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창범

▲ `현대인 No.1, 2, 3 ’

 을씨년스러운 날씨. 하루가 저무는 시간, 대인시장으로 간다. 아케이드로 어둑어둑한 대인시장 안. 행인이 드문 시장길은 추웠으나 상가에서 나오는 노란 조명이 상대적으로 따뜻해 보였다. 상점 주인들이 그 조명아래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일 오후의 시장 안에 작가가 있다. “간판 아래로 플라스틱 병들이 매달린 곳”이라는 작가의 말을 나침반 삼아 시장안을 두리번 거린다. 있다. 간판 아래로 매달린 플라스틱 병들이 상인들과 똑같이 조명을 받고 있다. 달걀이며 국수며 당면 같은 것을 파는 부식가게에도, 잡곡들이 늘어선 쌀가게에도 플라스틱 병이 매달렸다. 그 가게들 가운데 ‘집창촌’이라 적혀있는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 하반기 입주작가로 대인시장 안에 입주해있는 이창범 작가의 작업실이 거기다. “워메. 요런 것이 있었네. 쓰레기가 예술 작품이 돼버렸구만.” 간판 밑으로 달린 플라스틱 병들을 나중에서야 발견한 옆 가게 손님이 한 마디 보탠다.











 

 

 1층의 플라스틱 빈병

 “고향이 광주인데도 13년 만에 광주에 오게 됐어요.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다 맘 잡고 작업을 하려구요. 그동안엔 학원일하면서 작업을 같이 하려니까 잘 안되더라구요. 그러다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하고 왔어요. 그러니까 맘 잡고 처음 하는 일이 여기 시장에서의 일인 셈이죠.”

 ‘맘 잡고’ 처음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정말 ‘맘 잡을’ 일이 많은 곳이 시장이라는 공간인 탓이다.

 “오랜만에 와본 시장은 정말 많이 달라졌더라구요.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사람도 많이 없고 안타까워요.”

 빈병들은 일단 그런 안타까움의 결과다. 원래 그가 생각했던 작업은 다른 것이었으나 여건을 고려한 계획 수정이 필요했다. 작가 본인의 작업보다 시장이라는 공간과 사람들과의 접점의 면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다소 예술가스럽지 않은 일이 시작됐다.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플라스틱 빈병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렇게 쌓여진 병들에 하얀색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물감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간의 환각 상태가 온 것”도 같았다. (그 증거들은 작업실 천장에 남았다. 상형문자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형태의 문양들이 마치 주술적 기원이라도 담은 듯 천장에 도열해 있다. 마치 홀린 듯이 천장에 그것들을 그렸단다.) 어쨌든 그렇게 완성된 하얀 빈병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놀이감이 됐다. 사람들은 빈병에 그림을 그렸다. 꽃도 그리고 사람도 그리고 그리고 싶은대로 다 그렸다. 그 병들이 시장 가게 간판 아래로 줄줄이 매달렸다.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빈병이라고 했다. 사과 그림이 그려진 그 병은 하루에도 시장을 몇 번씩 왕복해 지나가는 리어카 과일 파는 아주머니가 손수 그린 그림.

 작가는 벽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공간은 여의치 않았다. 대신 가로 10미터와 12미터 짜리 걸개그림을 만들었다. ‘맘잡을’ 일은 많다. 걸개그림 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안되는 곳’이 많았다. 작가는 상인들을, 상인들은 작가를 알지 못했다. 서운함이 밀려왔다.

 “여기선 하늘이 안보이니까요. 마치 소나무 숲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을 그렸어요. 그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걸개그림은 걸렸으나 이번엔 벽화를 그릴 장소가 문제다. 여러사람이 얽혀 살아가는 시장안. 쉬운 것은 없다. 그래서 작가의 고민은 끝없이 연장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해야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 고민은 동시에 시장 안에서 뿐 아니라 이시대 작가로 살기위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2층의 기괴한 스케치들

 작업실 1층 빈병들이 시장을 향하고 있다면, 작업을 하는 2층엔 작가가 웅크리고 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형상들이 벽면을 채운다. 혐오스럽기까지한 형상들의 스케치들이 벽면을 차지한다. 아기자기한 빈병들을 걸어두고 올라와서는 기괴한 스케치들에 몰입하고 있는 작가는 이중생활자?

 그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은 전혀 아기자기 하지 않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것은 나의 치부, 너의 치부, 그리고 우리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작가가 그리는 그림 속 세계는 햇살이 빛나고 모든 것이 평화로운, 사랑과 인류애로 충만한 축복받은 세계가 아니다. 파괴의 욕망이, 굴종의 유혹이, 분열된 심리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세계다.

 만약 세상의 모습에서 모든 꾸며진 것들을 제거해주는 특수한 안경이 있다면, 그 안경을 쓴다면 아마도 작가가 그린 그림 속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작가가 ‘정복자conqueror’라고 제목 붙인 그림. 기계로 신체의 영역을 확장한 몸이 아무 것도 걸친 것 없는 인간의 관절을 부러뜨리고 신체를 뭉갠다. 작가는 예전 대우자동차 노조 파업사태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작가의 눈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기계 부속품처럼 집에서 직장으로 운반돼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운반되는 삶.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물적인 욕망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삶.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작가의 눈에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플라스틱 빈병들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걸렸다. 이창범 작가가 시장에서 한 첫번째 작업.

 

 1층과 2층을 잇는 노란 호박

 1층의 빈병들과 2층의 스케치들 사이의 간격이 크다. 아마도 ‘맘잡고’ 13년 만에 처음 고향으로 와서, 처음으로 레지던스 작가로 입주해 한 곳에 삶의 터전을 두고 살아온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그 간격 만큼이지 싶다.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대학을 경북 대구로 갔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거기서 그는 거의 ‘외계인’만큼 이질적인 존재였다. 졸업 후에도 여기 저기 떠돌았다. 5개 광역시 중 한 곳만 제외하고는 다 살아봤다.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다”는 작가.

 “쉽게 안죽고 살면 다 살아지고…. 어쨌든 그곳에서 살아 남아야 하니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어지더라구요. 진득한 오랜 사귐이 없어 안타깝기는 해도….”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작가는 이제 또 다른 두려움을 없애고자 한다. 대한민국에서 젊은 작가로 사는 두려움이다.

 “솔직히 젊은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살기는 갑갑스럽죠. 어차피 부딪혀야 하는 현실인데요. 불만을 가져야 바뀌죠. 어쩔 수 없이 예술인들은 싸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세상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작가는 2층 한 켠에 노랗고 실한 늙은 호박 한덩이를 올려 놓았다. 옆집 쌀가게 주인이 쌀가게에 어울리게 멋진 그림 하나 호박에 그려달라 부탁했단다.

 “위축되고 경계하는 분위기에서 내가 무엇을 할까. 서로 충돌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내어놓는 것들이 형식적인 결과물이 되지 않을까.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호박을 가져다 놓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는 또 생각할 것이다. 노란 호박에 고민까지 딸려 떡하니 자리잡았다. 그래도 답답하고 막막할 때는 작가가 애용하는 ‘창작촉매제’(소주)도 도움을 줄 지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의 온기 나누는데 그만한 것도 없으니….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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