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으로 광주가 살아났으면”

 광주 야구장의 기본적인 윤곽이 확정됐다. 지난주 광주시가 ‘야구장 건립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용역’을 마무리한 데 따른 것이다.

 용역엔 개발 여건 분석, 타당성 검토, 기본구상, 토지이용계획, 교통·동선계획, 주차장시설계획, 시설배치계획, 기반시설계획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알려진 대로 야구장의 형태는 개방형, 부지는 현재 무등경기장이다. 규모는 2만5000석인데, 장기적으로 3만 석을 지향하기로 했다.

 “다음 달 턴키(설계·시공 일괄)방식으로 입찰공고를 낼 것”이라는 게 시의 계획. 광주 야구장은 이제 구상을 넘어 실체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돔 아니면 야구장 짓지 않겠다”던 때가 있었다. 2009년 11월무렵이다. 이 발언의 당사자는 당시 박광태 광주시장. “돔 야구장은 광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면서 “개방 야구장은 공사비 1000억 원, 운영비 70억 원을 지원해야 하는데 광주시의 열악한 재정을 고려할 때 민자유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수긍하지 못했고, 시가 기대했던 포스코건설의 민자유치마저 무산되면서 돔구장 건설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2010년 2월까지 벌어진 파동이다.

 이후 광주시와 박 전 시장은 ‘독단 행정’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독단 행정’ 오명 벗으려 ‘시민’ 의견 수용

 광주시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습책을 내놨다. 바로 ‘야구장 건립 시민추진위원회’다. ‘광주의 숙원인 야구장 건립을 위해 시민 의견을 다양하게 듣겠다’며 지난해 3월 출범시킨 자문기구다.

 시의회·시민단체·학계·체육계·문화예술계·전문가 단체의 추천을 받아 구성된 시민추진위원회엔 야구장 건립 형태와 부지 결정, 재원 확보 방안 마련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사안.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했던 위원회의 부담감이 오죽했을까.

 “워낙 민감하고, 관심도가 높았잖아요. 위원들 모두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죠.” 조용준 (조선대 공대) 교수는 짐을 더 졌다. 등 떠밀려 위원장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저 자신 워낙 야구를 좋아했던 터라 시민위원을 거부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위원장만은 피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렇게 출범한 시민위원회가 활동한 게 1년 여. ‘완벽하진 않지만 맡은 바 임무를 잘 마무리 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고 시민추진위원회는 올해 1월 야구장건립태스크포스팀(TF팀)으로 개편됐다. 기존 시민추진위원 12명에 김성한 전 감독 등 전문가, 언론인 등이 추가돼 총 30여 명으로 확대된 것이다.

 시민추진위원회가 야구장 형태와 부지 결정 등 윤곽을 잡는 역할이었다면, TF팀은 야구장 설계에 시민적 요구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원회에 결정 권한이 있는 건 아니에요. 시에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거죠. 다만 위원회는 시민 의견을 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다행스러운 건 광주시가 위원회, 즉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도출된 의견을 거의 다 수용했다는 것이죠.”

 시민추진위원회의 활동을 뒤돌아본 조 위원장은 이를 “자치행정의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시작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당선되고 취임 전인 지난해 6월, 야구장의 형태와 부지를 확정한듯한 발언이 나왔다. 송광운 북구청장 당선자가 “강 시장 당선자와 합의됐다”면서 개방형에, 무등경기장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 시민추진위원회가 활동 중이고, 결론은 위원회에서 도출돼야 함에도 단체장이 앞서 간 모양새로 비쳐졌다.

 “시민추진위원회 역시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 결론에 도달한 시점이었어요. 위원회의 결론 역시 송 청장의 발표와 다르지 않았거든요. 만약 의견이 맞지 않았다면 곤혹스러운 상황이 빚어졌겠죠.”

 

 “최근에 지어진 구장 중 돔은 없다”

 시민추진위원회 출범 초기, 위원들의 생각은 반반이었다. 야구장 형태를 두고 돔구장과 개방형에 대한 선호가 엇갈린 것.

 하지만 이웃 일본의 구장을 둘러보고 온 뒤 위원들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다. ‘개방형’이었다.

 “홋카이도의 돔구장과 히로시마의 개방형 구장을 비교해 시찰할 기회가 있었어요. 둘러보니 돔구장이 광주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이었다. “돔구장 건설비는 개방형의 세 배 정도 됩니다. 개방형이 1000억 원대라면, 돔구장은 3000억~4000억 원 정도 되니까요. 광주시 재정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지어진 다음도 문제다. “돔구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에요. 경기가 없을 땐 공연 등 다목적으로 활용돼야 하는데, 광주에 그 정도의 문화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지 의문스러웠구요. 무엇보다 돔구장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해, 시의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봤죠.”

 하늘을 보면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적 구장이라는 점에서도 개방형이 끌렸다. “히로시마 구장 관계자가 말하길 ‘최근 지어진 세계의 구장 중에 돔은 없다’고 하더라구요. 광주시가 새겨들을만한 조언이었다고 봅니다.”

 야구장 부지를 두고서도 위원들의 생각은 갈렸다.

 현재의 무등경기장을 최적으로 치는 분위기가 우세했지만, 교통 문제가 주목받으면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비등했다.

 하지만 역사성이나 도시재생 차원에서 접근하니 무등경기장이 맞춤하게 부상했다.

 “무등경기장은 해태·KIA를 거치며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타이거즈 신화’의 산실이라는 의미가 있죠. 상대적으로 낙후된 임동 지역 재생 차원에서도 야구장 신축은 호재가 될 게 분명했구요.”

 위원회의 판단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시민공청회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이 거의 대동소이했어요.” “개방형과 무등경기장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다만 대중 교통 체계가 취약한 무등경기장 주변의 교통 문제와 주차난 해소는 과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 2호선 노선의 재조정과 경기장 주변 지역에 주차장을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자전거 이용 활성화 등 자동차 이용 억제에 초점을 맞춘 친환경적인 대안 마련에 대한 위원회의 고민도 깊었다.

 

 “야구를 보러, 또는 야구장을 보러”

 시민들은 아이디어 공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광주시·공무원들도 틀에 갇히지 않는 창조적 아이디어로 야구장의 청사진을 그려갔다.

 “무등경기장 성화대를 철거하지 않고 주변 건물을 활용해 역사관을 만들겠다는 시의 아이디어는 굉장히 좋다고 봅니다. 대전시나 대구시 등 야구장 신축을 고민 중인 다른 도시가 광주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사가 돼 있다는 건데, 조 위원장은 광주의 새 야구장에 대해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광주 야구장이 다른 도시에선 찾아볼 수 없는 창조적인 모델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과 광주, 전남·북을 아우르는 호남의 커뮤니티 시설로 건설돼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는 도시투어리즘 시대거든요. 때문에 야구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닌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광주는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꼭 찾고 싶은 도시가 될 겁니다. 야구를 보러 오기도 하고, 때로는 야구장을 구경하러 오는 도시가 되는 것이죠.”

글=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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