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김진화

 앨리스가 갔던 이상한 나라. 초현실의 세계. 벽에 구멍이라도 숨어 있어 그 앞에 서면 저 4차원의 세계로 빠질 듯한 느낌. 작가 김진화의 작업실 문을 열며 드는 생각이다. 작업실 곳곳에 있는 신비스럽고 묘한 입체 작품들 사이로 언뜻 ‘모자 장수’나 ‘3월 토끼’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선 ‘3월 토끼’ 대신 약간 무표정한 김진화 작가가 서 있다.

 

 상징들로 가득한 내면 세계

 추락하는 비너스. 끝없이 이어진 원형의 계단. 펼쳐진 별자리와 신화의 이미지. 추락과 상승. 강렬한 색채 대비. 그의 작품엔 온통 응축된 상징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리고 프로이드가 꿈을 해석하듯 그의 그림은 인간 내면의 깊숙한 욕망, ‘이드’를 끄집어 낸다.

 또한 작품들은 모두 중첩돼 있다. 내면의 층위가 여러 층이듯 작품들 또한 단일하고 명쾌한 그 무엇이 아닌 여러 겹의 층위로 겹쳐진다. 우리는 그런 그의 작품들 앞에서 ‘해몽’하듯 해석을 해 보거나 혹은 즉자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이는 무의식의 소리를 듣는다. 꿈을 꾸듯 추락했다가 상승하는 기분이 들거나, 갑자기 불안이나 아득함이 엄습해 올 수도 있다.

 “현대 건축물 구조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 두가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풀어내요.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은 심리적 갈등이 많죠. 그런 시대를 살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추구하는 것들,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이 많잖아요. 권력·명예를 갖기를 원하는 마음, 또 갖지 못했을 때의 집착,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망상, 현대인은 모두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러한 정신병리적인 상태가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계단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추락의 구조 혹은 반대로 상승하는 듯한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원형 계단, 창문, 건축물의 도면 같은 이미지들은 그가 평소에 관심 있어 하는 현대 건축물의 상징이다.

 그는 편집증·자아 도취·콤플렉스·과대망상 같은 현대인의 내면의 상태들을 끊임없이 주시한다.

 어느 비가 오는 거리, 신호등 앞에 선 사람들을 작가는 주시한다. 초록불로 바뀌자 마자 전쟁하듯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 작가는 그 순간 전쟁터를 연상했다.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 치는 병사들 처럼 우리는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작품 ‘켄타우르스들의 전쟁’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심리적 전쟁을 치루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상태의 상징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원형의 상징들로 가득 채워넣는 작품 앞에서 우리는 이미 논리의 세계가 아닌 저 깊은 심연의 4차원적 공간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된 앨리스처럼, 작품 속에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무의식의 세계로 초대하는 또 다른 토끼가 숨어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토끼를 쫓아가다 보면 자신 안의 불안, 욕망, 과대망상, 편집증, 집착, 상실감 등과 조우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불안한데다 또 필사적으로 산다.











 

 

 작가의 불안, 작가의 추락

 내면의 세계를 파고 들어서 일까? 그도 불안을 느끼고 때로는 편집증에 휘둘리고, 추락할까 두려워할까?

 “저는 작품 활동에 올인한 사람이에요.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제거해 나가요. 결혼도 그 같은 이유에서 제쳐둔 거고…. 강박관념일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또 불안한 것이 있어요. 작업하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하려고 하는데 나이가 40대가 되니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떨쳐버리고 싶죠.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작품이 퇴보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는 작업을 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렸을 때 화가의 꿈을 가진 뒤 한번도 의심하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작업을 하지 않고 있으면 괜히 힘이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불안을 느낀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영어와 그림 모두 가능한 그에게 종종 ‘솔깃’한 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을 선택하면 작업에 지장을 받는다. 가족들은 이해못하지만 그는 그런 제안들도 제거해 나간다. 작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그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불안은 엄습한다.

 물론 추락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실패할 때마다 추락하는 느낌을 받아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요. 저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남들에 비해 배로 노력해서 성과를 얻어가는 것이 제 삶이었어요. 광주신세계미술제 대상을 탔을 때도 네 번째 도전해서 얻어낸 결과였어요. 지금도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자꾸 떨어지네요. 그럴 때 마다 조바심이 나죠. 실패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때까지 해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 스스로도 정신병리적인 증상을 배양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그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다른 것은 철저한 응시와 환기다.

 “현실과 이상의 충돌, 물질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의 불균형으로 빚어지는 크고 작은 정신적인





분열과 심리적인 갈등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그것을 환기시키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시간의 점’

 

 삶의 비평, 그 조건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시대. 그 해결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매슈 아널드는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했다.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이 예술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그런 개념으로 볼 때 김진화 작가는 삶을 비평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시대에서의 ‘불안’과 ‘영혼’과 ‘시대’를 비평한다.

 그는 동시에 그 지점에서 하늘의 별을 본다. 그의 작품 속에는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 외에도 별자리와 그 신화가 자주 등장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인공의 빛이 없던 그곳에선 별들이 쏟아질 듯 많이 보였거든요. 저는 별자리를 어떤 희망이나 이상을 말해주는 매개체로 사용해요.”

 내면의 상태를 분열과 갈등의 상태로 몰고 있는 현대와 대비되는 공간으로서의 별자리일 수도 있겠다. 추락이 아닌 상승의 궁극의 지점.

 “이봐 그러지 말고 이리와서 하늘의 별을 좀 봐~”라는 제안.

 “나의 작업은 그 관념을 벗어 버림으로써, 상승을 위한 상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작가노트 중-

 그는 ‘삶을 비평’하고 ‘상승을 위한 상상’을 계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메모하고, 생각하고, 관찰한다.

 “책을 많이 읽어요. 책을 통해 작업의 모티브를 찾는 경우가 많아요. 책을 읽다보면 개념이 정립되는 것 같아요.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 같은 인문학 서적을 특히 좋아해요.”

 여행하는 시간도 그에겐 사색을 위한 중요한 시간이다. 일정 상 짬을 내기 어려우면 ‘일’을 핑계로 도시를 여행한다. 2주 정도 작업을 하면 3~4일 정도는 떠나 있어야 한다. 다음 작업을 위한 중요한 시간들이다. 탐구는 끊임없이 이뤄진다. 별자리를 공부하는 것도 추가다.

 그가 좋아한다는 알렝 드 보통의 표현을 빌려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을 잠깐 짚으면 이렇다.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로서 늘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술 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작가 김진화는 우리 안의 오류를 끄집어 내고 그것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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