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끝> 이호동

▲ `1+상’ 퍼포먼스 모습.

 “춤추는 고래에서 뵙죠.”

 전화기 너머로 ‘춤추는 고래’라는 단어가 춤을 추듯 건너온다.

 “춤추는 고래요?”

 “아…대인시장 내 제 작업공간입니다.”“아. 네….”

 이호동 작가를 만나러 ‘춤추는 고래’로 간다. 작업실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다. 작가말고 덤으로 고래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놀이터 ‘춤추는 고래’

 드르륵. 시장 안의 문이라면 무릇 이런 소리가 나야 제맛. 춤추는 고래의 문은 드르륵 열린다. 가운데 난로는 군고구마 구워먹기 딱 좋아보이고, 구석지고 숨기 좋은 공간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 하다. 아이들은 기어오르고, 파묻히기를 좋아하는 법.

 “대인시장 입주작가로 1년 동안 있으면서 제가 한 일은 이 공간이에요. 시장 안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빈점포 하나를 아이들 쉼터 겸 도서관으로 꾸미자고 생각했죠. 이공간은 아이들과 함께 꾸민 공간이에요.”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로 대인예술시장 장기입주작가로 들어왔다. 그 1년 동안 춤추는 고래 주인아저씨인 그는 아이들과 함께 ‘춤추는 고래’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춤추는 고래에서 함께 모여 장기자랑도 하고, 그리기도하고, 만들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대인 시장 골목이 놀이터였던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터를 십분 활용했다.

 “대인시장에는 아이들이 10명 쯤 있어요. 상인분들의 자녀들이죠. 시장 안에는 마땅히 놀 곳이 없잖아요. 만약 내가 저 나이였다면 이런 공간을 갖고 싶지 않을까. 공간에 대한 추억거리 하나쯤은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꾸민 공간을 추억으로 새길 것이다.

 “이따 춤추는 고래에서 보자” “그래 이따 거기서 봐”라고 약속을 잡을 것이다.

 갑자기 문의 드르륵 열린다. 뺨이 발그레한 앳된 얼굴이 하나 서 있다.

 “아저씨 이따가 놀러 안갈래요?” “어디로 가는데?”

 작가와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의 대화가 ‘이무롭다’.

 

 시장에서 엮어올린 이야기

 “‘춤추는 고래’의 고래는 고래(古來)예요. 옛것이 온다. 점점 사라져 가는 이야기나 문화를 잇는다는 의미예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바람도 들어있구요.”

 작가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서 있는양 같은 공간에 있지만 이어지지 않는 관계들을 이었다.

 “시장에서 박스 줍는 일을 하는 할머니가 있어요. 저희는 ‘선인장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어느날 박스를 챙겨놓은 저에게 선인장 하나를 선물로 주시는거에요.”

 그는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발굴해냈다. 할머니는 버려진 선인장을 집으로 가져가 정성스럽게 살려냈다. 할머니 집은 주워온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였지만 또 한 켠에선 생명들이 푸르게 모여 살고 있었다. 버려진 선인장도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질기게 생명력을 이어 새끼를 치고 번성했다. 할머니는 그 선인장들을 이웃에 선물했다.

 작가는 귀하게만 자라고 어쩌면 버릇없이 보이기까지 한 천방지축 꼬마들을 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갔다. 선인장을 담을 화분을 함께 만들고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일상에 가끔 시장 아이들과 작가들이 들어왔다.

 “옛날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관계들이 지금은 너무 단절돼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이야기를 매개로 잇고 싶은 거죠.”

 어른들은 사는 것이 힘들어 ‘틈’이 없고 아이들은 너무 빨리 경쟁에 익숙해진다. 이제 아이들은 시장 한 켠에 자리한, 겨울이면 쓰레기로 가득차 있던 ‘선인장 할머니’집이 여름이면 마당에 심어진 온갖 풋것들로 초록 폭발이 일어나는 집으로 각인될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유쾌한 방식, 말장난

 아이들에게 멋진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그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본다. 강진이 고향인 그는 아마도 구름을 보고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풍부한 소년이 아니었을까.

 그의 작업들은 거의 대개가 유쾌한 언어유희들로 이뤄졌다. 예컨대 작가는 문짝 하나를 들고 장성 일대를 쏘다니다 마음에 드는 논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문짝을 세워두고 ‘논문’이라 이름붙였다. 또 한번은 소와 함께 온통 파란 페인트칠을 하고서는 강진 일대를 쏘다니는 퍼포먼스를 하고, 광주로 휙 날아와서는 소 대신 수레를 끌며 거리를 청소했다. 작가는 파란소. 시골의 소를 대신해서 도심을 청소하는 그의 퍼포먼스 제목은 ‘청소’였다. 작가는 세상을 청소하고 싶었다.

 석수시장에 상을 끌고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끼니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1+상’ 퍼포먼스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지?”라고 짐짓 무겁게 묻다가 나뭇 ‘가지’를 가져다 놓았다. 작가는 나뭇 가지 속에서 방황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형상을 찾아냈다.

 자는 사과, ‘자=사과’는 한 편의 이야기다. 사과가 있다. 사과의 꼭지는 위장한 자벌레다. 사과는 자벌레가 자신을 좀먹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왜 이리 빨리 늙어갈까라는 의문을 품을 뿐. 자벌레의 존재를 눈치 챈 사과는 자벌레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자벌레는 사과를 꿀꺽 삼킨다. 사과를 삼킨 자벌레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사과도 자벌레도 죽었지만 그 자리에 사과나무의 새싹이 돋는다.

 그는 또 어느날 도마뱀이라는 단어를 곱씹다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도마를 먹은 뱀’이다. 도마뱀이 되고 싶은 뱀이 나오는 이야기다.

 “내가 하는 말장난들은 저한테는 일종의 치료제였어요. 미술이 개념적으로 어렵고 일반 사람들과 단절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일반인들도 쉽게 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보다가는 그 싱거움에 툭툭 웃음이 삐져나온다. 말장난 사전도 만들었다. 단어만 들어서는 해석이 어디로 튈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최근에는 단어 자체의 조형성을 가지고 논다. 단어를 배열해 다양한 형상들을 만들어낸다. 사람 얼굴 처럼 보이는 작품은 자세히 보면 ‘fusion’이라는 글자다. 규정돼 있는 단어를 깨고 싶었다는 작가.

 “혼란스럽잖아요.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이고…. 그런 답답한 부분들을 표현한 거죠. 온통 혼란(Fusion)스러운 상태지만 그 가운데서도 찾고 싶은 것은 재미(Fun)였어요.”

 작가의 의도는 적중했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허허 싱겁게 웃는다. 웃음 뒤에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잔해처럼 남는다.

 “개인적일 수도 있는 그러나 같이 공유해볼 수도 있는 그런 작업을 하는거죠. 겉포장 하기도 싫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가나 일반 사람이나 어차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인데 다 똑같지 않겠어요?”

 

 깁고 꿰메고 잇는 작가

 회색의 도시에 색깔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가 아닐까. 그는 자꾸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이를 잇는 것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으로 흘러가도 상관없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꾸 퍼졌으면 좋겠다”는 그다. ‘선인장 할머니’의 이야기는 동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쉼터를 만들고, 단절된 곳을 찾아 기웁고, 꿰메는 작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던 ‘예술’의 길이지만 후회는 없다.

 “힘들 때는 미술 자체가 짐이라고 느낄 때도 있죠. 그러나 지나고 보면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의 촉진제나 치료제였던 셈이죠. 그래서 이 길이 후회스럽지 않아요.”

 먼 훗날 작가는 조그만 그림책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곳을 아지트 삼아 평범한 이웃들의 삶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내고, 또 그것을 매개로 삼아 이곳과 저곳을 잇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고 보니 언뜻 그의 작업실에서 작가를 닮은 ‘고래’를 본 듯도 싶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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