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18.10.22 (월)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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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갈피갈피]홍어와 전라도...   [2018.10.10]
1950년대 말엽 광주에는 ‘기생집’이란 게 있었다. 그 무렵 광주시장은 지금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북구 신룡동 출신이었다. 이 양반은 꽤 기개가 있었다는데 시장이 된 과정부터가 그랬다. 1958년 치른 시장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 후보이...
[광주갈피갈피]쌀 한 톨의 무게...   [2018.09.12]
언젠가 교육방송(EBS)에서 제작한 영상의 제목이었던가? 어느 시인이 지은 시의 제목이었던가? 그런데 과연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잡다한 것들’의 무게를 소개하는 블루벌브 프로젝트(Bluebulb Project)라는 웹사이트에는 쌀 한 톨...
[광주갈피갈피]강진 유배 정약용 ‘탐진어가’ 속 ‘궁선’...   [2018.07.25]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에 지은 탐진어가(耽津漁歌)라는 시가 있다. 시는 처음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계랑춘수족만려/탱취궁선양벽의.’ 이 구절을 한국고전번역원은 ‘계량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 / 그를 잡으로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간다’고...
[광주갈피갈피]일제강점기의 열차 통학...   [2018.06.27]
광주가 교육도시의 면모를 갖춘 것은 1920년대부터다. 특히 이는 중등학교가 많이 설립된 영향인데 1920년대 광주에 생긴 중등학교만 광주고보(광주고등보통학교의 줄임말로 현 광주일고의 전신), 광주중(광주중학교, 광주고의 전신), 광주고녀(광주고등여학...
[광주갈피갈피]사진 한 장에 담겨있는 사실들...   [2018.06.14]
오늘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이 사진은 1940년에 촬영된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근무하는 박물관이 입수한 것이다. 큼직한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중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열차 승무원들이 뒤섞여 보인다. 그저...
[광주갈피갈피]부호 지응현이 설립한 응세농도학원...   [2018.05.09]
신자가 아니라면 쌍촌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광주교대구청은 2006년 임동성당에서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필자는 수 년 전에 일 때문에 출장삼아 교구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교구청 건물이나 주변 정원을 둘러볼 ...
[광주갈피갈피]농성동이란 지명의 유래...   [2018.04.18]
잊을 만하면 서구 농성동의 이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묻는다. 작년에 한 번 그랬고, 최근에도 주위의 한 분이 필자에게 물었다. 사실 필자도 아는 게 없어 오래전부터 궁금하던 차였다. 궁금증은 하필 ‘농성인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궁금증...
[광주갈피갈피]천정시장에서 양동시장으로...   [2018.04.04]
면적 8만㎡, 입주한 상점 1000여 개. 양동시장의 규모다. 물론 이것은 넓은 의미의 양동시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양동시장주식회사가 관할하는 좁은 의미의 양동시장도 면적 1만㎡에 입주상점 300여 개의 적지 않은 규모다. 양동시장은 초기 이름...
[광주갈피갈피]광주천 큰 장·작은 장 합한 사정시장...   [2018.03.21]
광주천변의 큰 장과 작은 장터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1921년부터 나왔다. 이 시기는 3·1운동 직후다. 일제에겐 장터가 만세시위의 진원지였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였고 그와 관련해 광주에 연대 규모의 일본군을 상주시키려 했던 움직...
[광주갈피갈피]광주천변의 장터...   [2018.03.07]
광주의 장이 처음 있던 북문 앞을 떠나 광주천으로 옮겨온 때는 임진왜란 전후로 한 시기였다. 그러나 새로 옮긴 장소가 구체적으로 광주천의 어디쯤이었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적어도 18세기에 광주천변에서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나뉘어 열렸는데 ...
[광주갈피갈피]천 개의 얼굴을 가진 장...   [2018.02.21]
걸어서 10분 내 거리, 필자가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는 공간에는 4군데의 대형마트가 있다. 처음 필자가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올 때만해도 동네엔 대형마트란 게 없었다. 고만고만한 작은‘슈퍼’가 전부였다. 무슨 택지라고 하여 이사는 왔건만 사실 아파트...
[광주갈피갈피]시장을 뜻하는 한자 市를 생각하며...   [2018.01.24]
시장이나 저자를 뜻하는 한자 시(市)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뭔가 깃발을 세워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굳이 깃발이 아니더라도 큰 나무나 그에 버금가는 상징물이 있어 사람들이 그 아래에 모였을 것이고 여기서 착안해 만든 한자가 市일 것이라고 ...
[광주갈피갈피]국도13호선에서 만나는 구릉지의 사연... [1]   [2018.01.12]
광주의 장을 얘기하면 으레 규모가 큰 장을 말하기 쉽다. 지금의 양동시장의 전신이 된 광주 큰 장이나 송정역이 생기면서 등장한 송정장 같은 곳이다. 혹은 이들 장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비아장 같은 곳을 거론하곤 한다....
[광주갈피갈피]농민들 장터에서 사채 끌어다 쓰다...   [2017.12.20]
오늘날 광산구 ‘첨단지구’로 부르는 택지지구의 상당부분은 과거에 ‘비아면’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이곳엔 오래전부터 ‘비아장(飛雅場)’으로 알려진 오일장이 열렸다. 비아장은 종종 ‘아산장(雅山場)’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름이야 어떻건 이 장은 지금도 1일과...
[광주갈피갈피]광주의 큰 장과 작은 장...   [2017.12.06]
광주장은 여러 차례 자리를 바꿔 열렸다. 본래 광주읍성의 북문 바깥인 지금의 충장로4가 일대에서 열렸고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시기에 광주천 쪽으로 이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적어도 18세기 후반엔 이미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분화됐던 것 같은데 ...
[광주갈피갈피]철도 개통이 송정장에 끼친 영향...   [2017.11.22]
20세기가 막 시작될 즈음 광산구 송정리 사람들은 2km 남짓 떨어진 황룡강변의 선암장에서 장을 보곤 했다. 선암장은 꽤 역사가 깊은 장이었다. 적어도 18세기 기록에 나올 정도다. 흥미로운 건 처음 선암장은 장이 열릴 때마다 장터가 달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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