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새봉은 무등산을 모산으로 군왕봉을 이어 삼각산에서 흘러나온 산줄기입니다. 이 줄기가 흘러 흘러 매곡산과 장구봉으로 이어집니다. 이들 산줄기는 광주광역시에서 북쪽을 향해 뻗으며 북구 지역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600년대 광산 노씨와 광산 이씨가 이곳에 함께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고, 이곳을 우리말로 큰 마을을 뜻하는 ‘한실’(현재는 일곡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시대 마을사람들은 마을 뒷산(현재 한새봉)을 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인식을 했고, 다시 남쪽으로 휘돌아 흘러내려가는 산을 그 소의 여물(현재 매곡산-여물봉)이라 생각했습니다.

 소를 의미했던 산, 한새봉은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산이 품은 물을 마을 곳곳에 뿜어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샘들을 ‘개시암’ ‘말시암’ ‘구시시암’ ‘조개시암’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한새봉은 사람들을 보듬어 품었고, 현재 1만780세대(2009년 통계)가 그 품에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산줄기

 사람들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생애주기를 가져가며 농(農)을 중심으로 확장해 왔던 일곡마을엔 1996년 택지개발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됩니다. 한새봉 밑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이며 흙과 물의 연결·순환고리는 희미해졌고 샘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한새봉(소)의 여물이었던 여물봉도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가 생기며 소의 이야기도 사라졌습니다.

 남은 곳은 한새봉 자락 뽀짝 붙어있는 산지습지입니다. 앞으로 한새봉의 되새김질로 뿜어나는 물이 유일하게 솟아날 수 있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습지에서 논농사가 이뤄졌습니다. 노현채(75세)어르신께서 최근(2008년)까지 힘들게 벼농사를 지어오셨습니다. 젊었을 때야 거뜬하게 할 수 있었던 800여 평 농사는 나이가 들어가며 힘에 부쳤습니다. 더욱이 함께 농사를 지었던 이들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땅을 놓아두고 떠나 일을 거둘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손모심기를 하고, 함께 논두렁 풀을 베고, 함께 피를 뽑고, 함께 메뚜기를 잡고, 함께 벼를 베던 것이 혼자 기계로 모를 심고, 혼자 약을 뿌려 논두렁 풀을 죽이고, 혼자 약을 뿌려 피를 죽이고, 혼자 약을 뿌려 메뚜기를 죽이고, 혼자 기계로 벼를 베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도 더 이상 벼농사를 짓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개구리가 새로 쓰는 이야기

 이를 알고 몇몇 동네 주민들이 함께할 사람들을 모아 2009년부터 할아버지를 도와 벼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생기니 기계도 농약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숨어있던 개구리, 도롱뇽, 잠자리, 소금쟁이, 우렁이, 물방개 등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올챙이를 잡아먹는 원앙도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나 어렸을 때 울 오빠가 개구리 잡아서 뒷다리 구워주고 그랬는데 맛있었어.”

 “메뚜기도 잡아서 맛있게 구워 먹었지.”

 “비오는 날엔 논에 들어가면 미꾸라지 천지였어. 맨발로 들어가면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데 느낌은 이상하지만 잡아다 추어탕도 끓여먹었지.”

 “그렇게 놀다가 샘에 씻으러 가면 꼭 애들 옷 홀라당 벗겨놓고 씻기는 동네 아짐들이 있었어.”

 함께 경작에 참여한 주민들이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야기들입니다. 다행이 개구리와 도롱뇽은 생겨났습니다. 주민들은 이들 양서·파충류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논습지의 이름을 ‘개구리논’이라 지었습니다. 한새봉 논습지에 사는 생물들 중 하나인 개구리를 대표로 내세워 이들의 생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한새봉 논두레’를 구성했습니다. 공동으로 벼농사를 짓고, 논생물 조사를 하고, ‘개구리교실’을 열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개구리논에서 다양한 생물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고, 마을 잔치를 통해 더 많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한새봉의 되새김질’의 의미를 알려가고 있습니다.

 

 개구리교실에서 ‘한새봉 되새길짐’

 개구리를 통해 써내려가고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한새봉 자락에 사람들이 왜 모여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면 한새봉 소는 되새김질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 땐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사람이 사람 이야기를 쓰게 되는 날. 일곡동에서 흙과 물의 연결·순환고리가 끊기는 날입니다. 개구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김영대 <광주전남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