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18.06.19 (화)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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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갈피갈피]사진 한 장에 담겨있는 사실들...   [2018.06.14]
오늘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이 사진은 1940년에 촬영된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근무하는 박물관이 입수한 것이다. 큼직한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중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열차 승무원들이 뒤섞여 보인다. 그저...
[광주갈피갈피]부호 지응현이 설립한 응세농도학원...   [2018.05.09]
신자가 아니라면 쌍촌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광주교대구청은 2006년 임동성당에서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필자는 수 년 전에 일 때문에 출장삼아 교구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교구청 건물이나 주변 정원을 둘러볼 ...
[광주갈피갈피]농성동이란 지명의 유래...   [2018.04.18]
잊을 만하면 서구 농성동의 이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묻는다. 작년에 한 번 그랬고, 최근에도 주위의 한 분이 필자에게 물었다. 사실 필자도 아는 게 없어 오래전부터 궁금하던 차였다. 궁금증은 하필 ‘농성인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궁금증...
[광주갈피갈피]천정시장에서 양동시장으로...   [2018.04.04]
면적 8만㎡, 입주한 상점 1000여 개. 양동시장의 규모다. 물론 이것은 넓은 의미의 양동시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양동시장주식회사가 관할하는 좁은 의미의 양동시장도 면적 1만㎡에 입주상점 300여 개의 적지 않은 규모다. 양동시장은 초기 이름...
[광주갈피갈피]광주천 큰 장·작은 장 합한 사정시장...   [2018.03.21]
광주천변의 큰 장과 작은 장터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1921년부터 나왔다. 이 시기는 3·1운동 직후다. 일제에겐 장터가 만세시위의 진원지였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였고 그와 관련해 광주에 연대 규모의 일본군을 상주시키려 했던 움직...
[광주갈피갈피]광주천변의 장터...   [2018.03.07]
광주의 장이 처음 있던 북문 앞을 떠나 광주천으로 옮겨온 때는 임진왜란 전후로 한 시기였다. 그러나 새로 옮긴 장소가 구체적으로 광주천의 어디쯤이었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적어도 18세기에 광주천변에서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나뉘어 열렸는데 ...
[광주갈피갈피]천 개의 얼굴을 가진 장...   [2018.02.21]
걸어서 10분 내 거리, 필자가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는 공간에는 4군데의 대형마트가 있다. 처음 필자가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올 때만해도 동네엔 대형마트란 게 없었다. 고만고만한 작은‘슈퍼’가 전부였다. 무슨 택지라고 하여 이사는 왔건만 사실 아파트...
[광주갈피갈피]시장을 뜻하는 한자 市를 생각하며...   [2018.01.24]
시장이나 저자를 뜻하는 한자 시(市)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뭔가 깃발을 세워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굳이 깃발이 아니더라도 큰 나무나 그에 버금가는 상징물이 있어 사람들이 그 아래에 모였을 것이고 여기서 착안해 만든 한자가 市일 것이라고 ...
[광주갈피갈피]국도13호선에서 만나는 구릉지의 사연... [1]   [2018.01.12]
광주의 장을 얘기하면 으레 규모가 큰 장을 말하기 쉽다. 지금의 양동시장의 전신이 된 광주 큰 장이나 송정역이 생기면서 등장한 송정장 같은 곳이다. 혹은 이들 장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지금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비아장 같은 곳을 거론하곤 한다....
[광주갈피갈피]농민들 장터에서 사채 끌어다 쓰다...   [2017.12.20]
오늘날 광산구 ‘첨단지구’로 부르는 택지지구의 상당부분은 과거에 ‘비아면’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이곳엔 오래전부터 ‘비아장(飛雅場)’으로 알려진 오일장이 열렸다. 비아장은 종종 ‘아산장(雅山場)’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름이야 어떻건 이 장은 지금도 1일과...
[광주갈피갈피]광주의 큰 장과 작은 장...   [2017.12.06]
광주장은 여러 차례 자리를 바꿔 열렸다. 본래 광주읍성의 북문 바깥인 지금의 충장로4가 일대에서 열렸고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시기에 광주천 쪽으로 이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적어도 18세기 후반엔 이미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분화됐던 것 같은데 ...
[광주갈피갈피]철도 개통이 송정장에 끼친 영향...   [2017.11.22]
20세기가 막 시작될 즈음 광산구 송정리 사람들은 2km 남짓 떨어진 황룡강변의 선암장에서 장을 보곤 했다. 선암장은 꽤 역사가 깊은 장이었다. 적어도 18세기 기록에 나올 정도다. 흥미로운 건 처음 선암장은 장이 열릴 때마다 장터가 달랐다는 사실이다...
[광주갈피갈피]영산포 운집한 소금 전남 각지로 퍼져나가...   [2017.11.08]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소금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식료다. 아직 장이 태동하기 훨씬 전인 삼국시대에도 을불(乙弗)이라는 청년은 이곳저곳을 돌며 소금 장사를 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으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구려 미천왕이다. 그...
[광주갈피갈피]장은 5일마다 열렸을까?...   [2017.10.25]
오늘날 장은 ‘오일장’으로 불린다. 장이 열리는 주기가 5일, 곧 닷새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전국 1000여 군데의 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5일과 10일처럼 닷새마다 서는 장이 각각 20...
[광주갈피갈피]장의 확산과 광주장 ...   [2017.10.11]
‘조선왕조실록’ 성종4년(1473) 기록에는 1470년 전라도 무안 땅에서 처음 ‘장문(場門)’이란 이름으로 장이 열렸다는 신숙주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생겨난 장은 점차 영산강 상류 쪽으로 확산되어 갔다. 1480년대 전라관찰사 김종직은 나주...
[광주갈피갈피]부정기적 시장은 왜 정기적 장이 되지 못했을까?...   [2017.09.20]
다음의 글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하나 골라보세요. “장삿배들이 모이는 곳으로 돛대가 연이어 있고 사람들이 수없이 왕래하며 물건을 사고팔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지명)이 붙었다.” ①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나오는 충청도 은진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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