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책임 축산농에 돌리는 정부, 잔인하다”
‘구제역·AI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 집행위원장

 ‘구제역·AI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범국민 비상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출범한 게 지난달 25일이다.

 국가 전염병 비상사태에 직면했지만, 현 이명박 정부는 이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범국민’이 나선 것.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가톨릭농민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생협전국연합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 불교환경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서울시민연대, 생명살림연구소,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여성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자유연대, 동물학대방지연합,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 초록당사람들 등이 ‘연석회의’ 참여 단체다.

 그런데 이달 초 설을 쇠고 나서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강도, 그리고 과학적 방역을 한다는 천안의 축산과학원마저 구제역 바이러스에 뚫린 것.

 무능력한 정부 대책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4대 종단 등 종교계가 함께 대응할 것을 제안해오면서 연석회의는 ‘구제역·AI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로 확대 개편했다.

 지난 16일 출범한 비대위는 구제역 확산 방지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 사과와 처벌, 침출수 유출 등 2차 오염 방지를 위한 긴급 대책을 촉구했다.

 “당장 시급하지 않은 4대강 사업을 중단, 그 예산을 구제역 대책에 써야 한다”는 게 비대위의 재원 마련 공식이다.

 이 같은 ‘범국민적’ 비대위를 이끌고 있는 실무 책임자가 정호(48) (비공식)집행위원장이다. 집행 기능을 담당할 조직이 없는 관계로 ‘비공식’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현재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데, 지난 주말 가족을 만나기 위해 광주에 온 그를 동구 운림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만났다. 구제역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질타하는 그의 목소리는 높았고, 격앙됐다.

 “혹시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는가”

 “(구제역 사태를)정부가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가 열린 건 안동 구제역 발병(지난해 11월28일) 이후 40일 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현장에 간 건 50일 만이구요.”

 성토는 이어진다. “지난 11월 안동발 구제역과 뒤이어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로 말미암아 소·돼지·닭·오리, 심지어 방역에 종사한 공무원 8명을 포함해 1000만이 넘는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잔인한 생매장·살처분 방식으로…. 축산농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을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있지 않습니까? 수의사, 공무원, 축협직원, 농민, 굴삭기 기사들은 울부짖는 산 동물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다만 한 사람 이명박 대통령만 ‘영웅’이라는 뮤지컬을 미소 가득 머금고 관람할 정도로 ‘이성적’입니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대통령과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구제역 사태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이제 주권자인 국민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입만 열면 축산농민 탓으로 돌리는 이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에서의 그의 역할이 바로 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짐은 왜 그에게 주어졌을까?

 민주노동당 환경위원장이라는 직함 때문일게다.

 지난해였다. 민주노동당 당적 취득 이틀 만인 9월 4일, 그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환경위원장으로 인준받았다.

 지난해 6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하고 수경 스님이 승적을 버리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그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환경운동에 몸바쳐온 터, 결론은 명확했다. “4대강 저지 전선에 온몸을 바치겠다.”

 보다 전투적인 활동을 모색하다 보니 민주노동당이 보였다. 지난해 8월, 그는 당시 양홍관 민주노동당 환경위원장에게 ‘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오병윤 사무총장이 그의 입당을 적극 환영했고, 이어 이정희 대표-장원섭 사무총장 체제로 바뀐 지도부에서 환경위원장 인준을 받았다.



 민주노동당 환경위원장 책임감

 “여기에도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지난해 9월) 2일 입당했어요. 그런데 4일 인준을 위해 중앙위원회가 열렸단 말이에요. 민주노동당 당헌·당규에 주요 당직자는 ‘장애인 평등 교육’과 ‘성 평등 교육’을 수료해야 가능하게 돼 있거든요. 입당 이틀밖에 안 된 제가 그 요건을 갖췄을 리 만무하죠. 결국 3개월 이내에 관련 교육을 수강하는 ‘조건부’ 인준을 받았습니다.”

 환경위원장 취임 후 4대강 사업 저지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구제역 사태가 터졌다.

 “구제역은 지난해 1월에도, 4월에도 발병했어요. 그때는 한 달 만에 종식됐거든요. 발병 원인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전 그렇게 추측합니다. 당시 잠복했던 바이러스가 계절적 요인으로 재발한 것이라고요.”

 그런데 정부는 무능했다. “구제역의 원인을 밝힌 것도 아니면서 베트남 다녀온 농민 탓으로 돌렸잖아요. 축산농민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발표하지 않았어요?”

 이어진 정부의 조치는 잔인했다. “정부가 각 지자체에 공문으로 지시한 게 있어요. 가축 살처분 농가를 조사해 피해자와 원인 제공자로 분리·보상하라는 거예요. 즉 피해농가는 시세대로 보상하고, 원인 제공농가는 감액해 시세의 60%까지만 지급하라고 한 겁니다. 때문에 예비비에서 살처분 보상금으로 책정된 1조 7000억 원이 피해 농가에 지급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상황입니다. 조사가 끝나지 않으면서 집행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거죠. 지자체에 따라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요.”

 그는 “이처럼 농민을 두 번 죽이는 정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올해 1월 25일, 연석회의는 이런 배경에서 꾸려졌다. 이어 구제역 ‘5적’이 선포됐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 총체적 국정 난맥상의 정점에 있다.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어서…”라며 축산농에게 화살을 돌린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그리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역시 심판 대상이다. “매뉴얼대로 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었다”는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도 ‘5적’에 포함됐다.

 구제역은 설 이후 더 확산됐다. “씨종자를 키우는, 천안의 축산과학원마저 뚫렸어요. 가장 고강도로, 그리고 가장 과학적으로 방역하는 곳마저 지키지 못한 겁니다.”

 축산과학원 바이러스 침투로 분명해진 게 있다. “구제역이 공기 감염으로 확산된다는 겁니다. 바이러스는 육풍에 실리면 50km 이상, 해풍에 실리면 250km 이상 이동하거든요. 도로를 차단하고 통행 차량을 소독한다고 해서 전염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정부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사이 전국에서 무수한 생명이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385만 두 묻은 대만 구제역 41조 피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처분된 소·돼지가 320만 두, 닭·오리가 600만 두 입니다. 게다가 방역 작업에 나섰던 공무원이 8명이나 죽었어요.”

 이토록 생명을 살해하고도 무사할까? “그냥 살아 있는 동물을 밀어 넣고 묻었다고 보면 됩니다. 백신도 안맞혔어요. 지금 땅 속은 바이러스 덩어리입니다.”

 대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997년 대만에서 구제역이 발생, 돼지 385만 두를 살처분했어요. 이때 들어간 비용이 41조 원 이었습니다. 침출수 등 2차 오염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진 거죠.”

 우리나라는 그때의 대만보다 훨씬 심각하다. “전국의 살처분 매몰지가 4400곳 입니다. 이젠 더 묻을 곳도 없어요. 한강·낙동강 등 4대강 수계에도 묻혀 있는 상황이니까요. 매몰지 중 절반은 언제, 얼마나 묻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관리카드조차 없습니다. 해빙기가 되면 침출수 유출 등에 따른 환경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이 대통령이 4대강 공사를 강행하는 자세로 임했으면 한 달이면 끝날 일에 안일하게 대응함으로써 대재앙을 부른 겁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그 예산과 장비를 구제역 현장과 전국 4400여 곳의 매몰지에 투입해 2차·3차 재앙을 막는 수밖에 없습니다.”

 글=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지난달 `구제역·AI 조기해결 범국민 연석회의’ 출범식에서 살처분 당한 생명을 위한  진혼굿이 펼쳐지고 있다.  <연석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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