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가 변화하듯이…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때에 알맞은 봄비는 목 타는 대지를 적신다. 이런 봄비가 내리면 가인 박인수가 부른 `봄비’가 생각난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다.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그 눈 위에는 나 홀로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랬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나 내리려나. 마음 마져 울려주네 봄비!’

 그는 청바지에 평화를 상징하는 피스가 새겨진 나무목걸이를 걸고 봄비를 열창했다. 봄비를 보면, 청승을 떨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비를 맞는다. 내리는 빗속을 하염없이 걸었다. 눈으로 빗물이 줄줄 흘러들었다. 옷은 금세 젖어들었다. 비에 젖어 축 늘어진 바지 자락이 다리에 감겨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 울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이 세상은 비와 나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다 가버리고 텅 빈 사방은 온통 빗소리 뿐이었다.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이렇게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구나. 외로운 사람들이 같이 만나 함께 외로워했으면 했는데… 차가운 아픔들이 더 차갑게 돌아오는구나. 그래도 그들도 많이 힘들고 외로웠으리라. 그래서 많이 울면서 떠나갔으리라. 그래도 이렇게 나 혼자 남겨져 외로울 때면 나뭇가지 하나라도 곁에 있었으면 많은 의지가 되었을 텐데… 밤이면 밤마다 찾아가서 심장을 덥혀 줄 사람 하나 없다. 이렇게 세월은 아픈 사랑을 꿈꾸던 나를 다시 혼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혼자가 되어 봄비를 맞으며 걷고 있다. 그래도 걸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땀이 뜨거운 마음에서 빠져 나와 몸 밖으로 흐른다.

 흠씬 비를 맞고 걷다보니 모든 게 부질없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버렸다. 세상은 언제나 한번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는지 원망해왔던 미움을 버렸다. 내가 준만큼 반드시 되받으려고만 했던 욕심을 버렸다. 선한 사람이 핍박받고, 악한 사람들은 호의호식하는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가난을 원망했다. 열심히 살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가난을 원망했다. 나도 이재용처럼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했음을 원망했다. 비웠다.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니까 다툼이 생겼다. 깨끗하게 비워 버리니까 마음이 오히려 풍성해졌다. 그러다가 다시 끼어드는 욕심을 비워냈다. 비워도, 비워도 다시 생기는 욕심을 비웠다. 가지려고 하면 마음이 아프다. 버리고 비우면 원망도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온다. 그래도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때가 묻어버린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열매는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데 사람은 늙어 갈수록 추해진다”고.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봄비와 함께 4월이 간다. 엊그제 봄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벌써 4월이 가고 있다. 4월과 봄비는 이렇게 어느 이름 없는 시인의 마음만 아프게 해놓고 무심히 가고만 있다. 언제 다시 돌아 오마는 기약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한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올 줄 모르지만 위대한 자연은 한번도 때를 어기자 않고 찾아오고 때에 맞춰 비를 내려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변화시킨다. 이 위대한 자연 속에 사는 인간들만이 순리를 따르지 않고, 어리석게 미워하고 다투고 시기하고 싸움박질 한다. 이제 다시는 봄비에 울지 않으리라 사랑에 울지 않으리라. 이별에 울지 않으리라. 이렇게 다짐해보지만 나~ 나나나 나~나나 라라~ 라라라 라. 사직골 통기타가 다시 나를 울린다.   민판기<(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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