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운치는 흔적이 없다



 극락전! 스님이 계신다는 법당 앞에 서자 일순 긴장이 된다. 풍경소리가 딸랑거린다.

 “스님 계세요.” 아무 기척이 없다. 혹시 안계시나? 종무소에 물었을 때 안 계시다는 얘기는 없었다. 분명 요사체 안에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뉘 신지요.” 짤막한 대답이다. 아! 계시는구나 반가웠다. “아 예 저~ 스님 뵈러 광주에서 왔는데요.”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지 딱딱 소리가 두 번 나더니 “들어오세요” 하신다. 도법 스님은 무심하게 쳐다보며 자리를 권하더니 차를 끓여 마셔보라고 하신다. 따순 차 한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일순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든다.

 어제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일찍 쳐들어 올 줄은 몰랐다며 넉넉하게 웃으신다. 걸친 옷은 여기저기 꿰매 남루했지만 고결한 내면이 보인다. 가히 소문으로만 듣던 고승이구나 직감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스님은 너무 혼자 다하려 욕심내지 말고 쉬엄쉬엄하라는 고언을 하신 뒤 당신의 행위가 무엄하지만 가겠노라고 하신다. “스님 저는 배웠습니다. 소동파는 해남도에 유배를 가서도 후학들을 가르쳐 오늘날까지 소동파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위대한 일을 했다고요. 그리고 이 땅에도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귀향와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을 저술하여 백성들은 물론이고 관료들까지 그의 가르침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요. 스님께서도 갈등과 반목으로 치우치는 우리 광주에 촉촉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님은 내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웃으시며 “제가 그럴만한 자격을 갖지 못했어요.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요 오히려 광주가 시골을 도와야지요. 시골은 이제 절망이에요. 사람이 없으니…” 하신다. “스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실은 광주가 역사의 전환점에서의 물줄기를 바로잡은 역할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하지만, 총론에는 강하고 각론에는 아주 취약합니다. 예컨대 도청 별관 문제만 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빈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이는 비단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이 주전자에 물이 비워지면 찻잔에는 채워지잖아요. 어느 한쪽을 비우면 한쪽이 채워지는 이치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자기 잔에만 채우려 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족쇄에 갇혀 살게 되지요.”

 덕지덕지 꿰맨 옷을 만지며 말씀하신 스님의 강론이다. `자유’란 말은 인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 삶에 관계된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곧 자유는 여러 면에서 인간의 삶과 희망에 대한 바람, 염원, 가치, 이상 등에 관계된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거론해 오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그리고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방법은 다른 데에서 말하는 자유와는 큰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의 자유 실현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고 하듯이 그때 그때 일어나는 욕구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가 일어나는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욕망을 충족시키면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될 따름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욕망의 실체를 잘 파악하여 적절하게 다스려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욕망을 포기하거나 정화시키거나 주체적으로 욕망을 조직하는데 있다. 그렇게 되면, 욕망으로 말미암아 불만이 생기거나 짜증이 일어나자 않는다.  민판기 <(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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