이 빽빽하다. 커피를 주겠다며 작가가 등을 보인 틈을 타 재빠르게 작업실 구석 구석을 훑는다. 채색 중인 작품이 바닥 한 가운데 누워 있다. 그 위에 방금 전 까지 작업을 했을 방석이 놓였다. 방석 위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진다. 햇살을 쏟아내는 창문 바로 앞에는 러닝 머신이 놓였다. 켜진 컴퓨터는 음악을 내보내는 일 외엔 하는 일이 없다. 벽면엔 빼곡한 책과 사진들과 오래된 음악 테잎들과 그림들이. 라면과 햇반 꾸러미와 가지런히 놓여진 빈 와인병들이…. 소파 옆엔 난로와 선풍기가 계절과 상관없이 나란하다. 사계절, 24시간의 흔적들이 모두 작업실 안에 있다.

 라면을 끓이고, 그림을 그리고, 세수를 하고, 음악을 듣고, 창밖을 보며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작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고는 지는 해를 하염없이 보다가 문득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한 없이 빨려들어가다가 또 웅크리고 그림을 그렸을 사람.

 “나를 확인한다는 일. 고되면서 견딜만하고 그것은 갈등이며 공포이기도 하다. 눈을 감는다.” (2009년 ‘섬’전 작가노트 중)

 그의 공간이 말을 건다. 조각난 파편들처럼, 아무 의미없는 것 처럼 놓여있는 물건 하나 하나가 사실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은 이미 그의 그림에서 본 적이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책가도’(2009)에서 봤던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소파 팔걸이에 앉아 인사를 한다. 불면의 밤에 작가 옆에서 있던 강아지 인형도, 곰돌이 스탠드도, 디스 플러스도 모두 거기 그렇게 있다.

 “좀 어지럽죠? 그래도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는 다 알아요”라며 쾌활하게 웃는 작가.

 

 ▶종이배 2-그의 그림들

 대학에선 서양화를 전공했던 그는 어느 순간 불교의 탱화에 빠져들었다. 그가 지난 2000년에 가진 첫 전시회는 ‘우리 시대 탱화’전. 95년 졸업한 후 처음 개인전을 갖기까지의 5년의 시간은 작가로서의 자기 형식과 내용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떠도는 어린넋들을 위하여’(1998)

 1988년도에 대학에 입학하고 그 시절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광미공(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우리 미술에 대한 고민을 했던 그다. 그런 그가 탱화에 빠져든 계기는 무얼까.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호암갤러리에서 고려불화전을 봤어요. 이전까지 탱화는 종교적인 것이고 색깔이 촌스럽게 화려한 그림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 전시회는 충격이었어요. 깊은 색감이 너무 좋았어요. 치밀한 밑그림과 섬세한 선묘, 웅장한 스케일. 모든 것이 완벽한 세계였어요.”

 그가 하고 있는 서양화 안에서 탱화의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못 찾았다. 그러다가 1997년 선배인 이상호 화가가 사찰의 후불탱화 작업을 맡게 됐다. 그 때 탱화작업을 도왔다. 탱화 작업에 재능을 보였다. 이상호 작가는 그에게 남은 비단과 물감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엔 지장보살을 그렸다. 그러다 감로탱화란 형식을 알게 됐다. 담고 싶은 내용과 맞아 떨어지는 형식이었다. 계속 모사를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전통 탱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내가 담고 싶은 내용과 형식이 맞아 떨어진거죠. 대학 때 부터 꼭 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었는데 맞는 형식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감로탱화를 알게 됐고 비로소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었어요.”

 첫번째 개인전에 전시한 ‘떠도는 어린 넋들을 위하여’가 그런 그림이다.

 “오백나한도라는 그림이 있어요. 스케일이 무척 큰 그림이에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인간사가 들어 있어요. 각각의 사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담겨 있어요. 언젠가 그런 그림을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어요.”

 그가 그리는 그림은 정확히 말하면 탱화 기법을 이용한 ‘채색화’. 오백나한도처럼 그의 그림엔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빼곡하다.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다는 그다. 사람들의 삶 속 모습을 담고 싶다는 그다. 자신의 그림 앞에 사람들을 멈춰서게 하고 싶다는 그다.

 

 ▶종이배 3-그림 그리는 일

 “쉬운건 없어요. 고생하면서 혹사시키면서 해야 만족도 크더라구요.”

 탱화 기법으로 그리는 그림은 특히 힘들다. 납작하게 엎드려서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허리도 무릎도 아프다. 우선 밑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밑그림 그리는 데만 3~4개월이 걸린다.

 육체적 고난이 따르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그에게는 고난이면서도 위안이 된다.

 “혼란스러울 때 그림이 답을 주는 것 같아요. 결과물을 떠나서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분노심이 일때 위로 받기도 하고, 나쁜 마음으로 힘들어질 때도 그림으로 위안 받아요.”

 그의 인생에서 그림은 그를 지켜주는 ‘친구’다. ‘내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이’라는 인디언 식 ‘친구’의 뜻풀이를 좋아한다. 종이배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는 그에게 그림은 든든한 친구다.

 “남들은 스물 아홉에 힘들다던데 나는 서른 아홉이었던 지난해 특히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림을 떠나서 모든 것이 항상 불투명해요. 남들은 결혼해서 아이들 뒷바라지 할 나인데. 그냥 기댈 곳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혼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어요.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못가진 것에 대한 욕망이라는 걸 알죠.”

 화가로 사는 동안 늘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경제적 불안함, 거기에 스스로 혼자 헤쳐나가야 할 여러 종류의 난관들…. 그는 잠깐 안주할까도 생각했지만 다시 종이배를 타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안정을 찾으면 고민을 놓친다는 걸 안다.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는데….

 오는 10월에 있는 대만비엔날레에 작품 3점을 출품해야 한다. 작가인 그를 부르는 곳이 많다. 할 일도 많다. ‘오백나한도’도 그려야 하고 찰리 채플린 영화 같은 그런 그림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인생은 희극적 시련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는 채플린의 영화처럼 인생의 그러한 면을 그림에 담고 싶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햇살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라면을 끓여먹고, 친구들과 소주를 마신다. 세상이 낯설어도 종이배 하나면 충분하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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