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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이만난사람] ‘드만사’ 178명… 그들의 말·말·말
엄청나진 않아도 보람 있는 `자리’를 지키다
채정희 good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1-06-01

 <광주드림이 매주 한 사람씩을 만납니다. 광주를 비춰주는 등불 같은 사람, 광주가 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길라잡이’같은 이들이 우리가 만날 사람들입니다. 그를 만나 그가 살아온 길, 그가 현재 서 있는 길, 그리고 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렵니다. 꼭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만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했다. 2007년 10월10일 첫선을 보인 `드림이 만난 사람’(드만사)이다.

 그렇게 3년8개월을 이어온 `드만사’가 178명이다. 매 순간순간 `광주’를 지키고, 고민했던 이들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2007년 10월부터 3년7개월 장정

 2007년 10월, 첫 `드만사’는 김용목(실로암선교회 회장·목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였다.

 “인화학교 문제를 보자. 이 문제는 시민의 입장에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 하나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없어서 2년이 넘도록 여기까지 오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다. 광주가 가지고 있는 시민 사회의 역량이 딱 여기까지고, 사회적 역량이 여기까지인 것이 아닌가 안타깝다.”

 이어 두 번째 `드만사’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이렇게 일갈했다. 당시 이 교수는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우리 지자체에는 한 가지 큰 병이 있습니다. 중앙정부만 바라보는 병인데 나무랄 수는 없지요, 중앙집권국가니까. 그런데 과외공부를 하는 학생이 실력을 선생에게만 의존해서 되겠습니까. 스스로 노력해야지요. 지방화 여지가 작기는 하지만 그것을 살려서 지역을 가꾸고 자기 색깔을 덧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시장 자리가 욕심나서, 군수 자리가 욕심나서 한 사람은 이제는 사라져야 할 시대이고요.”

 손석춘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장은 대선을 앞둔 2007년의 시대상을 분석했다. 당시 후보인 이명박과 문국현을 비교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같은 CEO출신이지만 기업의 성격, 경영방식이 다르다. 이 후보는 건설 쪽에서 일해왔고, 문 후보는 제조업이지만 사실상 소비재를 다루는 서비스업이었다. 소비재를 다뤘기 때문에 변화하는 사람들 흐름에 문 후보는 민감했고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이 후보의 경영방식이 불도저식이라면 문 후보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시간을 나누는 걸로 위기를 해결한 점이 돋보인다. 큰 차이다.”

 무등산풍경소리 음악회를 이끌어온 미래에서 온 교회 최명진 목사를 만난 건 그해 11월이었고, “엄청난 일이 아니라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국립소록도병원장 박형철 씨도 같은 달에 만났다.

 

 “야구로 행복했다는 선수 키우고 싶어”

 “2006년 8월 인화학교 문제로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했고 광산구청 앞에서 242일 동안 천막농성을 했고 시교육청 안에서 42일 동안 천막 수업을 했다. 성폭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년이 넘어가는 동안 참 많은 것들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교 법인은 정상화에 관심이 없고 학생들은 여전히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해 11월, 또 한 명의 `드만사’ 윤민자 인화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놀이패 신명의 박강의 대표, 아이숲어린이도서관 정봉남 관장, 15년째 구세군 나병선 씨도 그해 만났다. 2007년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화순중학교. 김부관 감독은 “야구해서 행복했다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08년 1월 `드만사’ 첫 주인공은 김광훈 광주환경운동연합 사업국장이었다. 2007년 말 서해안 태안에서 유조선이 자초됐고, 여기서 흘러나온 기름띠 제거가 국가적 과제가 된 마당이다. 김 국장은 그해 서해안에서 기름 제거작업에 열중했는데, “태안지역 바다는 관광자원의 의미가 크다면, 신안·영광 등 전남지역의 바다는 어업 자원이다”면서 전남지역 연안으로의 확산 방지에 온 힘을 기울였다.

 전남도 개방형 직위인 복지여성국장직을 마친 박혜자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공직자들이 가만히 있어도 승진한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도의 경우 실·국장에게 자기 국에 데려올 사람과 방출할 사람을 뽑도록 하고 있어요. 대신 실·국장은 최고권자가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결국 공무원들도 자기 상품을 가지지 않으면 힘들어지고 있어요.”

 갯벌 전문가 전승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강은 흘러야 한다”면서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남들은 제가 독선이 심하고 고집에 세다고 해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 험한 시절에 그마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오월자료는 어차피 내 손에서 시작했으니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리한 만큼 나중엔 모두 공유하도록 할 거예요.” 그해 7월, 5·18유족회장에서 물러나는 정수만 회장이 `드만사’에 내뱉은 고백이다.

 

 “1m 높이에서 보는 세상이 살만하다면…”

 “우리나라는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수십 년 동안 주입시켜온 사회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그 어떤 제도교육 과정에서도 노동자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성장한 이 땅의 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 노무관리자가 되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한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탄압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조차 없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의 토로다.

 `드만사’는 “아마도 광주시장이 가장 싫어할 사람”이라는 전욱 공공서비스노조 광주전남지부장도 만났는데, 그는 시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투쟁을 이끌었다.

 2008년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만난 조범현 KIA 타이거즈 감독의 `명가 재건’ 약속이 아직도 쟁쟁하다.

 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광주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지역적 유전자의 문제다. 광주적인 것을 잘 가꿔서 부피를 늘려가야 한다”고 했다.

 `강을 모시는 사람들’ 이필완 단장은 한반도 대운하를 우리안의 괴물이라고 질타했고, 2008년 4월 5·18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윤광장 씨는 “오월정신 계승은 자라나는 세대에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m 높이(휠체어에 앉은 높이)에서 보는 세상이 살만하다면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다”는 건 한마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효 소장의 심정. 2008년 5월 방송 1000회를 맞아 만난 `말바우 아짐’ 지정남 씨는 “세상은 고도로 발달하지만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건 더 험해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해 5월 `드만사’는 우리나라와 너무도 닮은 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버마 민족민주동맹 조모아씨를 만났다.

 생전의 리영희 선생도 그해 6월 만났는데, 현 정권에 대해 “구걸하다시피 협상을 하니까 촛불을 들지”라고 일갈했다. 이어 만난 이는 진중권 당시 중앙대 겸임교수. 그가 분석한 이명박 리더십은 이랬다. “대통령이 보기에 일을 잘하는 것은 일찍 일어나 빨리 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괜히 4시간 잔다고 자랑을 한다. 산업화 초기에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됐다. 생각을 안하고 몸만 굴리는 거다. 시민들은 정보화 시대에 있는 데 대통령 혼자 70년대에 있다. 그러니까 산성이나 쌓고 있는 것이다.”

 수익금 전액을 이웃 돕기에 쓰겠다고 개업한 식당 `예촌’으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 한운용과 현해성은 그해 7월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광주전남미디어공공성연대 신성진 공동대표는 “정론 역할 못하고 군림하는 언론을 감시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이어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서영옥 광우병대책위 사무국장,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원, 강위원 여민동락 공동체 대표, 수상한 교육공동체 `결’ 박형주 씨, 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 씨가 줄줄이 `드만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눈 떠라, 교육은 음모다”

 빛고을국악전수관 장용수 학예연구사는 “국악박물관·공연장이 사람들로 넘쳐 나기를”을 소망했고,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한 뒤 광주를 찾은 주경복 건국대 교수는 “눈떠라, 교육은 음모다”를 선언했다.

 그 해 연말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최협 위원장, 전북대 신방과 교수 강준만 씨, 귀화한 한국인 바수무쿨 씨, 전통차 `돈차 청태전’을 펴낸 허북구 박사,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 7년 만에 음반을 낸 가수 김원중 씨를 만났다.

 2009년 1월 첫 `드만사’는 김인봉 광주생협 대표. “애벌레가 행복하면 농약을 안 쳤다는 거잖아요. 그걸 인간이 먹으면 얼마나 더 행복해지겠어요? 그래서 매장 이름이 `행복한 애벌레’죠. 우리가 함께 하면 절망은 없습니다. 행복한 애벌레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역사? 즐겁게 그리고 쉽게’는 5·18인정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장용준 교사의 슬로건.

 “가장 소외된 이들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새날학교 이천영 교장의 소망이었고, “이땅의 아버지께 드리는 반성문”은 영화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의 고백이었다. 광주MBC 김휘 PD는 “언론 관련법 개정은 공공의 영역 파괴”라고 지적했고, 광주 출신 배우 박철민은 `전국 노래자랑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의미는 이렇다. “즉흥적이고 현장이 살아 있고, 역동성이 넘쳐나는 무대가 전국노래자랑이잖아요. 우리 옆집 누나, 형, 동생 등 민초들의 웃음과 눈물을 만날 수 있는 방송이구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눈물 쏙 빼놓고 싶고, 배꼽 빠지게 웃겨 드리고 싶고. 박철민표 연기가 향기가 날 때까지 달려가겠습니다.”

 새터민 김춘화·주미영 부부가 정통 북한식 `백두산 식당’을 열었는데,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하지 못한 부부는 `드만사’에서 “아이고! 체질에 안 맞아서 못해먹겠습니다”를 연발했다.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는 “징한 세월 살았는데, 이젠 위안부 누명이라도 벗고 싶다”고 통탄했다. `양림동 만들기’를 이끌어온 송인동 호신대 교수는 “마을 이야기를 알면 마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고 했고, 학벌 없는 사회 광주모임’ 박고형준 씨는 “학벌은 모두가 싸워야 할 적”, 정해만 조선대 비대위원장은 “정이사 선임은 조선대의 완성”, 전남대 조경학과 조동범 교수는 “조경은 화장술이 아니다”,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광주전남본부 류한호 상임대표는 “지방선거 선택권 주민에게 돌려 주라”, 노무사 이병훈 씨는 “사용자만 위하는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하라”고 말했다.

 

 “약속 지키는 사회 위해 끝장 투쟁”

 줌마네 대표·영화감독 이숙경 씨도 만났다. 2009년 5월 만난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 유제휘·이주석 씨는 “약속 지키는 사회를 위해 끝장보기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교조 광주지부 윤영조 지부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도종환 시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비판글을 올렸다가 파면된 나주세무서 직원 김동일 씨도 `드만사’가 만난 인물이다.

 박선홍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이사장도 있다. “광주사람들은 명분이 있으면 바로 호응합니다. 대신 불의를 보면 못참아요. 이게 의향·예향의 기질입니다.”

 그해 `드만사’는 서정훈 광주NGO센터장, 광주MBC노조위원장 윤행석 씨,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은병수 총감독, 기아 타이거즈 김상현 선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광주전남민변지부장 이상갑 씨, 함평 잠월미술관 정선희 학예사, 문규현 신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봉태 변호사, 류재팔 사회연대은행 광주사무소장, 임권택 영화감독, 김주업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지역본부장, 손석희 교수, 이범 교육평론가 등으로 이어졌다.

 2010년 1월 첫 `드만사’는 광주 남광주시장에서 튀김집 하는 하복님 씨. “가진 사람들은 전부 좋은 곳으로 가고 시장에 오는 사람들 형편 뻔하지. 적게 벌어도 내 것을 많이 내주면 기분은 좋아. 가격이 싸니까 일부러 튀김만 사려고 시장에 오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맛에 사는 거지.”

 “노동자 뺨 때리는 현실과 타협않겠다”는 건 백정남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의 각오. “월급 200만 원 받는 사회적 기업, 꿈이 아니다”는 박만영 <사>해피웨이 사무국장의 희망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김순흥 씨는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살아 있는 자들의 소명”이라고 했고, 그해 타계한 법정 스님을 추억한 현장 스님은 “법정은 돌을 던졌다, 파문은 당신의 몫”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한국에서 고아 봉사에 앞장서고 있는 마이클 심닝 씨는 “요리로 자립의 길 열어주고 싶다”고 했고, 마지막 `간판장이’ 박태규 화가는 “걸개그림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했다. 장복동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남대분회장은 “대학 강사는 지식 시장의 노예”라고 한탄했고, 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력에 광주 서구의원에 당선된 이병완 씨는 “단체장을 괴롭게 하는 게 의원의 존재 이유”라고 했고,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당선자는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면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근로정신대 해결 시민모임 대표 김희용 목사는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은 평화로운 사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오월은 통합된다. 문제는 조급함이다”

 그해 취임한 강운태 광주시장은 선배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색안경을 벗고 보청기를 들고 가라는 거예요. 선입견을 버리고, 되도록 많이 들으라는 것이죠.”

 장우철 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수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밖으로 나오지도, 세상에 드러내지도 못한 채…. 숨어 사는 이 많은 장애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바로 집단장애시설과 가정의 폐쇄된 방 한 구석이다. 이들은 이 공간 안에서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아니할 줄도 모른 채, 해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냥 살아만 간다.”

 4년째 `광장음악회’ 여는 정찬경 단장,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손숙 씨, 피아니스트 윤효간 씨, 광주 인권영화제조직위원회 최완욱 집행위원장, 김재학 신부, 송순섭 명창, 광주여성의 전화 채숙희 대표, 박노해 시인, 광주FC 최만희 감독, 광주시립국극단장 윤진철 씨 등도 `드만사’에 초대됐다.

 올해 1월에 만난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은 단호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솔직히 도청 별관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늘 사표를 품고 다녔다. 별관 논란으로 문화전당 개관이 4년이나 미뤄졌다. 단언컨대 역사 공간을 지키는 것에 나도 마음으로 찬성한다. 처음 설계안이 나왔을 때 별관을 지키자는 주장이 나왔다면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논의할 수 있을 땐 침묵하다가 모든 게 결정되고 공사가 시작된 마당에 갑자기 판을 엎으면 어떻게 되나? 민주도시인 광주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2011년 만난 김준태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80년 오월을 한 뿌리로 두고 있지만 오월단체들은 모두 태생이 달라. 하나의 사건으로 5000명을 회원으로 둔 곳은 오월단체밖에 없어. 따지고 보면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각자 별도로 태동한 거야. 그것을 하나로 합치려는 것인데, 단체의 입장도 다르고 소속된 개인의 생각도 다 달라. 넓게 봐야 해. 오월정신이라는 큰 틀에서 먼저 하나 되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합은 될 거야. 문제는 조급함이지.”

 이어 `드만사’는 도법 스님, 국강현 광주전투비행장이전대책위 공동대표, 조용준 야구장건립 시민추진위원장, 포크가수 이장순 씨, 림추섭 5·18민중항쟁 31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 헌혈 600회 손홍식 씨, 다큐멘터리 `오월애’ 감독 김태일 씨, 그리고 다큐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 신은정 감독 까지 만났다.

 모두 178명이다. 그들 속에 `광주’가 있었고, 그들 덕에 `광주드림’이 빛났다. “참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지면으로 대신한다.

 정리=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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