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이 능히 풀어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다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도연명의 칠언절구 첫 구절에 있는 시구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운조루(雲鳥樓)는 1776년 영조 52년에 류이주가 지은 건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금환락지(金環落地)의 지세에 자리하고 있는 운조루는 뒤로는 지리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호방하게 너른 들판이 가슴을 툭 트이게 한다. 게다가 섬진강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 빼어난 풍광이다. 풍수지리가가 아닌, 행려자의 눈에도 한눈에 범상한 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풍광 보다 이집 주인인 류이주 씨의 타인을 배려하는 덕행을 실천한 나눔의 정신이 더 마음을 숙연케 한다.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목독에 쌀을 채워놓아 가난한 사람들이 목독의 밑 부분에 있는 마개를 돌려 쌀을 가져갈 수 있게 배려했다. 각종 민란 즉 동학, 여순 사건, 한국전쟁 등 힘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실되지 않고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주인의 타인능해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라도에 타인능해의 정신이 있다면 경복 안동 낙동강물길이 돌아나가는 하회마을에는 담연제가 있다. 이 집은 탤런트 류시원 선대의 집인데 운조루의 류이주와 같은 집안인 문화 류 씨다. 집밖에 담연제라는 석통에 노잣돈을 넣어두어 가난한 자들이 노잣돈으로 쓰게 했다. 운조루와 담연제는 서민들을 위한 나눔의 정신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운조루 뒤뜰에는 아주 작은 풀꽃들이 피어있다. 이 작은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있는 것이 마치 이 집에서 은덕을 입은 영혼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함께 모여 있는 것 같다. 가진 자들이 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본을 보인 운조루는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엌에는 연기에 절은 그을음이 진득한 냄새를 선물한다. 그 진득한 그을음엔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류이주의 배려를 한번 보자. 가난한 자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눈에 띄지 않은 장소에 목독을 채워 뒀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가게 하려는 배려. 이것이 진짜 나눔의 정신이다. 조건을 달아 생색내는 기부는 진정한 나눔이 아니다.

 얼마 전 한 기업이 통 큰 통닭을 싸게 판다고 기업 마케팅으로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러나 힘없는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상술이었다. 이들의 상술에 두 세 시간을 줄서 기다리다 사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인격적으로 배려해가며 진정으로 나눔을 실천한 류이주 집안은 못 될 망정 아직도 적잖은 부자들은 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러나 우리들도 부자가 못됐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이런 상술에 휘둘리지 않도록 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리면 결국은 우리들을 얕잡아 보고 자꾸만 이용하려 들 것이다. 정당한 가격으로 사 먹고 또 돈이 없으면 조금 덜 먹으면 된다. 고기 값이 비싸면 스스로 덜 먹으면 그런 장난을 치지 못할 것이다.

 일등만을 기억하고 환호하는 질곡의 시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깔보며 사람취급하지 않는 시대. 이 어둠의 시대에 진정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류이주 같은 부자들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민판기 <(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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